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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일 서울역 일대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및 해병대원 특검법 관철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방준호 기자


한완상 | 전 한국사회학회 회장·전 적십자 총재

“걱정 마세요. 그 사람은 누구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인물됨의 본질적인 무지와 고집, 오만과 단견, 무엇보다도 무치(無恥)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요. 특히 그는 사회적 약자, 비표준적 인간, 비적자(非適者), 주변 인간들을 경멸하고 무시해서, 지도자의 지위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씨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해 많은 사람이 우려할 때 나는 이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의 검찰주의적 강렬한 의지와 권력욕, 자기의 본질적 성품 탓에 자멸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지난 2년간 그가 쏟아낸 온갖 결정들을 보고, 슬프게도 나의 염려가 적중하는 듯해서 불안했다.

그의 자멸성은 채 상병의 억울한 죽음이 알려지자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병대 현역과 예비역들이 채 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힘 모아 고발했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검찰 권위주의의 위압에 처음에는 겁먹는 듯했으나, 이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나섰던 촛불시민의 열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겨레 등 언론들도 윤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장관 사이의 전화통화 등을 밝혀내며, 마침내 채 상병 사망의 책임자를 은폐하려는 최고 명령자가 누구인지도 드러내고 있다.

지난 총선 참패에서 드러난 윤 대통령의 운명은 국방부 장관, 해병대 사령관 등이 동원된 부질없는 진실 숨기기라는 자멸의 구렁텅이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그는 채 상병 특검법에 줄곧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시민사회는 더욱 뜨겁게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하며 거리로 나설 것이다.

윤 대통령은 왜 이 같은 자멸적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임명부터 지금까지 동물 생태계의 사자처럼 행동하고, 영원히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했다. 정글에서 사자는 초식 동물인 소를 잔인하게 먹어 치우지만, 인간세계에서 그런 사자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자멸의 길을 피하려면 자신의 오만한 자세를 성찰하고, 왕이나 황제와 같은 처신, 유치한 짓거리를 그만둬야 한다.

나는 2017년에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를 출간하면서, 사자가 소와 함께 소의 여물을 먹는 조화로운 세상을 희망했다. 이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본질적 모습을 보게 해주는 세 단계의 소통과 성찰의 과정으로만 가능하다.

첫째는 자기 존재에서 탈출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기를 성찰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과정이다.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한계를 보면서 타인과의 거리를 좁힌다. 둘째는 타자와 깊은 공감이 이뤄지는 역지감지(易地感之)의 단계다. 역지사지가 역지감지로 성숙하면 상대방과 공감 영역이 깊어지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타자와의 깊은 공감은 평화와 화해의 힘을 만들고, 갈등을 조화로 나아가게 한다. 이것이 사자가 소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 소의 여물을 함께 먹는 경지로 나아가는 역지식지(易地食之)의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감동적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공변(共變)의 감격을 느낄 수 있다. 한반도도 역지식지의 마음으로 하나가 된다면, 명실공히 총체적 선진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우리가 선진적인 문화 대국이 되려면, 먼저 윤 대통령은 검찰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여당은 패권적 검찰주의식 정치를 부끄러워하면서 야당과의 공감 영역을 심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방적 승리주의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로마는 공화정에서 황제 숭배주의로 나아가는 순간, 멸망의 징후를 드러냈다. 시저는 로마 군대의 승리를 자랑스러워하며 원로원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를 외쳤다. 대신 우리는 ‘약자의 아픔을, 비적자의 서러움을, 비주류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공감했노라, 그간의 어리석음을 똑똑히 보았노라, 우리가 함께 이겼노라’라고 외쳐야 한다.

제22대 국회에서 이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길 바란다. 자신의 모습을 먼저 성찰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승리를 이루는 새 정치의 모습을 보여줄 용기를 갖길 바란다. 검찰 권위주의로 자멸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약자, 비주류 세력과 한 상에 둘러앉아 역지식지의 잔치를 베푸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윤 대통령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자를 지켜본 미수(米壽) 늙은이의 마지막 소망이라면, 한국의 사자들이 소와 함께 즐겁게 여물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22대 국회의 역사적 책무로 여기길 바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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