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3년 3월 발간한 일본 개황 자료
과거사 반성 발언·역사교과서 문제도 빠져
객관적 사실조차 삭제하는 건 부적절 비판
외교부가 2018년 발간한 ‘일본개황’에 일본의 역사 왜곡 관련 발언 사례가 담겨 있다. 2023년판에선 이같은 사례가 삭제됐다. 일본개황 갈무리


외교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발간한 <2023 일본 개황>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 및 과거사 반성’ 발언 사례를 통째로 삭제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사례 와 정부 대응을 기술한 부분도 들어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일본개황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징용) 배상 문제의 ‘선제적 양보’로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던 시기에 발간됐다. 한·일관계 개선을 앞세워 과거사 문제에 소극 대응하는 정부 기조가 투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외교부는 2023년 판은 ‘약식 발간’이라며 “(누락된 자료는) 향후 개정본 발간 시 참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외교부는 지난해 3월15일 2023년 일본 개황(총 223쪽)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일본개황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안보·대외관계 등 전반적인 상황에 관한 정보를 기술한 자료다. 일반에도 공개돼 학술연구 등에 참고 자료로 쓰인다. 정해진 발간 주기는 없으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최소 한 번 이상 개정판을 냈다.

2023년 일본개황에는 기존에 담겼던 ‘일본의 과거사 반성·역사 왜곡 언급 사례’가 사라졌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런 내용은 최소 1996년부터 발간한 7개 모든 개황 자료에 담겨 있었다. 후속판이 나올 때마다 내용이 추가됐다.

직전 판인 2018년 자료를 보면, ‘역사 왜곡 언급 사례’에는 1951년부터 2018년까지 약 67년 동안 일본 주요 인사들의 왜곡 발언이 표로 요약·정리돼 있다. 총 177개다. 일본 총리, 관방장관 등 구체적인 발언자와 시기도 나와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과거 외무상으로 재직할 때 했던 독도 관련 발언 등 20건도 포함됐다. 일본군 ‘위안부’를 두고 “강제성이 없었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일·한 간은 부모와 자식 관계” 등 발언도 포함됐다. 발언의 평가보다는 내용 자체를 객관적으로 나열했다. 일부에는 한국 정부가 성명 발표나 주한일본대사 초치 등을 통해 일본에 항의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외교부가 2018년 발간한 ‘일본개황’에 일본의 과거사 반성 관련 언급 사례가 담겨 있다. 2023년판에선 이같은 사례가 삭제됐다. 일본개황 갈무리


역시 통째로 삭제된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에는 1965년부터 2018년까지 53년간 일본의 천황과 총리 등의 관련 발언 71건이 담겼다. ‘위안부’를 범죄로 인정하고 식민지배·침략을 사죄한 일본의 주요 선언 및 담화도 실렸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고노(1993년)·무라야마(1995년)·고이즈미(2005년)·간(2010년) 담화 등이다. ‘반성’과 ‘사죄’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 않은 아베 담화(2015년)도 포함했다.

2023년 일본개황에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도 삭제됐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본격 불거진 2001년 이후 발간된 총 5차례의 일본개황에서는 교과서 문제를 한·일 관계의 ‘최근 주요 현안’으로 줄곧 기술했다. 특히 2011년을 제외하면 가장 첫번째 현안으로 다뤘다. 교과서 문제는 2018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도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2023년 일본개황에서는 이를 따로 다루지 않았다.

외교부가 일본개황을 공개한 지난해 3월 15일은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시기와 겹친다. 윤 대통령은 그해 3·1절 기념사에서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징용) 배상과 역사 왜곡 문제 등을 언급하지 않은 채,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닷새 뒤인 3월 6일 정부는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관련해 ‘제3자 변제안’을 해결책으로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윤 대통령은 그해 3월 16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한·일 협력 새 시대”를 선언했다.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명시적 사과도 하지 않으면서 일본에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외교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의식해 양국 간 민감한 문제를 걷어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측의 과거 발언 등 객관적 사실조차 삭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은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사무국장은 “정부의 굴욕적인 대일 외교 기조가 일본개황 자료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에 잘 보이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2023년 개황자료는 기존 자료를 일부 수정해 약식으로 발간한 것으로 올해 종합적인 개정본 발간을 준비 중”이라며 “과거사 반성·왜곡 사례 등 자료는 업데이트 중으로 향후 개정본 발간 시 참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정부는 교과서 문제 관련, 일본의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 및 역사왜곡 기술에 대해 단호하고 일관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올해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시에도 대변인 성명 발표, 주한일본대사 초치를 통해 항의한 바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2807 [단독] 김경율 앙투아네트 발언에…尹·한동훈 전화로 언쟁 벌였다 [‘읽씹 논란’ 막전막후] 랭크뉴스 2024.07.10
22806 인건비 늘고 환율 오르고… 2분기 쉬어가는 항공업계 랭크뉴스 2024.07.10
22805 파월 “물가 하락세 지속가능해야”…금리인하 시점 다가오나 랭크뉴스 2024.07.10
22804 '먹방' 뒤 사망한 유명 유튜버… 필리핀 "푸드 포르노 금지 검토" 랭크뉴스 2024.07.10
22803 ‘야말의 유로 최연소 득점’ 스페인, 12년 만에 결승행…프랑스에 2-1 역전승[유로2024] 랭크뉴스 2024.07.10
22802 [속보]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 시간당 60.0mm 집중호우 랭크뉴스 2024.07.10
22801 곡소리 나는 오피스빌딩… 거래량 바닥에 공실률도 최고 랭크뉴스 2024.07.10
22800 “급발진 이슈, 제조사·정부 한발 빼…방치 땐 한국차 이미지도 실추”[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랭크뉴스 2024.07.10
22799 또 올랐구나, 냉면 가격 랭크뉴스 2024.07.10
22798 '진짜 같은 고기 냄새' 나는 배양육, 식탁엔 언제 오를까... 태동하는 '세포농업' 시대 랭크뉴스 2024.07.10
22797 [인터뷰]"트럼프 다시 집권해도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 랭크뉴스 2024.07.10
22796 [급발진 불안감 사회] ① 작년 급발진 주장 교통사고 117건, 4년 만에 2배로 급증 랭크뉴스 2024.07.10
22795 김 여사 문자 논란에 한동훈 집중포화... 與 당대표 후보 첫 토론 랭크뉴스 2024.07.10
22794 ‘김 여사 문자 무시’ 공세에 韓 “尹, 사과 필요 없다고 했다” 랭크뉴스 2024.07.10
22793 페루 최고봉서 실종됐던 美 등반가 22년만에 미라로 발견 랭크뉴스 2024.07.10
22792 "스치기만 해도 입원"... 교통사고 합의금 '맛집'의 정체 랭크뉴스 2024.07.10
22791 충청·남부지방 강하고 많은 비…대구 120㎜ 이상 물폭탄 랭크뉴스 2024.07.10
22790 [기고]역내교역 시대의 원산지 전략 랭크뉴스 2024.07.10
22789 8시간 조사 후 웃으며 경찰서 나선 민희진…"코미디 같은 일"(종합2보) 랭크뉴스 2024.07.10
22788 검찰, 'SM엔터 시세조종' 김범수 소환…20시간여 밤샘 조사(종합2보) 랭크뉴스 202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