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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85살의 나이로 타계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 사진 ⓒPhilip Montgomery, 문학동네 제공


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l 비채 l 1만6800원

활자의 속내만큼이나 그 활자를 쏟아내는 저자의 ‘신들렸을’ 표정이 궁금해지는 소설. ‘보이는 라디오’처럼 ‘보이는 서재’가 있다면 이 소설 집필 중의 이 작가가 딱이겠다.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필립 로스(1933~2018)가 삼십대 말에 완성한 소설 ‘우리 패거리’(Our Gang)가 국내 처음 소개됐다. 국가 최고권력을 향한 거침 없는 독설과 조롱, 유머, 현란한 사변과 통찰…. 제아무리 미국일망정 1971년 발표될 수 있는 소설이란 게 놀라울 지경이다. 당시 공화당 출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기꾼, 위선자, 얼간이로 빗대는 건 물론 재임 중 모멸적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지옥에 가 선과 정의를 능멸하는 악마로 현현하는 전개는 부정하고 무능한 정치인에 작가가 펜으로 맞서는 최대치의 항거로 보인다.

심지어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도 전이다. 소설이 바로 징후였다. 필립 로스가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아 내놓은 소설의 계기는 1971년 4월 닉슨의 샌클레멘테 연설이다. “낙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태아의 권리’를 주창한 대통령은, 소설 속 연임을 위해 온갖 모략을 참모들과 도모하는 트릭 딕슨, 줄여 대통령 트리키(Tricky, 사기꾼)로 환입되어 ‘진실’을 투사한다. 트리키는 태아 권리를 명분 삼아 (1972년 재선거 전) 태아 투표권까지 법제화하려 한다. “진실을 편향적으로 왜곡”하는 언론매체로부터 진공 상태의 유권자 집단이 바로 태아란다. 태아가 어떻게 판단하고 투표하냐는 기자 질문에 “이 나라가 다시 위대해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대량의 무지”라고 트리키는 갈파한다.

보이스카우트를 반정권 시위세력으로 몰아가는 대책 회의는 가관이다. 12~13살 소년 셋이 이미 강경진압으로 숨진 가운데, 정치·군사·법률 참모들과 사살진압, 즉결처분 안부터 좌파화 공작까지 마치 미식축구 전략 짜듯 추가 논의를 밀어붙인다. 결국 당시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권리 소송에 나선 흑인 야구선수 찰스 커티스 플러드(실존인물 커티스 플루드)를 대중의 공공재인 야구와 청소년을 망가뜨리는 주동자로 엮고, 그가 가 있는 덴마크의 “친포르노 정부”를 공격하는 데 이르니, 정의, 공익, 무엇보다 법을 전유해가며 대중 상대로 사슴을 말이라 하고, 없던 호랑이마저 만들어 존재를 영위하려는 음습한 권력 세계를 우스꽝스럽게, 그러나 매우 선득하게 보여준다. 와중 트리키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므로, 대의민주주의가 때로 이처럼 허약하다.

치밀하게 유인되는 웃음 가득, 소설은 미국판 ‘마당극’을 보는 것도 같다. 대담한 정치 풍자성이 ‘미국의 위대한 소설’(1973), ‘미국을 노린 음모’(2004)까지 상기시킴은 물론이다. “필립 로스는 끔찍한 도덕적 문둥병자”라 비난한 닉슨은 ‘우리 패거리’ 출간 이듬해 불거진 워터게이트 사건 끝 사임한다. 탄핵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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