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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넘은 노령견 몰티즈 설기가 임시보호자 오현진씨 품에 안긴 모습. 이성훈 기자

“설기는 10살 넘은 노령견 몰티즈예요. 동물단체의 부탁으로 임시보호를 하던 중 암이 발견돼 시한부 판정을 받았죠. 동물단체는 미안해하며 설기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설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제 품에서 편안히 지내다 갔으면 했거든요.”
-유기견 설기 임시보호자 오현진씨
10살 노령 유기견인 몰티즈 설기. 임시보호(임보) 도중에 말기암 판정을 받은 시한부 신세입니다. 버려지고 구조됐다가 간신히 임보처를 찾았는데 질병 때문에 다시 보호소로 되돌아갈 처지가 된 겁니다. 안락사 아니면 보호소 철창에서의 투병. 설기의 마지막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임보 자체가 대중화되지 않은 국내에서 질병으로 죽음이 임박한 이른바 호스피스 단계의 유기견을 임보하는 경우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설기의 견생은 백만분의 1의 확률을 여러번 뚫었다고 할 수 있는 기적의 연속입니다. 설기는 원래 동물단체 보호소의 장기 투숙견이었습니다. 노견이 임보처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설기는 3년 전 임시보호자 오현진씨 품에 안깁니다. 첫번째 기적입니다. 노견 치고 건강했던 유기견 설기의 새 출발을 돕고 싶었던 현진씨. 하지만 임보 도중 설기는 비강암으로 8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실낱 같던 입양 가능성조차 뚝 끊기고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거죠.

여기서 두번째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음을 앞둔 임보견은 동물단체로 돌려보내는 게 일반적입니다. 치료비와 돌봄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진씨는 설기의 임보를 이어가겠다고 결정합니다. 현진씨는 설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견생을 아늑한 가정집에서 보내기를, 그래서 가장 행복한 기억을 안고 세상을 떠나기를 바랐습니다.

현진씨 마음이 통했을까요. 설기는 생존기한인 8개월을 넘겨 1년째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세번째 기적입니다. 설기는 시력과 청력을 잃었지만 예전 감각을 기억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18일 서울 연남동에서 임보자 현진씨와 노견 설기의 호스피스 일상을 동행했습니다. 현진씨는 “이별을 준비하는 설기와 저의 일상이 노견 보호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며 사연을 전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노령견은 일반적으로 입양을 준비하는 임시보호를 받기 어렵다. 하지만 10살 말티즈 설기는 임보자 현진씨를 만나 돌봄을 받고 있다. 이하란PD


“노령견 임보, 괜찮으세요?” 몰티즈 설기와의 첫만남

설기와 현진씨의 만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는 3개월 단기 임시보호 캠페인에 참여할 시민 30명을 모집 중이었습니다. 동물단체 입장에서 임보자는 보호센터 유기견 한 마리를 데려가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유기견을 구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사실상 두 마리의 유기견을 구조하는 셈이니까요.

현진씨에게 배정된 유기견은 소형견인 몰티즈 치고는 제법 큰 8㎏의 설기였습니다. 덩치도 큰데다 나이도 10살로 많은 편이라 이미 몇 차례 임보를 거절당한 딱한 녀석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진씨는 흔쾌히 설기를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덩치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현진씨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설기는 귀엽고 영리한 녀석이었습니다. 현진씨의 반려견인 10살 토이푸들 밤비와도 사이좋게 어울렸고, 현진씨가 명령하면 방문을 열고 휴지나 양말을 물어다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설기에겐 입양신청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워낙 나이가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설기는 현진씨 품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길어야 8개월...시한부 판정 받은 임보견

임보 2년 차. 설기의 이상행동이 포착됐습니다. 여러 번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고, 앞이 안 보이는 듯 산책하다 나무나 돌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코피를 흘리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검진 결과는 비강암 말기. 암세포는 설기의 얼굴 전체에 번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설기는 이미 시각과 청력을 잃었던 거였습니다. 설기는 커진 종양이 기도를 막아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했습니다. 담당 수의사는 설기가 길어야 8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습니다.

국내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은 반려견은 대부분 안락사됩니다. 동물병원 권고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항암치료가 가능한 동물병원을 찾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진씨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모든 것을 다 해보겠다고 결심합니다. 일단 암 치료 전문 동물병원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설기의 방사선 치료가 시작됐습니다.

수백만 원의 치료비는 현진씨와 동물단체 팅커벨이 분담하고 있습니다. 팅커벨 황동열 대표는 “영세한 동물단체 입장에서 항암치료비는 큰 부담인 것이 사실”이라며 “구조한 동물의 삶을 끝까지 동행한다는 팅커벨의 취지에 따라 설기의 치료를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모두의 마음이 기적을 만들었을까요. 치료 결과는 기대보다 놀라웠습니다. 치료 후 설기의 얼굴에 퍼진 암 덩어리는 3분의 1 크기로 줄어들었습니다. 설기는 전보다 편하게 숨 쉬고, 코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완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설기는 예고됐던 8개월을 넘겨 1년 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진씨는 “건강했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하루하루가 선물 같은 나날”이라며 기뻐합니다

산책, 배변도 척척…시청력 잃은 13살 노견의 당당한 일상

현진씨 품에서 어느덧 3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는 노령견 설기. 앞을 못 보고 소리도 듣지 못하지만 건강했던 과거를 더듬어 현진씨와 교감합니다. 현진씨가 손을 내밀면 어떻게 알았는지 허공에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앉아, 엎드려 등 개인기도 연이어 보여줬습니다. 배변 때가 되면 동선을 기억하고는 화장실 배수구를 찾아가고, 외출하면 공원 산책길을 능숙하게 걷습니다. 현진씨는 “건강했던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라고 말합니다.

시청각을 잃었지만 여느 반려견 못지 않게 산책을 즐기는 12살 말티즈 설기의 모습. 전병준 기자

물론 체력이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설기는 산책 20분 만에 길바닥에 웅크렸고, 현진씨 품에 안겨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아프면 아픈대로 현진씨와 설기는 행복한 일상을 꾸리는 법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설기를 위해 현진씨가 만든 새로운 교감 방법도 그중 하나죠. 현진씨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몸에 입김을 불어 기척을 알립니다. 현진씨가 목덜미에 후 바람을 불자 설기는 뒤돌더니 쪼르르 현진씨 품으로 걸어왔습니다. 시청각 장애견을 돌보는 보호자들에겐 유용한 교감법입니다.

반려견의 평균수명은 10년 내외입니다. 반려견의 시간은 보호자보다 10배 빠르게 흘러갑니다. 강아지 시절 함께 뛰놀던 어린 반려견은 어느새 보호자 곁에 힘없이 웅크린 늙은 노견이 되죠. 이윽고 반려동물과 사별하며 겪는 펫로스의 고통은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심정에 비교될 정도입니다. 보호자 현진씨는 짧은 임보를 함께한 설기와의 사별을 준비하며 남은 일상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현진씨는 “사랑하는 반려견이 곧 눈을 감는다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너무 괴롭다”면서도 “성숙한 이별을 준비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설기가 제 임보견으로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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