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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최창일씨 재심 사건
지난달 23일 최창일씨의 1심 무죄 판결 선고 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딸 최지자씨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장현은 기자

검찰이 50년간 간첩 누명을 쓰고 살아온 재일동포 최창일씨의 재심 무죄에 상고하면서, ‘50년 전 최씨의 법정 진술을 신뢰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4일 입수한 검찰의 상고이유서를 보면, 검찰은 “피고인의 법정진술이 증거능력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능력 있는 보강 증거가 있다”며 최씨에 대한 재심 판결이 법령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재심 재판부는 최씨가 법정에서 한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며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지난달 23일 최씨의 선고기일에 “법정에서의 진술 또한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으로 임의성 없이 이뤄진 진술이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그런 사정이 해소되었다는 점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공소사실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최씨는 1941년 일본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나 도쿄대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했다. 하지만 국가는 최씨가 간첩 활동을 하려 한국에 입국했다며 최씨를 2개월 넘게 불법 구금하면서 간첩 활동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이어진 재판에서도 최씨는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1974년 검찰은 최씨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이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될 때까지 6년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최씨의 딸 나카가와 도모코(한국이름 최지자)씨가 지난 2020년 재심을 청구했고, 검찰은 여전히 최씨가 1973년 법원에서 한 진술을 근거로 최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재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불법적인 구금 상태에서의 심리적 압박이 법정 진술까지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하며, 이를 함부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봤다. 검찰이 최씨에게 사형을 구형한 상황에서,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번복하고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을 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더라도 자백하는 취지의 피의자신문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현출되고, 번복된 진술에 의한 주장이 받아들여질지를 확신할 수 없으며, 진술번복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었다”며 “법정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됐다고 볼 만한 의문점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과거 법정에서 한 진술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9월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은 고 박기래씨 재심에서도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한 부분은 피고인이 불법구금, 고문 등 가혹행위로 말미암아 보안사에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뒤 그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원심 및 재심개시 전 당심 법정에서도 계속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검사가 이를 해소할 증명을 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임의성 없는 자백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이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보기도 했다. 당시 박씨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서도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 역시 박씨 법정 진술에 자의성이 없다고 보고 2023년 5월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은 최씨에 대한 상고 이유로 “자백의 임의성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309조, 제317조에 대한 법리 등에 대해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령위반의 위법이 있다”며 “피고인의 법정진술이 증거능력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능력 있는 보강증거가 있음에도 원심판결은 구 국가보안법 및 구 반공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채증법칙을 위반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령위반의 위법이 있다”고 서술했다. 여전히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최씨 유족 쪽은 “검찰의 상고는 2차 가해”라며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이날 한겨레에 “검찰이 고문 가혹행위 이후 이어진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을 주장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라며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과 법원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사건에 상고를 이어가는 검찰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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