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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성황리에 개최
올해 슬로건은 ‘예스 퀴어(YES, QUEER)’
1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과 종로구 종각역 사이 큰길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오세진 기자 [email protected]

“안녕하세요.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1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앞.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 입구에서 축제 진행요원들이 입구를 통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입구에는 ‘우리는 퀴어(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말)한 동료와 이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진행요원들과 시민들은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인천에서 온 메이비(별칭·19)씨는 “오늘 처음 퀴어축제에 와서 많이 들뜬다”며 “평소 커밍아웃(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알리는 일)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이곳에서 풀 수 있고, 이곳에서 내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올해 25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성소수자를 긍정한다는 뜻의 ‘예스, 퀴어!’(YES, QUEER) 구호를 내걸고 이날 열렸다. 올해 축제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했지만, 이날 을지로입구역∼종각역 사이 큰길에서 열린 축제 장소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 축제를 즐겼다. 한겨레가 이날 만난 시민들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나이, 출신 등은 저마다 달랐지만, 축제를 만끽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기획·진행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올해 축제에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인 15만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무지개색 부채, 깃발, 우산을 들거나 무지개색 기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얼굴에 무지개색 페인팅을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다. 드래그 퀸(여장을 의미하는 ‘드래그’와 남성 동성애자가 자신을 칭할 때 쓰는 표현인 ‘퀸’이 합쳐진 말)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고, 한복 또는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의상(코스튬)을 입은 사람도 볼 수 있었다. 호식이(별칭·27)씨는 자신의 몸집보다 큰 산타 복장을 하고 왔다. 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사탕과 젤리를 나눠준 호식이씨는 “1년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이라서 특별한 옷을 입고 왔다”며 “비록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했지만, 이렇게 축제가 열릴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산타 복장을 하고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호식이’(별칭·27)씨. 김채운 기자 [email protected]

레즈비언 커플인 한(별칭·26)·엑스트라(별칭·25)씨는 “직장을 다닐 때는 (이성애라는) 정상성에 편입돼 있는 척 살아야 하지만, 퀴어문화축제에서는 그런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서울시가 ‘책 읽는 서울광장’과 같은 시 행사를 내세우며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열지 못하게 하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와 함께 온 이성 부부도 만날 수 있었다. 생후 15개월 된 딸을 유아차에 태우고 남편 한아무개(36)씨와 함께 온 소아무개(35)씨는 “나중에 아이가 크면 ‘여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많아. 그 차이가 틀린 것은 아니야’라고 알려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일본인 친구 야스시(46)와 함께 온 한국인 온(별칭·41)씨는 “일본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는 매우 조용한 분위기에서 열린다. 반면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은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참가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야스시는 “비록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트랜스포비아(트랜스젠더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과 마주하지만, 축제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이 혐오에 함께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1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일부 지역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일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40여명의 사람들은 각자 준비한 성평등·성교육 도서 일부 구절을 낭독했다. 오세진 기자 [email protected]

이날도 축제 장소 인근에서 ‘동성애·동성혼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을 걸고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축제 참가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기 수원에서 온 레호(별칭·31)씨는 “지난 2014년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을 때 혐오세력이 차량으로 길을 막고 급기야 바닥에 드러누워 행진(퍼레이드)을 방해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퀴어축제 반대 집회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며 “그보다는 축제에서 다양한 정체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밝혔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2007년 12월 차별금지법안을 제안한 이래로)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고, 최근 일부 시·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뿐만 아니라 (학생 등) 다른 소수자의 인권까지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일수록 다양한 소수자가 나를 드러내고 가시화될 수 있는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축제 장소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여성·시민단체, 각국 대사관, 기업 등이 차린 60여개 천막(부스)이 일렬로 설치됐다. 각 천막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선보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은 정부가 현행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에 따라 세우는 ‘자살예방 기본계획’에 성소수자가 배제된 현실 등을 지적하며 ‘성소수자의 삶도 소중하다는 선언, 1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띵동’의 민희지 활동가는 “(2011년 이후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봤을 때) 청소년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며 “성소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청소년인권모임 ‘내다’가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채운 기자 [email protected]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청소년인권모임 ‘내다’는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전국 7개 시·도(경기·광주·서울·전북·충남·제주·인천) 중 충남과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가결됐고, 다른 지역(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이 발의되는 상황에서 학생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시 학생 참여권을 보장하는 ‘학생인권법’ 제정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불교·기독교 등 각 종교단체도 부스 활동에 참여했다. 가톨릭 성소수자 모임 ‘안개마을’이 운영하는 천막에서 만난 요셉 신부는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이 가톨릭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또는 그 사람이 성소수자든 비성소수자든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하나님의 소중한 사람들”이라며 “목회자로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특히 주한 미국·영국·독일 대사관에서 설치한 천막 앞에서는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전쟁범죄에 동조하는 미국과 영국, 독일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께부터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간판 행사인 ‘서울퀴어퍼레이드’(행진)가 시작됐다. 행진 출발 장소인 종각역 5번 출구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행진은 종각역에서 출발하여 종로2가∼을지로2가∼명동성당∼한국은행∼서울광장을 지나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에 도착하는 경로(총 거리 약 3㎞)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무지개 깃발과 우산, 주황색 풍선을 들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행렬을 지켜봤다.

양선우 위원장은 “많은 시민들이 축제를 즐겨주셔서 뿌듯하다”며 “비록 성소수자 인권이 급격하게 증진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힘으로 세상은 달라지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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