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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르크 모랑쥬 CSL 베링 아태 수석부사장
출혈 막는 유전자, 무해 바이러스로 인체 전달
세포배양한 혈우병 치료제도 국내 처방 기대
“한국 제약사들과 파트너십 기회 열려 있어”

CSL 베링 장 마르크 모랑쥬 수석 부사장이 지난달 26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CSL 베링


호주 제약사 CSL 베링이 개발한 ‘헴제닉스’는 유전적 이유로 출혈이 멈추지 않는 혈우병을 주사 한 방으로 고치는 약이다. 이 약은 48억원(350만달러)에 달하는 비싼 약값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첫 치료제로 의약품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22년 이 약을 허가하면서 “혁신적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진전을 만들어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내고 교정하는 효소 복합체이다.

당시 글로벌 의약품 업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CSL 베링이 지난 2016년 개발한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혈우병 B형 치료제인 아이델비온(성분명 알부트레페노나코그알파)이 전 세계에서 잘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스트셀러 제품이 있는데 신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면 기존 치료제는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 잘 나가는 약을 스스로 죽이는 자충수라는 말이다.

장 마르크 모랑쥬 CSL 베링 아시아태평양 수석 부사장은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CSL 베링은 환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혁신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의학 발전이 기존 제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더라도, 혁신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베른에 있는 회사 건물 밖에 CSL 베링의 간판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CSL 베링은 혈우병 치료의 역사를 함께 한 제약사다. 이 회사는 호주 정부가 1차 세계대전 때 의약품 공급을 목적으로 세운 혈청연구소(Commonwealth Serum Lab)에서 유래했다. 1916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나중에 민영화와 다양한 인수합병(M&A)을 거쳐 지금과 같이 세계 최대 혈액제제 기업이 됐다.

혈우병은 유전적으로 혈액 안에 응고인자(피를 굳게 하는 물질)를 만들어 내지 못해 출혈이 멈추지 않는 병이다. 부족한 응고인자의 종류에 따라 혈우병A와 혈우병B로 분류한다. A는 제8 혈액 응고 인자가 결핍된 것이고, B는 제9 혈액 응고 인자가 결핍된 것이다. 현재 혈우병 치료는 이렇게 부족한 응고 인자를 주사로 보충하는 방식이다.

치료제가 없던 과거에는 사람의 혈액에서 액체 성분인 혈장을 추출해 매일 수혈해야 했다. 하지만 신선한 혈장을 구하기가 어렵고, 수혈 중 각종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도 높았다. 1990년대 들어 인간 혈장에서 원하는 혈액 응고 인자만 추출한 혈장 유래 의약품이 개발됐다. 요즘은 유전자 재조합 의약품을 쓴다. 혈액 응고 인자 유전자를 가진 세포를 배양하는 방식이다. 정맥주사가 아닌 피하주사 제형도 나왔다. 이제 한 달에 두세 번 집에서 주사를 맞으면서 출혈을 예방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최근 나온 헴제닉스는 B형 혈우병 환자가 주사 한번만 맞으면 더 이상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치료제다. 이 약은 B형 혈우병 환자에게 부족한 제9 응고 인자를 만드는 유전자를 무해한 아데노 바이러스로 인체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약이 간에 도달하면 바이러스에서 유전자가 방출되면서, 간세포가 저절로 제9 응고 인자를 생산한다.

CSL 베링은 인간 혈장부터 혈장 유래 의약품, 유전자 재조합 알부민 융합 9인자(아이델비온), 유전자 치료제(헴제닉스)까지 다양한 혈우병 치료제를 만들어낸 곳이다. SK케미칼이 개발한 A형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성분명 로녹토코그알파)를 기술이전받아 글로벌 치료제로 만든 곳도 이 회사다.

아이델비온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국민건강보험 등재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 2016년 미국 FDA허가를 받은 지 8년 만이다. 이 약은 이미 일본, 미국,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에서 표준 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랑쥬 수석 부사장은 “한국 제약 시장은 전세계 상위 10대 시장 중 하나”라며 “한국 제약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갈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아이델비온은 어떤 약인가.

“아이델비온은 중국 햄스터 난소에서 추출한 세포(CHO)에 응고 인자 합성 유전자와 알부민 유전자를 넣고 배양한다. 그러면 세포 안에서 제9 응고 인자와 알부민이 융합된다. 나중에 이를 정제한다. 지금까지 승인된 혈우병 B 치료제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자부한다. "

–아이델비온이 왜 혁신적인가.

“아이델비온은 한국에 허가된 B형 혈우병 치료제 가운데 가장 투여 간격이 길다. 기존 치료제가 한 주에 2~3번 주사를 맞아야 한다면, 아이델비온은 21일에 한 번 투여해도 효과가 있다. 혈우병 환자에게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주사는 더 큰 의미가 있다. 혈우병이 문제인 것은 관절 출혈이다. 중증이나 중증도 혈우병 환자들은 투약 시기를 깜빡 놓치면 출혈을 경험한다. 관절 출혈이 누적되면 관절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고령의 혈우병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는 이유다. 어릴 때부터 아이델비온으로 치료를 받으면 평생 이런 고통 없이 살 수 있다.”

-투약 기간을 어떻게 늘릴 수 있었나.

“혈액 속 단백질 성분인 알부민은 음식이나 공기를 통해 몸 속에 들어온 독성물질을 빨아들여 간으로 수송한다. 아이델비온은 혈액응고 제9인자 활성화 부위에 알부민을 연결했다. 알부민은 인체 단백질이라 안전하고, 몸 속에 흡수돼 사라져 버리는 기간(반감기)이 20일 정도로 길다. 아이델비온을 투여하면 응고 인자와 알부민 융합체가 20여일 동안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면서, 지혈이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만 응고 인자를 방출한다.”

–아이델비온은 소아·청소년 환자를 위한 약인가.

“아이델비온이 임상시험 초기부터 소아·청소년에 집중한 것은 맞는다. 하지만 이후 성인 환자로 임상시험을 확대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의사들의 요청에 따라 추가 연구를 위한 임상 연구 데이터를 축적했고, 투약 간격도 21일로 연장했다.”

–한국에서 허가와 보험급여 승인이 늦어진 이유가 있나.

“한국은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가격 협상과 규제 요건이 까다롭다. 혈우병 B와 같은 희귀질환의 경우 비교 임상연구가 어렵기 때문에 아이델비온의 혁신성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의 승인과 급여화에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원샷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인 헴제닉스는 얼마나 효과가 있나.

“B형 혈우병은 주로 남성에게서 나타나는데, 남성 2만 5000명당 거의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CSL 베링은 5년 동안 중등도에서 중증 혈우병 B형을 앓고 있는 18~75세 남성 57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주입 6개월 후, 혈액 응고 수준이 정상의 39%까지 올라섰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 94%가 혈액 응고 인자를 더 이상 투여하지 않아도 됐다.”

–헴제닉스는 워낙 고가이다. 매출이 궁금하다.

“CSL그룹은 의학 발전이 기존 제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더라도, 혁신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있다. 현재 CSL 그룹은 현재 세 개의 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희귀 중증 질환을 담당하는 CSL 베링, 철분 결핍과 신장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CSL 비포, 백신 사업부인 CSL 시퀴러스다. CSL 베링의 혈우병 관련 매출은 전체의 약 10% 정도다. 유전자 치료제는 지난해 시판 허가를 받아 아직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한국 제약사와 협업을 검토하고 있나.

“SK케미칼과 혈우병A 치료제 앱스틸라를 개발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새로운 혁신을 만들 수 있는 파트너십에 대해서는 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CSL 베링 한국지사의 규모 확장도 계획하고 있나.

“물론이다. 한국의 제약 시장은 전세계 상위 10대 시장 안에 드는 매우 큰 시장이다. 앱스틸라를 시작으로 아이델비온 보험급여 적용을 앞둔 상황이다.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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