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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논설위원
#1 “내 걸 내가 스스로 디스(폄하)해야 하네.” 최근 본 동영상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요리연구가 겸 사업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이 독백이었다. 그는 홍콩반점0410 프랜차이즈를 운영한다. 2006년 첫 매장을 연 이후 상당수 상권을 장악했다. 매장 수만 300개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LA·도쿄 등 해외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덩치가 커지면 누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 법. 백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몇몇 지점 음식을 ‘기습 점검’한 결과를 공개했다. A지점의 짜장면을 먹어보곤 “이건 미리 삶아놓은 걸 살짝 데쳤거나 오버 쿠킹(너무 푹 삶음)됐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B지점 짜장밥에는 “이 짜장은 색깔은 연한데 짜장이 왜 이렇게 짜지. 소스 아끼려고 간장을 넣었나”라고 의문을 표했다. C지점의 탕수육을 맛보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러시는 거야”라고 화냈다. 탕수육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 배달 용기에 붙어 있거나 고기끼리 붙어 떨어지지 않자 “떡 탕수육”이라고 한탄했다. 말 그대로 디스다. 짜장면까지 너무 불어 먹기 불가능한 수준인 것을 확인하곤 “사장님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욕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러면 장사가 안 돼요”라고 분노했다. 결국 백 대표는 담당자에게 지시해 C지점의 긴급 점검을 명령했다. 그러곤 시청자들에게 “이런 집들 때문에 잘하는 다른 홍콩반점들이 욕먹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결점을 공유하는 백 대표의 접근 방식은 신선했다. 자신의 약점이나 결함을 보여주는 건 쉽지 않다. 리더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그걸 스스로 보여줄 때 오히려 상대방은 진정성을 인정하게 된다. 2020년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언급했던 백 대표가 그걸 알고 오히려 고차원 마케팅으로 활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백 대표는 영리했다.

스스로 결점 내보이며 진정성 호소
우리 정치인은 “해봐서 아는데…”
설득 아닌 공감의 새 소통방식 필요

#2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에서 레슬리 K 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보이는 것보다 진실해 보이는 리더가 더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구글 임원에게 예비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 연설과 자신을 강하고 정당화하는 연설 양쪽을 들려준 다음 효과를 측정했다. 대다수가 전자에 공감했고, 실제 업적·동질성·협력 의지가 크게 향상됐다. 물론 억지로 또는 들켜서 약점이 공유된 경우는 예외였다.

우리 정치에 이를 대입하면 어떨까.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로서 다양한 수사를 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폭넓게 잘 안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랬다. 재임 중 입버릇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였다. 경제 문제만 나오면 “내가 기업을 운영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천안함 사건 직후에는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2007년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에게 “내가 후세인을 만나봐서 아는데 미국은 이라크를 잘 모르고 있다”고 한 말은 정말 압권이었다. 국정이 탕수육이나 짜장면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순 없다. 지도자의 권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좋은 것, 강한 것, 잘한 것만 내세우려다 보면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게 되고 국민과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질 위험이 크다. ‘진짜 전문가’가 아니면 더욱 그렇다. 지난 3일 첫 국정 현안 브리핑을 “동해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란 깜짝 발표로 시작한 것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반가움과 조급함이 이해는 되면서도 여전히 겸손함과 신중함과는 거리가 있음에 마음이 편치 않다. 다음 번 국정 현안 브리핑 때는 백종원식 반성회 성격의 장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거창한 설득형 홍보보단 미흡함을 사과하고, 고충도 털어놓고, 그런 뭔가 진정성 있는 모습을 국민은 더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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