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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스틸 컷. ‘하이큐’ 공식 예고편 갈무리


탕. 공중에서만 치열하게 오가던 배구공이 마침내 네트를 지나 상대팀 코트 바닥에 내리꽂혔다. 조용하던 객석에서 ‘와아’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나이스 서브!” “하나 더!” “또 가자!” 여기저기서 외쳤다. 한쪽 면에는 ‘날아라’, 다른 쪽 면에는 ‘(공을) 이어라’라고 적힌 종이 플래카드를 드는 이들도 있었다. ‘날아라’는 공격 중심 배구를 하는 카라스노 고등학교를, ‘이어라’는 철저히 수비 위주 경기를 하는 네코마 고등학교를 응원하는 문구다. 일본 고교 배구 경기 현장 같은 분위기의 이곳은 사실 서울 용산 CGV 아이파크몰 6관, 애니메이션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이하 ‘하이큐’)의 ‘응원 상영회’ 현장이다. 응원상영회에서는 관객들이 진짜 배구 경기장에 온 것처럼 소리를 내 응원을 하며 영화를 본다.

지난 15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하이큐’가 조용한 흥행 중이다.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수 51만4695명(29일 기준)을 동원했다. <범죄도시 4>가 스크린 대부분을 장악하고,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같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한 가운데 거둔 의미있는 성적이다.

‘하이큐’의 인기는 지난해 깜짝 흥행한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 하이큐는 ‘배구판 슬램덩크’라고도 불린다. 관객의 절반 이상이 10~20대인 것을 보면 ‘슬램덩크 다음 세대의 슬램덩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스포츠 만화의 고전, <슬램덩크>와 비슷한 듯 다른 ‘하이큐’의 매력은 무엇일까.

키 160cm 초반의 배구선수가 하늘을 나는 법

<극장판 하이큐!!>의 주인공 히나타 쇼요. NEW 제공


‘하이큐’는 배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만화다. 2012년 연재를 시작해 8년여 만인 2020년 완결됐고,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지금도 나오고 있다. 한때 강호였으나 지금은 약체가 된 카라스노고 배구팀이 전국 대회에 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큰 줄거리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팀의 이야기인 <슬램덩크>와 유사하다. 약체팀의 성장기는 스포츠 만화의 전형적 서사이기도 하다. 그 전형성에 힘을 불어넣는 것은 ‘하이큐’만의 캐릭터 특성과 스토리 전개 방식이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 캐릭터의 특성이다. <슬램덩크>의 주인공은 농구 천재, 강백호다. 키 약 190cm, 동물적 민첩함과 파워를 모두 갖춘 그는 농구에 완벽한 신체 조건을 갖고 있다. 굳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스포츠인으로서 갖춰야 할 ‘성숙한 마음가짐’ 정도다.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스틸 컷. ‘하이큐’ 공식 예고편 갈무리


‘하이큐’의 주인공 히나타 쇼요 역시 배구 천재다. 333cm까지 뛰어오르는 놀라운 점프 실력과 눈 깜짝할 사이 코트 반대편까지 이동할 수 있는 스피드를 갖췄다. 강백호와 달리 이미 정신적으로도 성숙하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신체 조건이다. 막 고등학생이 된 히나타의 키는 162cm. 네트 위로 공을 넘기고 막는 ‘높이의 스포츠’, 배구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체격이다. <슬램덩크>가 강백호가 재능과 체격을 무기로 쭉쭉 뻗어 나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면, ‘하이큐’는 히나타가 ‘키’라는 벽을 깨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스틸 컷. 만화의 서브 주인공인 카게야마 토비오. ‘하이큐’ 공식 예고편 갈무리


주인공이 사실상 둘이다. 서브 주인공인 카게야마 토비오는 천재 세터다. 세터는 공격수에게 토스를 올려주는 포지션이다. 세터가 언제, 누구에게 토스하느냐에 따라 경기 흐름이 달라진다. 카게야마는 180cm 이상의 큰 키, 뛰어난 운동신경, 세터에 필요한 냉정한 판단력을 갖췄다. 토스도 기술적으로 완벽하다. 문제는 그 토스를 받아줄 ‘그와 대등하게 뛰어난’ 파트너가 없다는 것이다. 스파이커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토스를 올리는 그에겐 독선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는 팀과 어울리지 못하고, 팀과 어울리지 못하는 세터는 경기를 운영할 수 없다. 카게야마는 카라스노고에서 자신의 토스를 받아줄 수 있는 히나타와 만나며 배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둘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파트너이자 라이벌이 된다.

‘엑스트라’가 없는 만화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코즈메 켄마. NEW 제공


‘하이큐’에는 “배구는 6명이 하는거야” 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만화는 집요할 정도로 ‘팀’을 강조한다. 카라스노고가 자기보다 센 상대로 승리하는 이유는 히나타와 카게야마라는 ‘괴물 콤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부족한 점을 나머지 4명이 메워주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은 혼자 극복할 필요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것, 함께 가야만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만화의 주제 의식이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을 자세하게 조명하는 것도 ‘하이큐’의 특징이다. 만화는 상대팀 선수와 감독의 개인적 서사, 심지어 상대팀 A와 B가 하는 경기까지도 자세히 그린다. 어떤 회차에는 카라스노고가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보다보면 주인공팀보다 상대팀을 응원하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스틸 컷. ‘하이큐’ 공식 예고편 갈무리.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은 카라스노고의 라이벌 학교인 네코마고와의 시합을 담고 있다. 원작에서 가장 인기있는 에피소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 것처럼, ‘하이큐’ 역시 히나타가 아닌 네코마고의 세터인 코즈메 켄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 무리는 없다. 바닥에 배구화가 ‘끼익 끼익’ 끌리는 소리, 랠리가 계속되며 점점 지쳐가는 선수들의 숨소리가 실감 나게 구현됐다. 특히 후반부에 코즈메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경기 장면은 웬만한 실사 영화보다 더 생생하다. 마지막에 쿠키 영상이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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