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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미래세대 건강권

성장동력·인적자원으로만 취급
청소년 94% ‘1일 운동 1시간 미만’
미래 자원 빼서 기후위기 대응
정부, 항상성·지속가능성 위협
기후소송 두번째 공개 변론이 열린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송 청구인 김정덕씨(맨 앞줄 오른쪽 둘째)가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인간의 건강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질병이 없는 상태’이다. 우리 몸 곳곳의 경계가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어서 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체 내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피부, 호흡기 표면, 위장·소장·대장의 표피층, 뇌에 있는 혈액-뇌 장벽, 세포벽, 세포 속 세포 소기관들의 막이 또렷한 경계를 유지하여 외부 병원체를 막아낸다면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은 아주 낮아진다. 병원체가 경계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왔어도 이것이 멀리 퍼지지 못하게 좁은 지역에 봉쇄할 수 있는 능력, 즉 선천면역능력이 존재한다면 질병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개체가 도달한 어느 순간의 모습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질병이 없는 상태’에 이르거나 유지하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람·사회·지구 ‘하나의 건강’

이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항상성’이다. 항상성은 내부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안정적으로 일정한 상태는 얼핏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상태에 이르는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동적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쉼 없이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를 통해 호흡한다. 호흡한 산소를 우리 몸속 세포 여기저기로 실어 나르는 적혈구는 수명이 100일 안팎이다. 골수에서 만들어져 혈액의 거의 절반을 이루는 적혈구는 살아 있는 동안 쉼 없이 생성·소멸·배출된다. 인체 장의 경계 표면을 이루는 상피세포들은 사나흘에 한번씩 뒤바뀐다. 또한 우리 몸은 자가 섭식을 통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세포, 세포 소기관, 단백질을 쉼 없이 분해하여 그것을 재료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세포, 세포 소기관,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항상성의 동적 과정은 맥박 뛰듯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이뤄진다. 소위 생체리듬은 인체가 지닌 안정적인 상태, 즉 항상성의 규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항상성을 통해 건강을 정의하는 것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인간 개체가 존재하는 환경을 아우르지 않은 채 항상성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체는 주변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항상성을 갖는다. 작게는 장내 미생물이 그 주변이고 크게는 마을과 도시, 더 나아가 지구가 주변의 역할을 한다. 대기·물·땅과 같은 물리적 주변이 있는가 하면, 사회 인프라, 법체계, 문화와 같은 사회적 주변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오염된 대기와 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인체에 영향을 주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은 다시 대기와 땅에 영향을 미치는 무수한 순환 속에서 항상성은 부단한 부침을 겪는다. 인간 개체가 지닌 사회적 부와 지위·직업에 따라 수면·음주·식습관 등 생활 패턴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받아들여야 하는 스트레스의 정도나 총량이 달라진다. 이 모든 과정의 주체는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으로 존재한다. 개별 인간일 수도 있고, 그들이 모인 작고 큰 사회일 수도 있다. 인간을 둘러싼 주변 역시 여러 겹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건강을 좌우하는 주체와 그들이 맺는 관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작용들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건강은 신체·정신·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

‘하나의 건강’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양상을 잘 표현해준다. 이 개념에 따르자면 건강한 개체는 건강한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더 나아가 건강한 지구와 연결된 채 존재한다.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은 이러한 개념을 잘 담고 있다.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이다. 달성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누리는 것은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의 구분 없이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중 하나이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이는 적절한 보건 및 사회적 조치를 제공함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다.” 헌장은 더 나아가 건강은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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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이하 ’삶의 만족도’ 하위권

‘하나의 건강’과 건강권 개념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볼 때 가장 큰 침해를 받는 집단은 어린이들과 이제 태어날 아이들이다. 정부·언론에서 저출생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흔히 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저출생을 그동안 이뤄온 성장이 조만간 가로막힐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성장동력의 상실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반쪽에도 못 미치는 생각이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하나로 연결된 건강’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논의의 출발점에 성장이 놓인 이 사회에서 자라날 아이들은 현재와 미래의 건강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속도의 성장을 이뤄온 이 사회에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은 밑도 끝도 없는 경쟁 앞에 놓인다. 능력주의를 몸에 익히며, 공동체를 체험하거나 자연과 교감할 겨를 없이 자라난다. 성장동력이 될 인적자원 배출에 매진하는 교육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돕기 위해 인격이나 체력을 갖추도록 하는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주관 국제 신체활동과 건강 조사(2022년)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 가운데 94.2%가 하루 1시간 미만의 신체활동을 한다. 이는 조사 대상 146개국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아이들이 누리는 삶의 만족도(2022년, 17살 이하)에서 우리나라는 오이시디(OECD) 30개국 중 27위이다.

어린이들과 이제 태어날 아이들이 받는 기본권 침해는 그들의 현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현재의 성장은 미래를 빌려 이뤄진다. 현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제시한 탄소예산의 우리나라 몫 대부분을 2030년 이전에 사용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이번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30.2%에서 21.6%로 하향 조정하였다. ‘하나의 건강’은 건강 주체의 항상성, 즉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한다. 미래 사회의 건강을 받쳐줄 주춧돌을 빼서 현재의 성을 쌓으면서 성장의 지체를 염려하며 저출생 대책을 거론하는 것은 어린이들과 이제 태어날 아이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지난 5월21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단이 미래 세대를 대표하여 ‘하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현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공개변론이 이뤄졌다. 이들의 주장이 의미심장한 것은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건강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획득되어야 할 기본권이라는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요구와 주장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과연 건강한지를 묻고 있다. 건강한 현재는 건강한 과거가 만들어낸 산물이며 건강한 미래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미래의 주인공들이 건네는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창훈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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