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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
정리해고 뒤 시간제 알바 경험
트레이더조·리프트·스타벅스 등
“1년 동안 날 끝까지 밀어붙여…
가슴 설레는 일, 80대까지 하고파”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가 지난달 27일 미국 슈퍼마켓 체인 ‘트레이더 조’ 직원 티셔츠를 입고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사진을 찍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실리콘밸리 최고의 기술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여성이 비정규직 육체노동자가 되어 미국 사회를 체험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2007년부터 12년간 구글코리아 홍보담당 임원을 지낸 정김경숙(56)씨는 역량을 인정받아 2019년 미국 구글 본사로 스카우트되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를 지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최초였다. 직장생활 내내 커리어가 상승일로였던 정김씨는 지난해 1월 전자우편으로 갑작스러운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한 구글의 1만2천명 대량 감원에 포함된 것이다. 정리해고가 흔한 미국에서, 또 대규모 해고가 잦았던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문 경우는 아니다. 이럴 경우 퇴직위로금이나 실업급여에 기대 새 일터를 찾거나 휴식기를 갖는 게 일반적이고 일자리는 대개 유사한 직무를 희망하거나 선택한다. 그런데 정리해고 뒤 그의 선택은 독특했다. 국내에 가족도 있고 퇴직위로금도 두둑했지만, 미국에 남아 비정규직 육체노동자로의 삶을 걷기로 했다.

정김씨는 “내가 왜?”라는 해고 충격에 빠졌지만, 일주일 만에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낯선 육체노동의 세계로 들어갔다. 슈퍼마켓 체인점인 ‘트레이더 조’의 시급제 직원, 스타벅스의 바리스타, 우버와 유사한 승차공유 서비스업체 리프트의 운전사, 다른 가정의 반려동물 돌봐주기 등 서너개의 아르바이트 노동에 뛰어들었다. 스스로 1년의 ‘갭이어’(새출발을 앞두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미래를 모색하는 기간)라고 정해놓긴 했지만, 그가 선택한 경로는 버거웠다. 시간제 비정규 노동자라 날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다섯번 새벽 3시에 기상해 트레이더 조에서 10시간을 일하고, 점심시간엔 리프트 기사로 일했다. 일주일에 사흘은 저녁마다 스타벅스에서 6시간 정도 일하며 매장 문을 닫고 퇴근했다. 하루에 약 2만5천보를 걸었고 수면시간은 4시간에 불과했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사회인 검도 대회에 출전한 생활체육인이기도 한데, 서너개의 아르바이트로 정신 못 차리는 일정 속에서도 매주 조깅과 수영, 검도 수련을 쉬지 않았고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학습 소모임 활동도 지속했다. 지난 1년간 경험을 담은 책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를 펴내고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회사생활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

―글로벌 기술기업에서 컴퓨터와 데이터 기반 업무를 하다가 왜 굳이 육체노동을 선택했는가?

“평생 컴퓨터 앞에서 일해왔다. 내가 홍보와 마케팅 대상으로 삼아오던 고객들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를 만나볼 수 있는, 고객 접점이 큰 서비스를 고른 것이다. 구글이 온라인 회사이다 보니 대면접촉을 통해 고객을 더 만나고 싶었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회사생활 때문에 하지 못한 일들을 해고 직후에 적어봤는데, 모두 육체노동의 목록이었다. 현재 그 목록에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는 셈이다.”

―사무직과 관리자로 평생 일했던 사람이 매장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면, 데이터로 만날 수 없던 어떤 점들을 볼 수 있나?

“구조적 측면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적인 모습을 주로 봤다. 전에는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 글로벌 기업, 지식층을 주로 만나면서 나도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버블 속에서 살았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그런데 의외로 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잘 섞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관리자 위주의 경력에 비어 있던 ‘고객 접점 업무’ 경험을 해보려고 한 것인가?

“회사 다니며 못 해본 경험에 뛰어들었지만, 재미 삼아 한 일은 아니다. 슈퍼마켓 매장에서 일하면 수시로 20㎏ 상자를 들어야 했고 200㎏ 짐수레를 몸으로 지탱할 때는 자칫하면 깔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냉동식품을 계속 만져 통증 오고 손마디 관절이 변형되면서 6개월 됐을 때는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바리스타 업무 중 덴 곳도 부지기수다. 스펙 추가라는 생각이었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생계를 이유로 비정규직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체험 삶의 현장’ 느낌도 드는데?

“나와 사정이 다르지만, 실리콘밸리 육체노동자들은 대부분 ‘투잡’을 뛴다. 40시간짜리 하나, 20시간짜리 하나 해서 주 60시간 일을 해야 하고 그것도 부부가 일을 해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살 수 있다. ‘트레이더 조’ 직원 70%는 이런 사람이지만, 30%는 생계와 무관한 이유로 투잡을 뛴다. 다른 정규직 갖고 있으면서 시간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다양한 동기를 지닌다. 이들 중에는 요리사도 2명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먹거리를 사는지 알아야 요리 개발에 도움 된다는 생각에서 매장 일을 한다. 치즈 담당하는 사람은 치즈 관련한 책을 쓰려는 목적에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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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갭이어

그는 정리해고된 김에 ‘갭이어’라고 여기며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뛰어들었다. 홍보, 마케팅 관련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구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육체노동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구직을 우선했다면 훨씬 도움 되는 경력 관리 코스가 많다는 얘기다.

하루 서너시간을 자면서 1년 동안 서너개의 육체노동을 하고 그 경험을 단기간에 책으로 엮어낸 그에게 “일중독자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라고 ‘워라밸’ 없는 삶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중독자라고 생각 안 하세요?”라고 되물으며 “나도 바람직한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정해놓은 만큼 나를 끝까지 밀어붙여보자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실 ‘갭이어’나 육체노동을 꿈꾼다고 해도 형편이나 체력상 어려운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에너지 넘치는 도전으로 밀고 가는지 물었다.

“이번 기회 아니면 이런 일을 또 언제 해보겠나 하는 생각으로 해요. 항상 가슴 설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가장 설레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리콘밸리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그는 육체노동으로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말하며, 희망 같아서는 80대까지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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