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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인을 정죄(定罪)했다. 기독교를 박해하더니 기독교도가 된 뒤에는 예전의 신앙들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나머지 종교를 무자비하게 박해했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가 가톨릭 교회에 의해 두 세기 동안 금서(禁書)로 지정됐던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의 변신은 기번이 문제 삼은 로마의 급변침과 유사하다. 출발은 문재인 정권의 칼잡이였고, 국민의힘 세력을 초토화시켰다.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국정원장·장관·국회의원들을 쉴 새 없이 감옥으로 보냈다. 윤 검찰총장은 조국 사태 이후 지휘권 박탈의 수모를 겪었다. 국민의힘의 선택을 받았고, 대통령이 됐다. 과거의 우군을 향해 탄핵의 피가 묻은 바로 그 칼을 휘둘렀다. 이재명·조국·송영길을 향한 끝없는 수사와 압수수색, 재판이 이어졌다. 예수를 죽이고 기독교를 핍박한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더니 나머지 종교의 숨 쉴 공간을 틀어막은 것과 흡사하다. 관용과 통합이 사라진 극단의 정치다.

윤석열 변신 로마 급변침과 유사
어제의 우군을 향해 가혹한 공격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도 복수전
민생·안보·통합 위해 사격 중지를

윤석열 정권은 경직성이 문제다. 직진하다 막히면 설득과 타협이 아닌 수사를 통해 군기를 잡았다. 아내는 봐주면서 정적은 가혹하게 대했다.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였다. 칼의 힘을 과신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은 사라졌고, 정책은 저항에 부닥쳐 있다. 노련한 한덕수 총리의 진두지휘로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의대 증원도 대통령이 2000명으로 대못을 박으면서 의사들의 결사항전을 불렀다. 신기술의 생명줄인 연구개발(R&D) 예산을 ‘카르텔’이라고 공격하다 역풍이 불자 느닷없이 ‘예비타당성 면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과학계는 혼란 상태다. 억울하게 죽은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서 터진 ‘VIP 격노설’로 군통수권자가 현역 군인들의 반발을 사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171석을 거머쥔 거대 야당도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몽골 기병식 입법 속도전”을 다짐했다.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종합특검법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본인 한 사람을 위해 당헌도 고치기로 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한동훈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 여의도는 칼을 휘두르겠다는 살기(殺氣)로 가득하다. 이 대표가 세계 제국 몽골의 진면목을 알고 있을까. 기번은 13세기의 칭기즈칸에 대해 “같은 군영 안에서 다양한 종교들이 자유롭고 조화롭게 설파되고 행해졌다”고 평가했다. ‘진짜 대통령’이 되려면 통합과 관용을 우선 순위에 두고 민생과 안보를 위해 윤 정부를 진심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현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단축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 여기저기서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치를 남미 수준으로 추락시킬 ‘두 번째 탄핵’보다는 낫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지 않고 유리할 때 서둘러 정권을 잡겠다는 심산이라면 곤란하다. 일본은 유럽 각국의 헌법을 연구하면서 10년간 노심초사한 끝에 현인신(現人神)인 천황의 권한을 축소하는 입헌군주제 헌법을 만들어 근대화에 성공했다. 우리는 불과 3주 만에 제헌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권력구조는 단 하루 만에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뀌었다. 이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진 제왕적 대통령제는 다원적 가치의 존중이라는 시대정신과 심각하게 불화 중이고, 정치적 내전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이대로 가면 자격 미달의 정치세력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해 복수혈전을 반복할 것이다. 국가적 불행이다. 우리의 안보 현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핵을 가진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밀착 중이고, 저강도 전쟁에 돌입했다. 정부 서울청사 옥상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 연일 오물 풍선이 날아들고 있다. 생화학무기가 들어 있다면 어쩔 것인가. 북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이 인천공항을 겨냥하면 하늘길은 바로 막힌다. 군사도발과 테러, 심리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전은 한반도를 중동처럼 상시 분쟁 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 김정은이 호언한 대로 남북이 “교전 중인 두 개의 국가”임을 국제사회가 실감하면 대외 신인도가 추락할 것이다. 이 판에 여야가 사소한 차이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가.

플라톤은 저서 『법률』에서 “내란은 모든 전쟁 중에서도 가장 참혹하다”고 했다. 여야의 지도자들은 최악의 지점을 향하고 있는 민생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내전을 즉시 중지해야 한다. 그게 국민을 살리는 진짜 정치다. 위구르의 칸은 관용과 통합을 위해 전쟁과 살육을 부정하는 마니교를 선택했다. 3세기의 교주 마니는 “지혜와 행동은 인도에서 붓다를 통해,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를 통해, 또 어떤 때는 예수에 의해서 사방에 전해진다”라고 경전에 적었다. (『징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잭 웨더포드)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차이가 차별과 내전을 부르는 이 끔찍한 지옥의 문을 누군가는 부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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