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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36

추미애 국회의장 경선 낙선 이후
이재명·정청래·양문석 등 추진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엔 적합
대선 승리에 도움될지는 의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를 비롯한 22대 국회의원들이 5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중앙홀 계단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실천하는 개혁국회, 행동하는 민주당”이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애초에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원식·정성호·조정식·추미애 네 사람이 후보로 등록할 때만 해도 ‘누가 돼도 괜찮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유 경선”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열성 당원들의 여론이 추미애 후보에게 급속히 쏠리자 입장을 바꿨습니다. 자신의 핵심 기반인 민주당 열성 당원들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성호·조정식 후보를 주저앉혔습니다. 김우영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메신저로 나섰습니다.

추미애-우원식 대결에서 추미애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이 예측했습니다. 5월16일 국회의장 후보자 경선 결과에 가장 놀란 사람은 아마도 이재명 대표였을 것입니다. 반대 세력을 공천에서 거의 다 제거했고, ‘친명’ 정성호·조정식 후보를 주저앉히는 무리수까지 썼는데도, 자기 뜻과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화난 당원들의 탈당 계속되자…

이재명 대표는 순발력이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경선 직후 선거 결과를 “당선자들의 판단이기 때문에 그게 당심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적절하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화가 난 일부 당원들의 탈당이 시작됐습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다음날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국회의장 선거 결과로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께서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여러분께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당원과 지지자들께 부탁합니다. 헤어질 결심, 탈당 등 하지 마시고 정권교체의 길에 함께해주십시오. 미안하고 감사드립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이재명 대표도 당원들을 위로하고 나섰습니다. 5월18일 광주, 19일 대전 ‘당원과 함께!―민주당이 합니다’ 행사에서 수습책을 쏟아냈습니다.

“첫길을 가다 보니 이슬에도 많이 젖고, 없는 길이어서 스치는 풀잎에 다칠 수도 있다. 당 내부적으로 시·도당위원장 선거에서 권리당원의 비중을 높이는 것을 연구 중이다.”

“당이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선 과정에서 국민 시각에서 보면 위대한 공천·선거 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당원의 힘이었다. 그래서 당원도 두배로 늘리고, 당원의 권한도 두배로 늘리고 당원 중심 정당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가자.”

그런데도 일부 당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탈당자가 1만명에서 2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다시 나섰습니다. 5월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원과 지지자들은 윤석열 정권과 ‘맞짱’ 뜨는 통쾌감을 추미애를 통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감정이입, 심리적 연대감 내지 심리적 일체감이었습니다.”

“말로 사과한다고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 시스템 전환을 연구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말로만 당원이 주인인 정당이 아니라 실제 당헌·당규로 보장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표도 5월23일 “떠날 결심을 한 오랜 동지들께 보내는 편지―함께 힘 모아 ‘당원 중심 대중정당’, ‘민주주의 혁신’의 새 길을 열어갑시다”라는 제목의 긴 글을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의제 중심의 과거형 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제 중심의 미래형 민주주의로 혁신해가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같던 이번 총선에서 야당 최초의 그것도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달성한 것도 살아 움직이는 우리 250만 민주당원 덕분입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마음과 실천이 모여 공천 혁명을 이뤄냈고, 그 힘으로 민생을 책임지라는 국민의 의지를 받아안고 국민 승리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반대하는 의원은 입 다물고

이재명 대표의 당원 중심 대중정당 선언에 발맞춰 국회의장단 후보자와 원내대표 선거에 권리당원의 뜻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김민석 의원은 10%, 장경태 최고위원은 20%, 양문석 의원은 50%를 주장했습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의원들도 많지만 입을 다물었습니다. 22대 총선에 불출마한 우상호 전 의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5월23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회의장 후보자나 원내대표 선출에 권리당원의 뜻을 반영시키는 방안을 “옳지 않다”고 반대했습니다.

“첫째, 당대표, 최고위원, 시·도당위원장 이런 당직은 당원들이 뽑는 게 맞다. 둘째, 선출직 공직자는 민심을 반영한다. 셋째, 원내직은 국회의원이 뽑는다. 민주당이 오랜 시간 토론을 통해서 세운 원칙이다. 지키는 게 좋다.”

양문석 의원이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5월26일 유튜브 ‘상록수 양문석 티브이(TV)’의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연어’가 아니고 ‘반역’이요.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나 국회의장 후보는 총재 시절에는 지명직이었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이후,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후보는 국회의원의 몫으로 선출직이었소. 그리고 또 20년이 흐른 지금은, 또 다른 시대정신에 따라, 권리당원이 당내 원내대표 당내 국회의장 후보를 뽑는 데, 당연히, 권한을 가져야지요. 그래야 당원이 주인이지요. 그래야 민주당의 확대와 확장이 가능하지요. 맛이 간 기득권, 맛이 간 586, 그중 우상호가, 시대정신이 20년 전으로 멈춰 선 작자들이, 민주당 전통 운운하며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후보는 국회의원의 몫이라고 우겨대며 또 내부총질을 하고 있네요. 구태정치질 이젠 좀 지겹네요. 공부 좀 하면 좋겠네요. 무식하면 용감하지요. 우상호씨.”

표현의 수위는 달라도 이재명 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양문석 의원의 주장은 같은 내용입니다. 세 사람의 논리를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첫째, 직접민주주의가 옳은 방향이다.

둘째, 총선 승리는 당원들에 의한 공천 혁명 덕분이다.

셋째, 당원 중심 대중정당은 민주당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된다.


당원권 강화와 외연 확장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중우화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최대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우화되지 않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민주당원들의 ‘집단지성’은 지금 민주당 의원들을 능가할 정도일까요?

양문석 의원은 “대의민주주의는 기술 부족으로 발생한 측면이 많다. 지금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가요? 대의민주주의는 숙의민주주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유권자의 뜻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발달했는데도 대의민주주의를 포기하는 나라가 없는 이유가 뭘까요?

4·10 총선 야당 압승은 민주당 공천 혁명 덕분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 심판론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민주당의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은 선거 막판에 오히려 야당 의석을 줄이는 역효과를 내지 않았던가요? 당원 중심 대중정당이 민주당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된다면 다음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서 대통령에 무난히 당선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 열성 당원들의 분노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민주당 열성 당원들은 이재명 대표와 친이재명 인사들만 빼고 거의 모든 정치인에 대해 맹목적인 배타성을 보입니다. 이런 배타성이 민주당 외연 확장에 정말 도움이 될까요?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약속한 대로 국회의장단 후보자와 원내대표를 선출할 때 권리당원 의사 20%를 반영하고 당원주권국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곧 당무위원회를 열어 당헌·당규를 개정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장단 후보자와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데 당원의 뜻을 반영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합니다. 국회의장·부의장을 국회가 선출하도록 한 헌법과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 당적을 이탈하도록 한 국회법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표결에 당원 전체 여론을 반영하는 게 어떻게 일부 강성 목소리에 휘둘리게 되는 걸까요”라고 반박하지만, 그런 논리가 맞는다면 국회의장 후보자와 원내대표를 전당원 투표로 선출해도 된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당원주권국도 이상합니다. 주권(主權, sovereignty)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라는 뜻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군주주권, 국민주권, 인민주권이라는 말은 있어도 당원주권이라는 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이재명 대표가 밀어붙이는 ‘당원 중심 대중정당’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당내 목소리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천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와 열성 당원들의 위력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추미애(오른쪽)·조정식 국회의장 경선 후보가 5월12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국회의장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기 위해 회동하며 손잡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마무리하겠습니다. 인간은 본래 집단적·사회적 존재입니다. 부족주의는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습니다. 정보화 혁명, 모바일 혁명으로 부족주의가 분노의 정치, 증오의 정치, 혐오의 정치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정치 양극화는 팬덤 정치의 원인이자 결과입니다. 정치 양극화가 거의 내전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우려합니다.

하지만 저는 학자가 아니라 정치부 기자입니다. 가장 세속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지금 추진하는 당원 중심 대중정당은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라는 생태계에서 생존하고 번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당원 중심 대중정당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다음 대선 승리에 과연 도움이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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