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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하는 불법합성물 피해자
AI활용 합성물 피해 늘었지만
경찰 소극적 대응에 검거 더뎌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사건 범인은 못 잡아요.”

스무살 도연(가명)은 지난해 1월 경찰서에서 들은 이 말을 잊을 수 없다.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르는 사람이 ‘본인 맞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 속 링크를 클릭하자, 도연의 사진을 성적인 이미지와 합성해 신상 정보와 모욕적인 문구까지 더한 게시물이 가득한 트위터 계정이 나타났다. 합성된 사진 속에서, 같은 고등학교 동급생만 모인 채팅방에 올렸던 사진이 포함돼 있는 걸 발견했다. ‘범인은 학교 안에 있다.’ 확신한 도연은 담임 선생님에게도 피해를 알렸다. 피해자는 도연만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도 지난해 비슷한 피해를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해자를 잡지 못했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이번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만 같았다.

용기를 내어 경찰서를 찾아갔다. 처음 만난 경찰(수사관)은 ‘내 분야가 아니다, 여성 수사관으로 다시 배정해주겠다’고만 하곤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혹여 수사를 안 하는 건 아닐까.’ 도연은 지방경찰청에도 전화로 피해를 신고했다. 그러나 다시 연락을 해온 건 처음 만난 그 경찰이었다. “비슷한 피해를 겪은 학생이 수업까지 빠지고 경찰서를 들락거렸지만 가해자를 잡지 못했단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도연은 지난달 28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더 이상 수사를 요청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수사관 배정부터 지치다 보니 수사 과정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도연은 당시 경찰로부터 정부 기관이 불법합성물 삭제를 도와준다는 사실조차 듣지 못했다. 도연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모습을 담은 불법합성물을 일일이 찾아 플랫폼사업자에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텔레그램은 못 잡아요. 피해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도연과 동갑인 지현(가명)도 지난해 말 경찰서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성적인 사진에 합성된 자신의 얼굴이 신상 정보와 함께 텔레그램에서 유포되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지현은 수많은 성인사이트와 에스엔에스에 ‘떴다방’처럼 생겨나는 불법합성물 공유 텔레그램 대화방에 일일이 찾아 들어가보며, 마침내 자신의 얼굴을 도용한 이미지를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찾아냈다. 가해자에 대한 단서를 손에 넣자마자 다시 그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제서야 경찰은 수사를 시작해 피의자를 잡아 검찰에 넘겼다. 피해를 알게 된 지 6개월 만이었다.

딥페이크(이미지·음성 합성기술)를 활용한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해가 늘고 있지만 경찰의 소극적 대응으로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서울대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해자들 역시 모두 네곳의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등 피의자 검거까지 약 3년 동안 끈질기게 수사를 요구해야만 했다.

불법합성물 성범죄는 피해자의 사진(영상)을 성적 수치심(불쾌감)을 유발하는 형태로 합성·편집·가공해 유포하는 행위다. 대체로 피해자 얼굴에 성적인 사진(영상)을 합성한 뒤 신상 정보를 더해 유포하고, 이런 사실을 피해자에게 알려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식이다. 2019년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인 ‘엔(n)번방’ 사건 당시 이른바 ‘지인능욕’ 범죄로 심각성이 알려졌다. 이듬해 성폭력처벌법에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에 대한 처벌 조항이 신설되면서 디지털성범죄로 분류됐다.

서울대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해를 처음 경찰에 신고한 루마(가명)씨는 사건 이후 카카오톡 프로필에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루마 제공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2023년 한해 동안 삭제를 지원한 허위영상(불법합성)물은 423건으로 전년(212건)보다 99.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찰 통계연보상 허위영상 배포 등 범죄 발생은 12.5%(160건→180건) 늘었다. 도연처럼 경찰서까지 갔지만 피해 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피해를 당했음에도 스스로를 성범죄 피해자로 여기지 못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을 하는 사단법인 ‘탁틴내일’ 정희진 상담팀장은 “경찰서에서 불법합성물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성폭력상담소 등 지원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들이 종종 있다”며 “(경찰 중에는) 이런 성범죄 유형을 모르는 분들도 있고, 심각한 사안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불법합성물 성범죄는 피의자 검거율이 46.8%(2022년)으로 낮은 편이다. 같은 해 사이버성폭력과 전체 범죄 피의자 검거율은 각각 72.9%, 76.5%였다. 그러나 2022년을 기점으로 불법합성물 피해 심각성은 한층 더 커졌다는 게 경찰 안팎의 평가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활용이 잦아지면서 더 진짜같은 불법합성물을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일선 해바라기센터(성폭력피해자 통합지원 센터) 소속 ㄱ씨는 지난해말 고등학생이 만든 불법합성물을 봤는데 너무 진짜 같아 깜짝 놀랐다”며 “그날 이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내렸다”고 말했다. 진짜 같은 불법합성물은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도구로 악용될 위험도 있다. 도연은 “(불법합성된) ‘사진을 뿌리기 전에 시키는 대로 하라’는 메시지를 수도 없이 받았다”고 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용의자를 지목해달라’는 등 국가가 할 일을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해자 루마(가명)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2022년 7월 서울경찰청에 (피고소인을) ‘성명불상’으로 해 고소장을 냈는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피고소인이 특정돼야 강제수사를 할 수 있다’며 가해자를 지목해달라고 했다”며 “경찰이 할 일을 전가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지만 가해자를 잡을 방법이 이것뿐인 거 같아 피고소인을 특정했다”고 말했다. 피고소인 특정을 요구하는 수사 관행은 피해자가 무고죄 역고소 위험을 감내해야 해 피해자 보호관점에도 역행한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피해자 연락처와 소셜미디어 계정 팔로우를 대조해 용의자군을 특정하는 정도는 경찰이 할 수 있지 않느냐”며 “텔레그램 수사가 어렵긴 하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만큼 수사하는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비영리단체 ‘리셋(ReSET)’ 최서희(활동명) 대표는 경찰이 피해자에게 증거 수집을 요구하는 수사 관행은 피해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자신의 범죄피해물이 유포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직접 들어간 지현은 여전히 “지옥 같은 시간” 속에 있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 방에 있던 공범 3천명이 피해자들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모욕을 쏟아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며 “친구들은 스무살의 일상을 즐기고 있지만 나는 사진 한장 (소셜미디어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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