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 회장과 노 관장. 연합뉴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이혼소송의 항소심에서 재산분할 액수가 많이 늘어난 데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에스케이로 흘러가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준 총 300억원어치의 약속어음(50억원짜리 6장)을 ‘300억원을 받고 써준 차용증’으로 간주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30일 “에스케이㈜ 주식은 혼인 기간에 취득된 것이고 에스케이 상장이나 이에 따른 주식의 형성과 그 가치 증가에 관해서 1991년 피고(노 관장) 부친 노태우 쪽으로부터 원고(최 회장) 부친 최종현 쪽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고 이는 최종현의 경영 활동을 뒷받침하는 유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노 관장 쪽은 항소심 과정에서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이 1991년 비자금 300억원을 사돈인 최 전 회장에게 전달하고 어음을 받았다. 비자금 300억원은 당시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에스케이증권)을 인수하는 데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일부 받아들여 “300억원이 최 전 회장의 태평양증권 인수를 비롯해 선경기업 경영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1991년 최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발행한 50억원짜리 6장, 총 300억원어치 약속어음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재판부는 이 300억원을 명시적으로 ‘비자금’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최 회장 쪽은 “태평양증권 인수에는 계열사 자금을 이용했다”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룹 성장에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한 것도 중요했다. 1991년 이뤄진 태평양증권 인수는 최 회장 쪽 주장대로라면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돈으로, 노 전 관장 쪽 주장대로라면 대통령 비자금으로 이뤄진 것이다.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재판부는 당시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지 않았다면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확인될 경우 그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모험적인 결정인데, 최종현 전 회장이 감행했다”며 “자금 출처가 불분명했지만, 세무조사나 검찰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에스케이는 이동통신사업에도 진출했다. 에스케이가 대통령과 사돈 관계를 보호막·방패막이로 인식하고 위험한 경영을 감행해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