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1·2심 판단 차이 “가사노동과 양육의 기여도 인정”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각각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고법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1조원대 재산분할을 명령하면서 ‘노 관장의 가사노동 기여’를 인정했다. “내조와 가사 노동만으로는 사업용 재산을 나눌 수 없다”는 1심 재판부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는 가사노동의 개념·가치와 공동재산 기여 정도를 더욱 폭넓게 해석하는 최근 판례를 반영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산분할 제도는 1990년 1월 민법을 개정하면서 등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재산은 주로 남성 소유로 추정됐고, 여성 배우자의 재산 형성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남성 배우자와 비교해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은 여성 배우자의 권리 보장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법이 개정됐다. 부부간 경제적 독립이나 실질적 불평등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였다.

재산분할 제도를 마련했지만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 범위와 대상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해외에선 법으로 형평에 따른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재산분할 비율과 범위, 대상 등을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 이혼 사건마다 재산 기여도에 대한 법원의 해석과 판례가 쌓이면서 기준이 형성됐다.

‘특유재산’은 이 논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민법은 특유재산을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정한다. 결혼 전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주식, 부동산 등이 대표적이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 취득한 재산이기 때문에 혼인 뒤 배우자의 기여가 없는 한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에서도 SK그룹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볼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 됐다. 최 회장 측은 “SK그룹 주식은 선대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이라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 쪽으로 기울었다. 재판부는 “사업용 재산을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SK주식은 특유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최 회장 명의의 계좌거래 등을 보면 과거 SK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선대 회장 돈만으로 매입한 것이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오히려 SK그룹이 성장하는 데 노 관장의 선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쓰였다고 봤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사업 진출에 길을 터주는 등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노 관장 측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노 관장이 혼인기간 가사 및 양육을 담당했고’ ‘그러는 사이 이뤄진 최 회장의 경영활동이 SK주식 가치 상승에 기여했으며’ ‘노 관장은 SK그룹 산하 워커힐 미술관 관장이 된 이후 미술관 후신인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 재직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가사노동 및 양육과 일정한 영역의 대외활동 등을 통해 가족관계를 비롯한 일정한 영역에서 최 회장의 대체재 내지 보완재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최 회장의 경영활동과 SK주식의 가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 판결 추세와도 비슷하다. 대법원은 1998년부터 특유재산 인정의 예외 범위를 점차 넓혀 왔다. 대법원은 재산분할 제도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특유재산을 취득하고 유지함에 있어서 상대방의 가사노동 등에 의한 내조가 직·간접으로 기여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파격적인 결과가 아닌 법리 그대로 적용한 재산분할 판결”이라며 “가사노동이 과거엔 집안 업무에만 국한됐다면, 최근에는 가사 전반에 관한 기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기여는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최 회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 뜻을 밝혔다.

최태원·노소영 희비 가른 ‘노태우 비자금 300억’···국고 환수 가능할까?법원이 지난달 30일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1심의 20배가 넘는 재산분할액(1조3808억원)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데에...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06021659001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9082 한동훈 “당 대표 되면 해병대원 특검법 발의…제3자가 특검 골라야” 랭크뉴스 2024.06.23
29081 “젊은 분이 덜렁덜렁” 장관 망언 수습 못한 죄? 국토부 대변인 인사 ‘뒷말’ 랭크뉴스 2024.06.23
29080 한동훈 "與대표되면 채상병특검 발의…당정관계 수평적 재정립"(종합) 랭크뉴스 2024.06.23
29079 ‘당대표 연임’ 노리는 이재명, 이르면 24일 대표직 사퇴 랭크뉴스 2024.06.23
29078 한동훈 "민심 거스를 순 없다…당대표 되면 채상병특검법 발의" 랭크뉴스 2024.06.23
29077 이재용·최태원·구광모…'AI 혁명 최전선' 실리콘밸리 총출동 랭크뉴스 2024.06.23
29076 조국혁신당 "전대 의미는 자강…민주당과 경쟁할 수밖에" 랭크뉴스 2024.06.23
29075 "국힘 불참 땡큐!"...민주, '원맨쇼 청문회' 기세 업고 채상병 특검 밀어붙인다 랭크뉴스 2024.06.23
29074 박세리·박수홍·장윤정…잇따른 부자간 재산문제 “어린 시절부터 법적 장치 강화해야” 랭크뉴스 2024.06.23
29073 조국혁신당 "민주당 선의에 기대 못해" 랭크뉴스 2024.06.23
29072 여야 원 구성 또 결렬…추경호 “내일 의총서 결정” 랭크뉴스 2024.06.23
29071 조국·이준석 손 잡을까… 공동교섭단체 고민 많아진 소수 정당들 랭크뉴스 2024.06.23
29070 이재용·최태원·구광모, 연이어 미국행… AI‧반도체 협력 강화 랭크뉴스 2024.06.23
29069 선 넘는 푸틴-김정은 밀착... 尹-나토 단호한 대응에 달렸다 랭크뉴스 2024.06.23
29068 늙고 낡은 변두리 아파트···대학 축구부 입주로 놀라운 변화[일본 위기도시를 가다①] 랭크뉴스 2024.06.23
29067 사료값 뛰고 소값은 폭락…한우 농가 “한 마리 팔 때마다 200만원 손해” 랭크뉴스 2024.06.23
29066 한동훈 출사표 “워밍업 필요 없다… 당정관계 수평적으로” 랭크뉴스 2024.06.23
29065 김호중처럼···음주운전 적용 못한 ‘음주 뺑소니범’ 실형 선고 랭크뉴스 2024.06.23
29064 의과대학교수협의회, “의대 교수 근로자 아니라고? 헌법소원 제기할 것” 랭크뉴스 2024.06.23
29063 한동훈, 당 대표 출마 "수평적 당정관계 정립‥채상병 특검 추진할 것" 랭크뉴스 202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