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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균 기자

강력한 리더십의 ‘감독 야구’서

이젠 ‘선수 야구’의 시대로 비상


리더 역할은 ‘동기 부여’가 우선

‘2번의 희생’과 ‘4번의 한 방’은

상처와 부작용, 비효율성만 낳아


전통적인 야구 타선 구성에서 제일 강한 타자는 4번에 두는 게 일반적이다. 1번 타자 자리에는 출루율이 높고, 공을 많이 보는 선수를 놓는다. 경기 초반 상대 선발 투수의 구위 등을 확인하려면 가능한 한 1번 타자가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게 필요하다. 장타보다는 볼넷을 골라서라도 출루를 많이 하는 타자가 1번에 어울린다.

2번 타순에는 이른바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타자를 쓴다. 1루에 출루한 1번 타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인 2루에 보낼 수 있는 타자다. 번트나 히트 앤드 런 등의 작전을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으면 더 좋다. 3번과 4번엔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배치한다. 1번 타자가 출루하고, 2번 타자가 진루시키고, 3~4번 타자가 타점을 올리는 게 이상적이라고, 옛날에는 생각했다. 그래서 1~2번 타순을 ‘테이블 세터’라 불렀다. 말 그대로 득점을 위한 상차림이란 뜻이다.

그런데 요즘 야구는 달라졌다.

김하성이 뛴 지난해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의 타순별 OPS(출루율+장타율) 기록은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다. 1번 타순의 OPS가 0.801로 가장 높았다. 4번 타순은 0.789로 2위다. 3번 타순이 0.778, 2번 타순이 0.769로 뒤를 잇는다. 과거 ‘클린업 트리오’ 중 하나로 꼽혔던 5번 타자의 OPS는 0.751로 2번 타자보다 낮다. 요즘 야구는 제일 센 타자를 1번에 놓는다.

배경 이론은 간단하다.

축구와 농구, 배구 등 다른 종목은 슈퍼스타의 공격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야구는 특정 선수에게 공격 기회를 몰아줄 수 없는 종목이다. 타순이 정해져 있어 순서대로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득점 기회가 왔다고 해서 조금 전 아웃된 4번 타자를 다시 타석에 세울 수 없다. 순서대로 타석에 들어서고, 아웃 27개를 당하면 경기가 끝나니까 당연히 1번 타자가 가장 많이 타석에 들어선다.

메이저리그 통계에 따르면 한 시즌을 치렀을 때 1번 타자와 9번 타자의 타석 수는 약 20% 차이가 난다. 단순하게 계산하더라도 잘 치는 타자가 한 번이라도 더 많이 공격하는 게 팀 전체에 유리하다. 그러니까 1~2번이 3~4번보다 더 잘 치는 게 팀 공격력을 높일 수 있다.

LA 다저스는 무키 베츠를 1번 타자로, 오타니 쇼헤이를 2번 타자로 내세운다. 뉴욕 양키스 역시 홈런왕 출신 에런 저지가 1번 또는 2번에 선다. 과거 같으면 당연히 3번 또는 4번으로 나서야 마땅한 타자들이다. 한국 야구도 이런 흐름을 따라간다. KT 이강철 감독과 두산 이승엽 감독은 최근 1번 타자에 로하스, 라모스 등 제일 잘 치는 외인 타자를 내세운다.

강한 1~2번 전략은 단지 타석 수에 따른 통계적 유리함을 따진 결과가 아니다. 야구도, 감독의 역할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야구 감독은 점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번 타자 자리에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이라 쓰고 ‘감독 말을 잘 듣는’이라 읽는 선수를 배치했다. 감독의 효과적인 ‘작전’을 통해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보내면, 3~4번 타자가 장타로 불러들여 점수를 내는 야구였다. 이른바 ‘감독의 야구’.

선수별 운동 능력의 차이가 크던 예전에는 유효했지만, 모두의 체력과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는 효율이 떨어진다. 잘 치는 선수들을 앞 타순에 배치하고, 감독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게 요즘 야구다.

감독을 리더로 바꿔 우리 사회에 적용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산업화 시대에는 ‘2번의 희생’과 ‘4번의 한 방’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리더의 역할 역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누군가에게 몰아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인정됐다.

야구가 그렇듯, 우리 사회도 지금은 달라졌다. 자본과 기술이 충분히 쌓였고, 노동력 역시 상향 평준화를 향한다. 감독 야구 시대는 저물고, 선수 야구 시대다. 리더의 역할 역시 선수들이 말 잘 듣도록 몰아치는 대신,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리더가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유산을 남기려 하다가는 대개 상처와 부작용, 비효율성을 낳기 마련이다.

이용균 스포츠부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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