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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신경안정제 의지…"소외된 행성 같아", "이민 고려"
심리 치료 기관 전무…보훈보상대상자는 심리지원 혜택 제한
"복무 의무만 있는 징병 국가…트라우마도 국가가 책임져야"


군 사건·사고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강태현 기자 = "징병제로 군 복무 의무는 요구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트라우마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있지 않아요. 진상규명, 명예 회복, 남은 치유 과정까지 국가가 끌어안아야 합니다."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한 엄마는 자신을 '우주에서 소외된 행성' 같다고 표현했다.

아들 이야기에 웃으면 웃는 대로 '속이 없다'고, 울면 또 그런대로 '언제까지 그럴 거냐'는 주위 반응은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 듯 아팠다.

아들이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 군대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들의 죽음을 국가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갚을 것인지 관심을 기울이느라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돌볼 여력도 없었다.

나라의 부름으로 보낸 아들을 그곳에서 잃었지만, 엄마는 홀로 상당 기간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 시달리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군 사건·사고 (PG)
[제작 최자윤, 이태호] 일러스트


군복만 봐도 가슴 철렁…아무도 돌보지 않은 상처
2022년 11월 최전방 GOP(일반전초) 부대에서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김상현 이병의 아버지 김기철씨는 매일 밤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잠자리에 든다.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인 데다 순직 처리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아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돼 있는 아들을 떠올리면 편히 발 뻗고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들의 사망 소식에 쓰러지기까지 했던 아내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마다 가슴이 쿡쿡 쑤셔 더는 진료를 이어갈 수 없었다.

사건 이후 군에서 심리치료를 지원하겠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던 탓에 이마저도 아이를 잃은 괴로움과 슬픔을 극복하고자 직접 행한 노력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김씨와 아내는 길에서 군인들을 마주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애가 그러고 나서 우리는 뉴스를 안 봐요. 뉴스에서도 군복 입은 애들이 나오면 채널을 확 돌려버립니다. 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길을 가도 보는 게 힘들고요. 이 나라에서 살 자신이 없어서 이민을 준비하고 있어요."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었는데, 고통은 오롯이 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이들과 같이 군대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와 가족들은 아픔을 그저 꾹꾹 누르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는 필수품이 돼버린 지 오래다.

2011년 육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고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 공복순(61)씨도 '하늘이 깨지는' 것과 같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 공씨에게 손을 내밀어준 건 국가가 아니라 같은 아픔을 겪은 유족들이었다.

어디서도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실컷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서로 치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씨는 군 인권침해나 사고 피해 당사자, 유족들에게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돌려주고 싶었다.

이에 2016년 1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의 문을 열고 사회단체 사업지원, 지인 후원 등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 센터를 운영했다.

"제가 센터를 열 때만 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유족들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관리해주는 기관이 전혀 없었어요. 이후 국가보훈처에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하긴 했지만, 피상적인 질의만 오가는 상담이 진행되다 보니 오히려 그곳에 다녀온 유족들이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이 많았어요."

서로의 슬픔을 보듬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지만, 민간에서는 지속 가능한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운영 자금의 대부분이 후원금으로 이뤄진 탓에 자금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함께' 역시 코로나19 이후 후원금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군 사건·사고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국가가 군 트라우마 관리해야"…불신 이미지는 극복 과제
"트라우마 관리라는 건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이뤄져야 해요. 그런데 무슨 일만 터지면 숨기기 급급하고, 순직이냐 아니냐, 보훈보상대상자냐 국가유공자냐 따지느라 5년 이상이 걸리니까 국가랑 싸우는 시간에 트라우마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거죠."

현재 국내에는 군 내 사건·사고로 생긴 트라우마를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센터는 없다.

이와 달리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강력범죄·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각각 스마일센터와 해바라기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이를 통해 2차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 지원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군 관련 심리지원의 경우 국가보훈부에서 2018년 7월부터 심리재활집중센터를 운영해 개인 상담 등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 또는 단기 복무 후 제대한 군인들만이 지원 대상자에 해당한다.

보훈보상대상자이거나 유공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인 대상자 또는 그 가족은 혜택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형남 군 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작전 중 사망하는 경우가 아니면 국가유공자 대상이 되기 쉽지 않고, 군 내 사망의 80%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 보훈보상대상자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관련자들이 제대로 된 트라우마 관리를 받을 수 없다"며 "공을 세워야만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병제로 군 복무 의무는 요구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트라우마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군 복무 과정에서 생긴 정신적 상처를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를 반영해 2017년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소방·군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논의되지 못하고 제20대 국회와 함께 법안이 폐기됐다.

국가에서 트라우마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김 사무국장은 "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이미지가 불신"이라며 "유가족들이 사건·사고 처리 과정을 겪으면서 군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신뢰 관계가 쌓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치유를 이야기하는 건 이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언론에 조명을 받은 사건·사고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순직 처리를 결정하고, 합당한 징계와 조치가 뒤따라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런 과정이 병행되어야만 피해 관련자들이 센터를 신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해 치유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견해다.

그는 또 "단순히 심리 상담만 진행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사건 발생 시점부터 진상 규명, 명예 회복은 물론 남은 치유과정까지 국가가 책임 있게 끌어안고 가지 않으면 센터의 존재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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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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