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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보류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에서 가장 대표적 유적지인 ‘기타자와 부유선광장’의 모습. 일본 최초로 금은광석에서 금·은 등을 채취하는 부유선광법이라는 공법을 도입했다.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 시설은 1938년 건설됐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피하기 위해 16~19세기만을 대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이 지역은 세계유산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email protected]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보류’를 권고하면서 최종 결과를 두고 치열한 한-일 외교전이 예상된다. 다음달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더라도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한 2015년 유네스코 결정이 유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 문화청은 지난 6일 밤 “이코모스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정보조회’(보류)를 권고했다”면서 “다음달 21~31일 인도에서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에서 등재되도록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청은 “지난해 이코모스가 보류를 권고한 6건 모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일 등 21개 위원국이 참여하는 세계유산위는 만장일치 결정이 관례지만, 견해가 다를 경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등재가 가능하다.

사도광산의 최종 등재 여부는 세계유산위에서 결정되지만,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이코모스의 의견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일본이 권고를 무시하기 힘들다.

이번 이코모스의 권고 내용에선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일본 문화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우선 이코모스는 사도광산과 관련해 “광업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통해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및 전시전략을 수립하고, 시설 및 설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노골적으로 피하기 위해 세계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센고쿠 시대(1467~1590) 말부터 에도 시대(1603~1867)로 한정하는 ‘꼼수’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1989년 폐광이 된 사도광산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인 1939년 이후 약 1500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입증된 상태다.

우리 외교부는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사실을 반영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번 결과가 일방적 양보를 거듭하고 있는 ‘윤석열식 한-일 외교’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재를) 반대해야 할 것”이라면서 “투표까지 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한·일 합의를 이루려는 것이 양국 정부가 원하는 목표”라고 말했다.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되더라도 ‘조선인 강제노역’ 인정 등 2015년 7월 유네스코에서 한국 정부가 얻어낸 결과물이 마지노선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군함도(하시마)를 포함해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사도광산과 마찬가지로 대상 기간에서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일제강점기 시기를 제외했다.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는 “세계유산에 대한 역사 왜곡”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해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하게 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얻어냈다. 유네스코는 조선인 강제동원을 염두에 두고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을 마련하라고 권고했고, 일본 정부는 수용했다. 일본 정부가 9년째 유네스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정기적으로 약속 이행 상황을 유네스코에 보고해야 하는 등 최소한의 견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상황만 보면, 2015년보다 지금이 유리하다. 사도광산은 이코모스에서 ‘보류’ 결정이 나왔지만, 2015년엔 군함도(하시마) 등이 ‘등재’가 권고되면서 한-일 협상이 쉽지 않았다. 2021년 7월 새로 도입된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도 윤석열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새 지침에는 다른 국가와 잠재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충분히 하도록” 돼 있다. 한국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문제 삼아 끝까지 반대하면, 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등재가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이코모스의 권고 중에서 ‘전체 역사 설명’ 부분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모리야마 마사히토 문부과학상은 이코모스 결정 뒤 담화를 내어 “이코모스에서 사도광산에 대해 세계유산등재를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다.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면서도 ‘조선인 강제동원’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 정부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과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실현을 위해 한국과 성실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모스가 일제강점기를 포함해 메이지 시대 이후 유산이 많이 집중된 ‘기타자와 지구’ 등을 세계유산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한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피하려고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하면서 생긴 일이다. 사도광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는 기타자와 지구에 있는 부유선 광장이다. 일본 최초로 금은광석에서 금·은 등을 채취하는 부유선광법이라는 공법을 도입했다.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 시설은 1938년 건설된 만큼, 세계유산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피하려다, 사도광산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 세계유산에서 빠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된 셈이다.

일본 문화청 담당자는 마이니치신문에 “이코모스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기타자와 지역을 제외할지는 니가타현과 사도시, 관계 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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