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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 방화지구 건축법상 개·보수 규제
낡은 건물 수리 시 콘크리트·석조 사용 원칙
주민 "근대 문화 잔재 사라져…제도 손봐야"
市 "2012년 일부 구역만 해제…확대 검토 중"
지난 24일 전북 군산시 월명동 일대에 일본식 가옥을 개조한 목조 건축물과 콘크리트 건물들이 골목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다. 김혜지 기자


지난 24일 오후 전북 군산시 월명동 근대문화유산거리. 골목 양옆으로 나무로 된 단층짜리 낡은 일본식 가옥과 콘크리트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식당·카페·옷가게 등으로 새롭게 단장한 목조 건물도 많았다. 일부 목조 건물에는 '매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커다란 천을 외부에 드리운 채 공사 중인 곳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월명동과 영화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건축물 등 근대 문화 유산이 즐비하다. 1945년 문을 열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 국내 유일한 현존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이 대표적이다. 군산시는 이곳을 중심으로 근대 역사 경관 조성 사업을 추진해 왔다. 군산시에 따르면 현재 목조 건축물은 월명동에 181채, 영화동에 177채가 있다. 무허가 건물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군산 동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00년 안팎의 목조 건축물이 밀집한 월명동·영화동 일대는 화재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1987년 방화지구로 지정됐다. 건축법에 따르면 방화지구 내 건축물을 수리하려면 주요 구조부와 외벽을 콘크리트나 석조·철강 등을 사용, 화재에 견딜 수 있는 내화구조를 갖춰야 한다. 문제는 목조 건축물인데도 개·보수할 때 목재를 쓸 수 없어 개 ·보수 시 원형이 크게 훼손된다는 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 월명동의 한 목조 건물을 사들인 A(52)씨는 이 같은 법 규정을 뒤늦게 알게 된 바람에 사업 계획이 틀어졌다.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가옥 원형을 살리면서 카페로 개조하려고 했지만, 철강과 콘크리트 자재만 써야 하는 게 문제였다. 이 때문에 A씨는 당초 구상과 다르게 새로 건물을 짓기로 하고, 기존 건물을 철거했다. A씨는 "빈터에 어떤 건물을 지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B(40대)씨는 100년 넘은 목조 건물을 매입해 식당을 열기 위해 리노베이션까지 진행했다가 개업 시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지난달 식당 문을 열려고 했지만 목재를 써 수리하면 불법이라는 규정을 그 직전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수십억 원대 대출까지 받아 공사를 했지만 예상치 못한 규제 때문에 한 달 이자만 수천만 원씩 나가고 있다.

A(52)씨가 2020년 매입한 일본식 가옥(목조 건축물·왼쪽). 건물 원형을 살려 카페로 개조하려고 했으나, 방화지구 내 건축물은 수리 시 콘크리트·석조 등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뒤 기존 목조 건물은 완전히 철거했다(오른쪽 사진). 김혜지 기자


이 일대가 방화지구로 지정된 사실을 뒤늦게 안 A씨나 B씨처럼 건물 매입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영화동에서 만난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를 시작했다가 중간에 멈추거나 일부는 가림막을 치고 암암리에 보수하는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군산시의 근대 역사 경관 조성 계획을 위해서는 방화지구 폐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광일 군산시의회 의원(월명·흥남동)은 "월명동과 영화동 일대는 소방차가 충분히 진입할 정도로 도로 폭이 넓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없다"며 "그동안 대형 화재가 나거나 불이 번진 사례도 없었기 때문에 방화지구를 해제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목조 건물을 보존하면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화재 안전 조사 연 1회 이상, 소화기구와 소방용수시설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화재예방강화지구 선정 등이 대안이다. 경기 수원시는 경관 개선과 한옥 신축 촉진을 위해 2012년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 일대에 지정됐던 방화지구를 해제했다.

방화지구 지정 지역 해제 현황. 한국일보


'방화지구 지정이 외려 지역 발전에 역행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군산시는 뒤늦게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군산시는 근대 건축물 보수·복원을 위해 2012년 월명동 내 일부 구역(236만㎡)에 한해 방화지구를 해제한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방화지구 추가 해제를 위한 절차를 밟다가 전북도의 불승인으로 무산된 후엔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산시 관계자는 "현재 방화지구 지정 해제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라며 "방화지구를 해제하려면 관계 부서와의 협의,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종 해제까진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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