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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시험장은 전국에 단 세 곳… 시험 보러 삼만리
교통비·주거비… “뭐든 두 배로 들어”
“포기할게요 그냥” 스트레스 못 견뎌 다시 고향으로

지방에 사는 청년들에게 ‘서울 취업’은 꿈만 같은 이야기다. 교통 불편과 인프라 부족을 감수하고 취업에 도전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애써 서울에 정착한 취준생들마저 높은 생활비와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실정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집에 오니 ‘한나절 훌쩍’

“서울 한 번 갔다 오면 힘이 다 빠져요.”

콘텐츠 마케터를 꿈꾸는 추승민(25)씨는 주말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간다. 규모가 큰 대외활동은 대부분 서울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구에는 관련 이벤트나 마케터를 뽑는 회사가 거의 없다.

추씨는 열차가 지연되거나 시간 계산을 잘못해 늦을 때도 있어 매번 부담을 느낀다. 추씨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왕복 6시간 정도 걸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추씨는 교통비로 한달 평균 40만원을 사용한다. 그는 “서울 한 번 가려면 최소 10만원은 써야 한다”며 “한달 교통비로 70만원을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교통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활동이 많아 부담이 크다.

추씨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활동이 있으면 첫차를 타거나 전날 미리 올라가곤 했다. 주말에는 기차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 추씨는 “숙박비나 왕복 시간을 생각하면 남들보다 뭐든 두 배로 드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대구의 한 자격증 시험장. 유하늘 인턴기자

금융권 취업을 꿈꾸는 권모(26)씨는 최근 본 자격증 시험에 불만을 드러냈다. 천안에 사는 권씨는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장이 전국에 네 군데밖에 없었다”며 “서울로 가기에는 부담이 커 근처에 있는 대전 시험장으로 겨우 신청했다”고 전했다.

시험 당일 오전 7시, 권씨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4시간 일찍 집에서 나왔다. 권씨는 “자차로 운전해 대중교통보다는 편하게 갔지만 시간이나 기름값을 생각하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권씨는 출발한 지 반나절 만에 집에 돌아갔다.

권씨는 “지방에서는 자격증 하나 준비하기도 힘들다”면서 “수도권으로 취업하고 싶은데 앞으로 볼 시험과 면접을 생각하니 앞날이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천안의 한 자격증 시험장. 유하늘 인턴기자

부산에 사는 이아영(25)씨 또한 얼마 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불편을 겪었다. 이씨가 공부한 유통 관련 자격증 시험장은 부산에 딱 한 군데뿐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이씨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이씨는 “부산은 항상 자리 잡기가 어려워 김해나 밀양 등 다른 경남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같은 영남권인데도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부산에도 시험장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취준만 해도 벅찬데… “월세 내려면 알바해야죠”

세종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김민성(23)씨는 졸업이 가까워오자 서울에 집을 구했다. 김씨는 서울에서 왕복 6시간이 소요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돈이 들더라도 서울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세사기를 당할까 두려워 월셋집을 계약했지만 80만원의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함께 사는 동생도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보태고 있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의 30~40%는 월세로 나간다”며 “돈을 낼 때마다 고향이 서울이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청년매입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에 지원해 서류 심사 탈락 통보를 받았다. 정씨 제공.

김씨와 같은 무주택 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지만 경쟁률이 높아 당첨되긴 쉽지 않다. 지난해 서울의 LH 청년매입임대주택과 행복주택 경쟁률은 각각 126.8대1, 177대1에 이르렀다. 3년째 청약에 도전 중인 정모(23)씨는 “지금껏 당첨자의 5배수를 뽑는 예비 번호도 못 받았다. 이제는 로또라고 생각하며 신청한다”고 푸념했다.

높아진 집값 탓에 일찌감치 ‘서울 드림’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었다. 포항에서 직장을 구하는 김도연(23)씨는 “예전엔 서울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석 달 전부터 알아봐도 좋은 방 구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고 전했다. 이어 “월급을 모두 생활비로 쓸 바엔 물가가 싼 지방에서 저축하며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방 소재 직장에 다니는 조은실(23)씨 역시 “수도권에 기회가 집중된 건 알지만 학생이라는 지금 신분에서 서울에 주거 공간을 찾아 이직하기엔 부담이 된다”며 앞으로도 지방에서 경력을 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애들과는 출발선부터 달라” 박탈감도

노량진에서 본 서울 야경. 정고운 기자

고립감과 외로움도 무시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가족 중 홀로 상경해 취업을 준비했던 한모(27)씨는 몇 해 전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씨는 “취업 준비야 원래 외롭지만, 사람 많은 서울에서 ‘군중 속 고독’을 더 심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와중에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한씨는 “같은 취준생 입장이라도 서울 사람들은 마음에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친구들은 가까운 곳에 집과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정감 있게 생활하는 것 같다”며 “지방에서는 면접 한번 보려면 큰 마음 먹고 올라가야 하는데, 서울에 살면 어디든 고민 없이 지원할 수 있으니 선택폭부터 다르다”고 덧붙였다.

남재걸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과 수도권의 인프라 격차를 쉽게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 일자리의 소멸”이라면서 “지방이 가진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서울에서 구직하는 청년들을 도울 전략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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