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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안 명분…외국기업·외국인 일본사회 침투했다 곤욕 치러
정부·산업계 외국인 혐오, 경제 성장에 방해된다는 의견도
일본 라인 사무실 앞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한·일 갈등으로 치닫던 ‘라인야후 사태’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라인야후가 7월 1일까지 일본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조치 보고서에는 네이버 지분 매각이 담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네이버의 지분 매각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는 5년 전 일본의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 축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엔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키오시아가 지분 약 34%를 간접 보유한 SK하이닉스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근본 배경에는 외국 기업, 외국인을 배척하는 일본의 배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이 ‘외국인 혐오(xenophobia)’ 때문에 경제성장이 저해된다고까지 했다.
‘자본 관계 재검토’=지분 팔라?
사태를 촉발한 일본 총무성의 3월 5일 라인야후 행정지도 문건은 총 10페이지다. 지적 사안은 크게 네 가지다. 네이버에 대한 강한 의존, 불충분한 기술적 안전관리 조치, 위탁처에 대한 부적절한 관리감독, 보안 거버넌스 미비 등이다.

사실 원인 제공은 라인야후가 했다. 앞서 “라인 이용자와 거래처, 종업원 등 개인 정보 51만 건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를 위탁한 네이버클라우드를 통해 누군가 부정한 접근이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행정지도에서 문제가 된 것은 네 번째 항목이다. 보안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라면서 “위탁처로부터 자본적인 지배를 상당 정도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한다”고 썼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해 세운 A홀딩스가 지분 64.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총무성의 논리는 이렇다. ‘라인야후가 시스템 운영을 네이버에 위탁했는데 네이버가 대주주이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요구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것이다. 사실상 지분을 팔라는 의미다.

어떤 이유에서든 정부가 민간 기업의 지분 조정을 요구하는 것이 시장경제 국가가 맞냐는 의문이 들게 한다. 사실 일본 최대 메신저인 라인이 없으면 일본 사회가 마비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뺏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해진의 10년 노력으로 일군 ‘라인’
라인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10년 넘게 땀을 흘려 만들었다. 지금은 1억2000만 명 일본 국민 중 96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이 창업자는 2019년 한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본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였다.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철수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인데 그 압박감에 펑펑 울었다. 결국 같이 갔던 팀하고 얘기해서 반은 돌아갔고 반은 남았다. 남은 사람들이 만든 게 라인이었다. 드라마틱하고 믿어지지 않는 결과였다.”

이후 라인은 일본 사업을 확장했다. 간편결제 서비스 ‘라인페이’로 승부를 걸었다. 경쟁사인 소프트뱅크의 ‘페이페이’와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출혈 경쟁을 벌였다. 결국 이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손을 잡았다. 힘을 합쳐 미국, 중국의 대형 플랫폼에 대항해 아시아 최고의 인공지능(AI) 기술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日 정부·기업 뭉쳐 ‘네이버 지우기’
총무성의 행정지도 이후 한국에서 여론이 격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본 관계 재검토’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지분을 매각하라는 표현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속마음인 ‘혼네(本音)’와 겉으로 밝히는 ‘다테마에(建前)’가 다르다는 얘기가 있다. 혼네는 ‘지분을 팔라’는 건데 다테마에는 ‘자본 관계 재조정’으로 표현한 것이다.

2019년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할 때도 비슷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의 ‘무역 관리’에 문제가 있다며 반도체 등 3대 핵심 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실제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였다.

총무성 행정지도 이후 라인야후, 소프트뱅크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기업이 뭉쳐 본격적인 ‘네이버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 5월 8일 라인야후는 결산 발표에서 기존 7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멤버 중 네이버 출신으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이사회에서 빠진다고 밝혔다.
日 가면 벗긴 곤 전 회장
네이버처럼 외국 기업, 외국인이 일본 사회에 깊숙하게 침투했다가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의 ‘일본 탈출’ 사건이다. 그는 1990년대 말 2조1000억 엔(약 18조원)에 달하는 부채 탓에 빈사 상태에 허덕이던 닛산을 20년가량 이끌며 되살린 경영자다.

그러나 2018년 일본 도쿄지검에 배임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된 이후 네 차례나 구속됐다. 보수를 일부 축소 신고했다는 혐의였다. 과거 일본 사법당국이 조(兆) 단위 분식회계를 했던 도시바와 올림푸스의 일본인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줬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곤 전 회장이 축출된 것은 ‘메이드 인 재팬’이란 뜻도 지닌 일본의 대표기업 닛산(日産)의 최고위직에 올라 품질 결함 등 일본인이 감추고자 했던 문제점을 직시했던 것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있다. 여기에 그가 르노와 닛산을 통합하려 하자 일본이 제거에 나섰다는 해석이 많다.

곤 전 회장은 2019년 말 가택연금 상태에서 일본을 탈출했다. 악기 상자에 몸을 숨겨 공항 감시망을 피해 레바논으로 갔다. 2020년 1월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의 배임 등을 지적한 닛산의 내부 조사가 그를 몰아내기 위해 획책된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배후에 일본 정부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 “일본은 외국인 혐오”
최근 일본 기업과 지분이 얽혀 있는 SK하이닉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키오시아 지분 약 34%를 간접 보유하고 있다. 키오시아는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경영을 통합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통합 후 상장도 추진 중이다. 이후 SK하이닉스를 밀어내려고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키오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전부 우연의 일치일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1일(현지 시간) 중국, 일본, 인도에서는 ‘외국인 혐오(xenophobia)’ 때문에 경제성장이 저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모금 행사에서 “이민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됐지만 중국, 일본, 인도에서는 외국인 혐오가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 장기화…네이버 선택은?
다시 라인야후로 돌아가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5월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에 제출할 보고서에 네이버의 지분 매각과 관련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협상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네이버가 어떤 결론을 낼지 주목된다. 크게 보면 지분 전량 매각, 일부 매각, 현상 유지로 나눌 수 있다. 지분을 전부 판다면 받을 수 있는 돈은 10조원대로 추산된다. 네이버는 그 돈으로 AI 등 미래 투자에 쓰는 것이 낫지 않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일부 지분을 넘겨주고 협력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가는 방향도 거론된다. 다만 지분을 얼마나 넘길지, 경영권 프리미엄의 가치를 어떻게 책정할지 등에서 양측의 이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행정지도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네이버가 지분을 팔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정부의 유무형 압박은 거세질 확률이 높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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