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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임춘애 경기도청 직장운동경기부 지원협력관
86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신데렐라 등극했지만
"대표 선발 고의 미출전" "배불렀다" 등 숱한 오해
고질적 부상 탓에 서울 올림픽 이후 은퇴
'제2의 인생' 시행착오 끝내고
선수들 상담·관리하며 다시 현장으로

편집자주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찍어낸 전설들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삶을 조명하고 은퇴 후 제2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만의 건강 관리법 등을 함께 들어봅니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의 주인공 임춘애 경기도청 직장운동경기부 지원협력관이 지난달 14일 경기 수원종합운동장 트랙 위에서 달리기 출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박시몬 기자


"그 누구야,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 버렸어.” "임춘애입니다, 형님." (영화 ‘넘버 3’ 대사 중)

스포츠 선수의 이름이 대중 영화에 거론되려면 사회 전반에 강한 임팩트를 남겨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임춘애는 전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스포츠 스타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당시 고교생 신분으로 육상 3관왕(800m·1,500m·3,000m)을 달성한 그는 무려 11년 뒤에 개봉한 영화에서 언급될 만큼 한국 스포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한때 ‘라면 소녀’라는 오해를 받았던 육상계의 레전드, 임춘애 경기도청 직장운동경기부 지원협력관을 지난달 14일 경기 수원 경기도체육회에서 만났다.

'라면 소녀' 수식어에 민감했던 사춘기 소녀



“또 라면 먹은 얘기 하려고 그러죠?”

이미 언론을 통해 수차례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덧씌워진 이미지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던 듯싶다. 임 협력관은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푸념 섞인 농담을 던졌다. 말이 나온 김에 ‘라면 소녀’라는 수식어의 탄생 비화부터 물었다. 그는 “학창시절 때 교장선생님이 운동선수들에게 간식으로 라면을 많이 나눠 주셨는데, 그게 ‘임춘애는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식으로 언론에 나간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삼계탕을 더 많이 먹었다”며 “나쁜 의도는 아니고 ’헝그리 정신’을 강조한 수식어였는데, (나도) 사춘기 학생이다 보니 ‘좋아하는 남자 학우가 들으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참 속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교시절에) 우유 지원, 라면 광고 등 제안이 많이 들어온 걸로 아는데, 아직 학생이다 보니 학교에서 이를 모두 막았다”며 “지금 시대라면 아마 12번도 더 (광고 촬영을) 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임춘애가 1986년 9월 30일 열린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800m 경기에서 트랙을 달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표팀 고의 미출전' '남성 호르몬' 꼬리 문 억측



사실 ‘라면 소녀’라는 수식어는 임 협력관이 받아온 오해 중 가벼운 축에 속한다. 그는 서울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발탁을 전후해 더 심각한 오해를 수차례 받았다. 사연은 이렇다. 임 협력관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이후 열린 전국체전에서 3관왕(1,500m·3,000m·10㎞)을 달성해 뒤늦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로 인해 ‘경기도팀이 전국체전 점수를 따려고 임춘애를 대표 선발전에 안 뛰게 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그는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과 식사를 따로 해야 할 정도로 따돌림을 당했다.

임 협력관은 “(선발전 직전)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을 쳤고, 그러다 보니 대회에 나갈 컨디션이 안 돼서 선발전에 출전하지 않았다”며 “사실 당시 나는 그렇게 잘 뛰는 선수가 아니었던 데다 나이도 어려서 ‘꼭 아시안게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몸이) 상승세였는지 전국체전 기록이 잘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해도 그의 대표팀 승선은 엄밀히 말해 규정을 어긴 선발이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는 아니었다. ‘개최국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로 ‘윗분’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억측과 불이익은 고교생이었던 그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임 협력관은 “나 때문에 공정한 선발과정을 거쳐 들어온 선수가 자신의 종목을 못 뛰게 됐으니, 미움받을 만했다”며 당시 동료들의 심경을 헤아렸다.

그의 억울한 사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시안게임 800m에서 2초 앞서 골인한 인도 선수가 실격처리 되면서 ‘금메달을 운 좋게 주웠다’는 비판을 받았고, 예상보다 좋은 기록을 세우면서 중성이라는 성별 오해까지 샀다. 육상계 ‘신데렐라’를 향한 시기 어린 시선을 그는 정면돌파로 헤쳐 나갔다. 1,500m와 3,000m에서 자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대회 전후로 세 번이나 성별검사를 받아 여성으로 인정받았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당시 임춘애의 두 번째 금메달 획득 소식을 전한 본보 1986년 10월 4일 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온갖 억측과 구설수에 억울할 법도 하지만 임 협력관은 “쌍둥이 오빠가 있는데 ‘그래서 나한테 남성 호르몬이 좀 더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웃으면서 “당시에 내가 세운 기록은 후에 여자 후배들이 모두 깼다. 여자가 못 세울 기록이 아니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과거의 해프닝을 돌아봤다.

혹독한 훈련이 남긴 고질적 부상과 은퇴



이처럼 ‘강철 멘털’을 가진 임 협력관이지만, 19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쏟아진 안 좋은 시선과 조롱은 여전히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그는 “아시안게임 이후 골반이 너무 아팠다”며 “병원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한 탓에 골반 근처 뼈가 다 자라지 못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운을 뗐다.

현역 시절 임춘애는 살인적인 훈련량과 지도자 구타로 인해 부상에 시달렸다. 사진은 1987년 6월 훈련 중 지도자에게 맞아 고막이 터진 후 경기 성남의 한 병원에 입원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쉼 없이, 그리고 강압적으로 운동을 해온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임 협력관은 “예를 들어 코치 선생님이 400m 10번을 모두 60초 내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그중 하나라도 제한 시간을 넘기면 다시 뛰어야 했다”며 “한창때는 새벽·오전·오후·야간에 각 두 시간씩 훈련을 했고, 야외 달리기를 나가면 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뒤에서 밀어버릴 듯이 쫓아왔다”고 회상했다. 훈련 태도나 성적이 지도자의 기대치에 못 미치면 맞기도 했다. 귀를 맞아 고막이 터진 적이 있을 정도다. 맞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뛰어야 했고, 혹사는 결국 씻을 수 없는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임 협력관의 고충을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며 그를 비난했다. 임 협력관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임춘애가 배에 기름이 껴서 이제 못 뛴다’는 말을 해서 크게 상처받았다”며 “정말 섭섭했지만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임 협력관은 자국에서 열린 첫 올림픽에서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발탁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고질적인 부상 탓에 이를 온전히 만끽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서울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까지 뛰어 달라는 육상계의 부탁에도 결국 은퇴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마저도 그는 박정기 당시 대한육상연맹 회장에게 편지를 써서 부상 정도를 상세히 설명해야 했다. 다행히도 박 회장이 그의 진심을 믿어줘 운동화를 벗을 수 있었다.

1988년 9월 17일에 열린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나선 임춘애가 서울 잠실에 위치한 올림픽 주경기장 트랙을 돌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행착오의 연속 '제2의 인생'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간 그는 이화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후 1년 만에 축구선수 이상용씨와 결혼,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첫째 아이를 낳은 후 보험회사에 몸담았고, 두 번째 출산 후에는 남편 지인의 소개로 외제차 영업사원으로도 일했다. 그는 “운동을 워낙 힘들게 해서 그 외에는 뭐든지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은 또 다르더라”며 “내가 열심히 해도 타인에게 오해를 사거나 방해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사회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고 웃었다.

혹독한 사회 공부를 마친 후 그는 지도자로 현장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임 협력관은 “초등학교에서 3년, 서울체고에서 2년간 학생들을 지도했는데, 내 마음속에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는 선생님들께 맞으면서, 또 무조건 참아야 하는 환경에서 운동을 했는데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며 “그런데 아이들이 ‘선생님 힘들어서 못 뛰겠어요’라고 말할 때 때리지 않고 운동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도무지 못 찾겠더라”고 부연했다. 이어 “이제 이 나이가 되니까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도자로 활동했던) 당시에는 나도 방법을 잘 몰라 방황했던 것 같다”며 “학생들의 인생이 달린 일이니 책임을 크게 느꼈다”고 덧붙였다.

임춘애 경기도청 직장운동경기부 지원협력관이 지난달 14일 경기 수원 경기도체육회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수원=박시몬 기자


다시 현장... 직장운동부 직업협력관 임춘애



시행착오 끝에 그가 선택한 길은 ‘직장운동부 지원협력관’이다. 그는 “운동을 업으로 하는 선수들에게 상담과 관리 등으로 도움을 주는 직책”이라고 자신의 역할을 소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직장운동부 지원 및 현안 조정, 도체육회 스포츠관리단 운영 지원, 도체육회와 시·군체육회 간 업무 조율 등이 주 업무다. 현역시절 숱한 곡절을 겪었던 그에게 꼭 맞는 직업이기도 하다.

훈련이라면 도가 튼 그에게 생활체육인들을 위한 조언도 부탁했다. 임 협력관은 “폼생폼사”라는 표현을 쓰며 올바른 달리기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팔자로 뛰는 사람, 팔이 너무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등이 있는데, 처음부터 제대로 된 자세를 숙지하고 뛰어야 부상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이론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그는 “뒤꿈치부터 디딜지, 앞꿈치로 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발의 특정 부분부터 디디라고 해도 사실 그렇게 못 뛴다”며 “일단은 본인이 편한 자세부터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호흡 역시 “이론상으로는 두 번 들이마시고 두 번 내쉬어야 하는데 달리다 보면 숨이 차서 쉽지 않다”며 “처음에는 코로만 호흡하는 연습을 한 후에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의 주인공 임춘애 경기도청 직장운동경기부 지원협력관이 지난달 14일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수원=박시몬 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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