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정유라

지난 28일 인기리에 종영한 청춘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한 장면. tvN 제공


최선이 아닌 것을 선택할 용기가 있을까? 요즘은 모두가 나에게 ‘최선’을 권하려 최선을 다한다. 알고리즘은 말한다. ‘너에게 딱 맞는 콘텐츠야.’ 이커머스는 확언한다. ‘너에게 최저가를 보장할게.’ 내비게이션 앱은 묻는다. ‘최적 경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색조 화장 코너에 큼직하게 쓰여 있다. ‘네 피부톤에 착 붙는 컬러를 선택해.’ 이들이 보장하고 자부하고 추천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는 건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내 피부에 환한 불을 켜준다는 ‘퍼스널 컬러’라는 단어는 어쩐지 미심쩍다. 나를 위하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내 지갑을 노리고 있다는 의심과 ‘퍼스널’이라고 하면서 계속 ‘보이는’ 면을 강조하는 모순 때문이다.

‘퍼스널 컬러’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을 지닌다. 하나는 개인의 머리카락, 피부, 눈동자 색과 같은 본연의 색. 다른 하나는 개인의 신체 색과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색이다. 최근 몇년간 후자의 뜻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쿨과 웜 두 갈래로 시작된 퍼스널 컬러 담론은 점차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세분화되고 그 안에서도 브라이트, 웜, 뮤트로 쪼개지더니 이제 12가지 구분이 ‘대중적 용어’로 자리 잡았다.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는 콘텐츠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데 그 패턴은 대부분 유사하다. 컬러리스트는 고객 얼굴에 여러 가지 색의 패브릭을 계속 대보면서 말한다. “칙칙해 보이죠, 얼굴과 몸이 따로 놀죠, 잡티가 보이죠, 아파 보여요.” 고객이 말한다. “저 이 색 좋아해요.” 다시 컬러리스트가 답한다. “안 어울려요. 두 턱으로 보이죠?” 사석에서 했다간 마음 상하기 쉬운 말들이, 천 한 장을 대었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발설된다. 물론 어떤 경우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확연히 얼굴 톤이 차이나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퍼스널 컬러는 ‘퍼스널’에 대한 존중은 없고 그저 ‘최선의 나’로 보이게 해줄 ‘컬러’에 대한 맹신처럼 느껴졌다. 정작 그 최선은 ‘보이는’ 최선에만 머무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너무 익숙해져 기대조차 없던 이 단어가 어느 순간 새로운 용법을 득하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인기를 끄는 청춘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칭찬이 색다르다. “우리 우석이 퍼스널 컬러는 ‘청춘’임.” 친구 여행 사진 밑에 이런 댓글이 달린다. “너 퍼컬 런던. 정말 예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내 퍼컬은 너야. 너랑 있을 때 제일 빛나.” 난 이 말들이 예뻐 오래 바라본다. 퍼스널 컬러는 개인이 가진 고유한 색에서, 내가 가장 나아 보이는 색으로 그리고 비로소 내 본연의 모습이 가장 빛나는 상태로 확장한다. ‘퍼스널 컬러’는 이제 지갑이 아닌 마음을 움직인다. 외부로 ‘보이는’ 색이 아니라 내면의 고유한 빛을 들여다 ‘보게’ 한다. 내 마음이 가장 편했던 장소, 가장 편한 상대, 내가 가장 나일 수 있게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진짜 ‘최선의 나’와 더 가까워진다. 왜 그것이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지, 왜 내가 나일 수 있는지를 배색의 논리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공식이 아닌 미스터리한 매혹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는 분명하다. 그렇게 찾아낸 나의 빛이 가장 온전한 나다. 보여지는 조화가 아니라 우러나오는 진심에 담긴 빛이야말로 가장 최선의 나다. 퍼스널 컬러의 새로운 뜻은 의심 없이 마음에 든다.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7548 중부지방 최고 100mm 극한호우…4명 사망 랭크뉴스 2024.07.10
27547 "200년에 한 번 내릴 비"…전북 '1시간 146㎜' 폭포비 쏟아졌다 랭크뉴스 2024.07.10
27546 "최순실 태블릿처럼 스모킹건 나왔다"... '윤석열 국정농단' 꺼내든 민주당 랭크뉴스 2024.07.10
27545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칠레 사막, 한겨울에 꽃 피어나 랭크뉴스 2024.07.10
27544 1시간에 146㎜‥"200년에 한 번 내릴 폭우" 랭크뉴스 2024.07.10
27543 [단독] 尹의 거부권 이유 “다수결 밀어붙이면 중우정치” 랭크뉴스 2024.07.10
27542 반복되는 급발진 논란에 ‘페달 블랙박스’ 관심 랭크뉴스 2024.07.10
27541 이재명 “국민 먹고사는 문제 해결”…당 대표 연임 도전 랭크뉴스 2024.07.10
27540 현대차그룹, 英 상반기 판매량 10만대 넘었다… 연간 20만대 정조준 랭크뉴스 2024.07.10
27539 민주 "'검찰청 폐지' 이달 당론 발의…고의로 수사 안해도 처벌" 랭크뉴스 2024.07.10
27538 '문자 수렁' 갇힌 與 당권레이스…유출 배후 두고도 진흙탕싸움 랭크뉴스 2024.07.10
27537 佛클럽서 여성 끌어안은 정준영 "친구 돼 달라 했을 뿐인데" 랭크뉴스 2024.07.10
27536 순식간에 잠겼다…시청자 제보 영상으로 본 호우 피해 랭크뉴스 2024.07.10
27535 태연하다 징역 27년 선고되자 울먹였다…‘건물주 살인’ 살인교사의 결말 랭크뉴스 2024.07.10
27534 곳곳 폭우에 중대본 2단계…산사태 위기경보 ‘심각’ 격상 랭크뉴스 2024.07.10
27533 '물폭탄' 4명 사망·1명 실종…충청·전라, 침수 고립 피해 속출 랭크뉴스 2024.07.10
27532 "집이 너무 안 팔려" 황정민도 한숨…'부촌' 꼽히던 이곳 어디 랭크뉴스 2024.07.10
27531 이재명, 당대표 출마선언…"'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 랭크뉴스 2024.07.10
27530 ‘마약류 투약’ 오재원, 연루자 29명… 두산 선수만 9명 랭크뉴스 2024.07.10
27529 "나랑 57분 통화‥말 달라져" '김여사 전화' 깐 진중권 랭크뉴스 202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