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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행진에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우리도 천생연분인데 결혼을 못 해요!”

1일 서울 종각역을 지나며 축제용 트럭 위에서 가수 이랑씨(38)가 외치자 뒤따라가던 행렬이 “와!”하는 환호성을 질렀다. 트럭 스피커에서 가수 솔리드의 ‘천생연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페스티벌 차량을 바라보던 강성덕씨(44)와 황수진씨(42)가 두 아들을 각각 품에 안고 ‘와하하’ 웃더니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랑씨가 말을 이었다. “결혼하신 분들 행복하시죠? 너무 부럽습니다. 우리도 결혼하게 해주면 여자 사위랑 애도 낳고 사랑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할게요!”

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의 참석자들은 이날 오후 4시27분 서울 종각역 앞에서 시작해 서울 한복판을 무지개로 물들였다. 가로 20m 세로 5m의 무지개 현수막이 앞서 나갔다. 그 뒤를 9대의 오토바이가 뒤따랐다. 선두 트럭을 뒤따르던 참가자들은 ‘모두의 결혼’이라는 손수건을 들고 서울 남대문로와 우정국로 일대를 돌며 “동성결혼! 지금 당장! 혼인평등! 실현하라!”를 외쳤다.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행진에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부부인 강씨와 황씨는 서울시 퇴계로2가 교차로에서 이들을 맞이했다. 2016년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퀴어축제에 참여했다는 이들 부부는 두 아들과 함께 무지개가 프린트된 티셔츠도 맞춰 입었다. 황씨는 “아이들이 각각 31개월과 9살인데 어떤 성 정체성을 가질지 모른다”며 “사람들이 가진 다양성을 미리 보고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축제 참여를 이유를 밝혔다. 31개월, 9살인 아이들은 트럭을 따라 2차선을 꽉 채워 70m정도를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 인사를 건넸다.

이들의 행렬을 반긴 것은 참가자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명동 회현사거리를 건널 땐 외국인 무리가 핸드폰을 꺼내 이들을 신기한 듯 찍고 박수로 맞이하기도 했다. 60대로 보이는 여성 대여섯명은 지나가는 트럭의 노랫소리에 맞춰 길 위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초등학교 동창 스무 명과 함께 서울에 놀러 왔다는 곽경애씨(65)는 노랫소리에 따라 온몸을 흔들면서 “이렇게 재밌는 구경을 다 하네”라고 말했다.

일부 기독교 단체 등이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효진 기자


모두가 이들의 행진 길을 반긴 것은 아니었다. 서울 중구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을 지나자 한 기독교 단체가 손팻말을 들고 “동성애는 죄악이다”며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분홍 원피스를 입은 한 축제 참가자는 “동성애는 사랑이다”며 그들에게 6차례에 걸쳐 손 키스를 날렸다. 선두 트럭의 후미에선 신부님과 목사님 등 8명이 “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혐오와 차별, 편견에 반대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묵묵히 이들의 행진 길을 따랐다.

이날 행진은 총 1시간10분 가량 이어졌다. 모두의 결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레즈히어로즈 등 12개 단체가 트럭 8대에 나눠타고 참가자들을 이끌었다. 이날 퀴어축제엔 약 15만명(주최측 추산)이 참가했다.

3년째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박선종씨(32)와 박선우(38)씨는 “행진은 갇혀서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해방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행진의 의미를 밝혔다. 친구 세명과 함께 참가한 박상미씨(30)도 “축제는 우리도 여기 있다고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며 “축제를 통해 엄청 많은 사람이 서울 한복판을 덮으면서 없는 존재처럼 취급받던 우리가 사실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깃발 등을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오동욱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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