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 어린이날, 덕천지구대에 전달된 ‘선물’

모자를 푹 눌러쓴 여성이 지구대 앞으로 다가옵니다. 발걸음은 조급하고, 움직임은 분주합니다. 갑자기 지구대 밖으로 나온 한 경찰관. 여성은 손에 든 상자를 던지고 달아났습니다. 수상함이 가득한 저 상자의 정체. 대체 무엇일까요?


정체불명 상자의 뭉클한 반전


어린이날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5월 6일. 휴일 근무에 나선 부산 북부경찰서 덕천지구대 소속 정학섭 경감은 낯선 승합차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정학섭 경감
“덕천지구대 밑에 보면 주차장이 있어요. 거기에 승합차 한 대가 들어오더라고요. 차를 대는구나 싶었는데 어떤 여성분이 후드티를 입고 자기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박스를 하나 들고 올라오더라고요.”


정 경감이 다가가자 여성은 화들짝 놀라며 상자를 냅다 던졌습니다. 그러곤 자신을 뒤따라오던 승합차에 올라 사라져 버렸죠.


정학섭 경감
“내려가 보니까 차는 이미 가버리고 없고, 여성분도 없더라고요.”


대체 이게 뭘까…. 정 경감은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상자를 챙겨 지구대 안으로 들어왔고, 조심스레 내용물을 확인해 봤습니다. 상자 안에는 과자 여러 개와 어린아이용 옷 한 벌, 1000원짜리 서른 장, 그리고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죠. “첫째가 장애 3급인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입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저희는 자녀가 셋인, 폐지를 팔아 생활하는 부부입니다. 한 달 동안 땀 흘리며 열심히 모았는데, 옷 한 벌과 과자를 사고 나니 현금은 3만원 밖에 남지 않았네요. 능력이 이 정도뿐이라서…많이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지폐가 너무 꾸깃꾸깃해 한 장씩 다리미로 폈습니다. 아이들이 옷과 과자를 꼭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네요. 현금은 어린이날 어려운 아이 가정에 전달돼 피자라도 사 먹었으면 합니다.”

정 경감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그는 상자를 열자마자 여성의 정체를 눈치챘다고 하는데요. 2023년 9월, 부산 동구의 한 목욕탕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수많은 소방관과 경찰관이 다쳤을 때 성금을 전달했던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정학섭 경감
“작년에도 그 여성분이 기부할 때 제가 근무를 했었고…저는 동일인이라고 99.9% 확신합니다.”


당시 기부액은 4만5000원. 마찬가지로 폐지를 팔아 마련한 돈이었습니다.


정학섭 경감
“그때 우리 경찰관도 다쳤고, 소방관도 다쳤고, 일반 시민들도 다쳤거든요. 그분들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유독 비바람이 몰아쳤던 이번 어린이날 연휴. 가족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일터로 왔던 지구대 직원들은 이들 부부 덕분에 힘이 나고, 웃음이 나고, 마음이 따스해졌다고 합니다.


정학섭 경감
“본인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직원들에게 이날은 그런 하루 아니었을까요. 고된 업무에 흐트러진 자세를 괜스레 고쳐 잡고, 흐릿한 창밖을 괜히 또 바라보고, 어쩐지 벅차오르는 마음을 달래며, 생업의 보람을 곱씹게 되는 하루요. 한 마디로 참 일할 맛 나는, 그런 하루 말입니다.


정학섭 경감
“대단한 분이다. 자기 형편도 안 좋으면서 이렇게 기부하는 거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훌륭한 분이다.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씀하시죠.”


부부의 ‘어린이날 선물’은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이들이 마련한 1000원짜리 서른 장이 많은 아이를 도울 순 없을 겁니다. 그래도 한 명의 아이라도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이 사연을 접한 우리가 그랬듯이 말이죠.


국민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7263 “VIP한테 얘기하겠다”···도이치 주가조작 공범 ‘임성근 구명’ 녹취록 랭크뉴스 2024.07.09
27262 "운전자 실수" vs "차량 결함"…자동차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 추진한다 랭크뉴스 2024.07.09
27261 尹·羅 "문자 무시, 정치적 미숙" 韓 "여사 사과 의사 없었다" 랭크뉴스 2024.07.09
27260 "읽씹은 정치 미숙" vs "다 공개 땐 정부 위험" 與당권주자 난타전 [첫 TV토론] 랭크뉴스 2024.07.09
27259 최저임금 인상, 노동계 “1340원” vs 사용자 “10원” 랭크뉴스 2024.07.09
27258 "홍명보, 멋지게 보내주자!"‥"뒤통수 맞고 웃나" '부글' 랭크뉴스 2024.07.09
27257 트럼프의 책사들 “북미 대화 전제조건은 러시아 지원 중단…김정은, 미리 조치 취해야” 랭크뉴스 2024.07.09
27256 ‘뉴진스 엄마’ 민희진 어도어 대표, 업무상 배임 경찰 소환 조사 랭크뉴스 2024.07.09
27255 “VIP한테 얘기하겠다”···‘임성근 구명’ 자랑한 도이치 주가조작 공범 랭크뉴스 2024.07.09
27254 폭우에 휩쓸린 택배노동자…실종 전 “비 많이 와 배달 못 하겠어” 랭크뉴스 2024.07.09
27253 링거 바늘 꽂은 채 대피한 아이들…러, 우크라 아동병원 폭격 랭크뉴스 2024.07.09
27252 나경원 "김 여사 사과 왜 무시했나" 한동훈 "사과 주체는 대통령실" 랭크뉴스 2024.07.09
27251 야당, 19·26일 윤 대통령 탄핵 청원 법사위 청문회 열기로···김건희 여사 모녀 증인 채택 랭크뉴스 2024.07.09
27250 공수처, 신임 차장 후보자로 검사 출신 이재승 변호사 내정 랭크뉴스 2024.07.09
27249 놀이터로 승용차 돌진 ‘아찔’···70대 운전자 급발진 주장 랭크뉴스 2024.07.09
27248 블랙핑크 제니, 실내 흡연 논란에 "스태프에 직접 사과"(종합) 랭크뉴스 2024.07.09
27247 "혹시 북에서 '탄핵안'을‥" 발언에 "작작 좀 하세요!" 격분 [현장영상] 랭크뉴스 2024.07.09
27246 “엮이기 싫어”… 피흘린 아내 두고 테니스 치러간 남편의 변 랭크뉴스 2024.07.09
27245 첫 TV토론회 '김 여사 문자' 공방‥한동훈 "앞으로도 답 안 해" 랭크뉴스 2024.07.09
27244 “이게 끝?” 집중호우에 내려진 ‘16자’ 대통령 지시사항 랭크뉴스 202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