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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 좌우하는 약물전달 기술 유망 
세포 드나들며 물질 나르는 엑소좀
효능·안전성 검증된 약물전달 수단
기술 반전 힘입어 미래 상용화 도전

편집자주

AI와 첨단 바이오 같은 신기술이 인류를 기존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류로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올해로 일흔 살이 된 한국일보는 '초인류테크'가 바꿔놓을 미래 모습을 한발 앞서 내다보는 기획시리즈를 총 6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노화를 막기 위해 아들(왼쪽)로부터 수혈을 받은 미국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 인스타그램 캡처


올해 46세인 미국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17세인 아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의 피를 기증받아 지난해 초부터 매달 수혈했다. 노화를 늦추고 싶어서였다. 젊은 혈액이 나이 든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신체 나이를 되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약 반년간 해온 수혈을 존슨은 작년 7월 돌연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아무런 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수혈의 노화 방지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괴짜 부자의 '수혈 회춘' 시도가 아예 허무맹랑한 건 아니다. 2022년 스페인 발렌시아대 연구진은 어린 쥐의 혈액을 늙은 쥐에게 주입하자 2주 만에 근육 감소 수치가 줄고, 장기 기능이 향상되고, 다시 털도 자랐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젊은 핏속에 들어 있던 특정 RNA(리보핵산)와 단백질이 노화를 지연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RNA와 단백질은 쉽게 파괴되는데, 어떻게 늙은 쥐의 몸으로 무사히 전달돼 제 기능을 했을까. 연구진은 '엑소좀'이라는 또 다른 생체 물질에 주목했다.

각광받긴 했는데... '만년 유망주' 신세



신약개발 분야에서 최근 활발히 연구되는 기술로 약물 전달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체내에서 정확히 필요한 곳에 전달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약물 전달이 곧 약효와 직결된다는 얘기다. 전달이 잘되면 적은 양으로도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경제성 면에서도 유리하다. 이에 바이오 업계와 생명과학계는 미래 의약품 시장에선 약물 전달 기술이 지금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엑소좀 연구가 꾸준히 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포(왼쪽)의 벽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각종 물질을 전달하고 있는 엑소좀(작은 흰 원들)을 나타낸 그림. 오른쪽은 확대된 엑소좀의 내부 구조를 표현하고 있다. 바이오액티브 머티리얼스 제공


엑소좀은 세포에서 분비되는 20~1,000나노미터(㎚, 1㎚=10억 분의 1m)의 아주 작은 주머니다. 세포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내부에 생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다양한 생체 물질을 담아 마치 택배처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1980년대에 처음 발견됐을 땐 세포가 배출하는 노폐물로 여겨졌던 엑소좀은 이런 기능이 알려진 뒤 약물 전달 시스템의 유망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엑소좀 안에 약물을 담아 몸속 필요한 곳에 보낼 수 있다면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된 전달 기술이 될 테니 말이다.

가능성을 포착한 많은 연구자가 엑소좀을 이용한 '세포 택배' 시스템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엑소좀은 지금까지 '만년 유망주'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엑소좀 분야에서 세계 선두 기업으로 꼽혀온 미국 코디악 바이오사이언스가 파산하면서 위기감이 증폭됐다. 엑소좀의 잠재력이 현실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전망마저 나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얼마 가지 않아 반전이 시작됐다.

기업 파산에도 기술력으로 위기 돌파 중



엑소좀 상용화 시도가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나노미터 크기라 가시광선으로 작동하는 일반 광학현미경으로는 당연히 관찰할 수 없고, 코로나19 대유행 때 온 국민이 받았던 유전자증폭(PCR) 검사로도 대략만 파악될 뿐이다. 엑소좀의 크기, 개수, 분포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전달하는 약물의 효능을 제어할 수 없다. 나노 입자 추적분석법이라고 불리는 첨단 기법을 동원하고서야 크기·분포·개수를 확인할 수 있게 됐지만, 기능 분류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엑소좀은 어느 세포에서 분비됐느냐에 따라 기능이나 특성이 다양한데, 분류하고 정제하고 표준화하는 게 쉽지 않아 대량생산이 그야말로 난제다. 대량생산은 상용화의 첫 관문이다.

엑소좀에서 나오는 형광 신호를 시간에 따라 추적, 분석하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제공


이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기술들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령 특정 엑소좀이 실어 나르는 단백질이나 RNA에 미리 형광물질을 붙여 놓는 것이다. 그러면 원하는 단백질을 담는 엑소좀만 특수 현미경으로 색깔을 보고 구별할 수 있다. 박재성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 같은 방식으로 안정적인 정제 기준을 세우고 품질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엑소좀학회에서는 엑소좀을 다룰 때 필요한 다양한 기술 표준을 재정립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택배 넘어 드론... 어떤 약이든 어디로든



신기술의 영향으로 엑소좀 산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파산한 코디악은 엑소좀에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물질을 담아 피부암을 치료하는 기술의 임상시험을 세계 최초로 시도했었다. 이 기술을 사들인 영국 기업 에복스 테라퓨틱스는 기술을 일부 변형해 심장병 치료 물질이 정확히 심장 근육에 전달되게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최철희 엑소좀산업협의체 회장(일리아스 대표)은 "세포 내 소기관까지 덩치 큰 약물을 정확히 전달하는 차세대 엑소좀 기술이 실현되면 어느 조직으로 어떤 약도 총알처럼 빠르게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달 대상과 범위를 넓혀 세포 택배를 넘어 '바이오 드론'으로 엑소좀 영역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김인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시프트바이오 창업자)은 "두 개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전달하는 엑소좀도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엑소좀(이중막으로 둘러싸인 원들)이 내부에 약물을 담아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 시프트바이오 제공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데도 엑소좀이 활용될 수 있다. 최 회장은 "몸 상태에 따라 세포에서 내놓는 엑소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태일 때 어느 엑소좀이 는다는 데이터가 있다면 실시간 변화량을 감지해 건강 지표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암 환자에서 주로 검출되는 엑소좀을 골라내 진단에 활용하는 정도지만, 정확도는 아쉬운 수준이다. 임형순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바이오 이미징 기법 등과 결합된다면 진단 정확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저비용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는 시점에 엑소좀 시장이 본격 형성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엑소좀학회에서 활동 중인 고용송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RNA의 잠재성을 발견한 사람보다 치료제로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듯, 엑소좀 기술을 상용화 단계로 도약시킬 해법을 내놓는 과학자에게도 노벨상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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