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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울산 디스토피아’ 쓴 사회학자 양승훈
양승훈 경남대 교수가 27일 오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일본의 금융정보 사이트 ‘머니원(Money1)’이 지난해 11월13일 야후재팬에 ‘한국은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면밀한 분석을 담은 것은 아니고, 그저 한국의 경제성장률 추이를 보여주는 기사에 불과했지만 제목이 자극적이었다. 국내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피크 코리아’란 말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피크 코리아’의 징후는 새삼스럽지 않다. 수출 제조업을 일으켜 1980년대까지 고성장(연평균 9.5%)을 했던 한국경제는 이제 잠재성장률이 1%를 밑돈다(경제협력개발기구)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힘이 빠졌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출산율의 저하는 미래 또한 어둡다는 뚜렷한 신호다. 하락에 브레이크를 걸고, 방향을 돌릴 방법이 있을까?

길을 찾으려면 먼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양승훈(경남대 교수)은 한국 제조업의 중심부에 현미경을 들이대온 사회학자다. 2019년 조선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거제도의 빛과 그림자를 다룬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썼던 그가 5년 만에 한국 제조업의 메카 울산에 초점을 맞춘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냈다. 한국 제조업에 대한 ‘냉정한 현실인식’을 촉구한다. 그를 만났다.

―거제도를 다룬 전작의 제목엔 ‘유토피아’가 있었는데, 이번에 울산을 다룬 책의 제목엔 ‘디스토피아’란 표현을 썼네요.

“유토피아라는 말에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신기루라는 의미도 있지요. 제가 조선업의 메카인 거제도를 얘기할 때는 ‘있었는데 없어졌다,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 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울산에 대해서는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낙관론이 많고, ‘울산은 잘 살잖아’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에 경종을 울리자는 의미에서 ‘디스토피아’를 제목에 담았습니다. 우리는 표층에 보이는 것만 보고 현혹되는 일이 많지요. 잘 보이지 않지만 표층 아래 지층에 쌓여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중공업 가족’이셨지요?

“아버지도 첫 취업이 조선사였다고 들었고, 알아보니 아버지의 사촌들은 그곳에서 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거제도의 조선사에서 일했습니다. 조선산업이 괜찮을 때 들어갔다가 한창 구조조정을 할 때 떠나왔습니다. 저는 전략혁신담당(기획)에서 일했는데, 그때부터 제가 일하던 회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런 질문을 자꾸 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기록했고, 언젠가는 이 기록을 좀 정리해서 남기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가 그 기록입니다. 인류학적 보고서인데, 사람에 대한 인터뷰는 다 뺐습니다. 오래 전 일이 아니라 예민할 수 있어서요.”

조선업, 하청 확대·외국인 노동자의 길로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맨땅에서 시작해 노동자들의 성실성, 현장에 기반한 기술 혁신, 중국 시장의 팽창 같은 시운까지 겹치며 2010년대 초반까지 성공신화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무렵부터 조선사들이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며 본격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기업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인력 조정이 이어졌습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내고 5년이 지났는데, 조선업황은 좀 회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가 ‘조선 수주 1위’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2025년에는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증권사 보고서도 나와 있습니다.

“조선산업의 경기 사이클과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의 큰 흐름은 좀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조선산업의 업황으로 말하자면 2019년 이후에 살아날 때였는데 코로나 대유행으로 지연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박 최대 발주가 2000년대 초반이니까, 20년 지났습니다. 발주가 늘어나는 사이클이 오고, 또 국제해사기구가 환경 문제로 규제를 가하니까, 선박 교체 수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조선업 경쟁력이 천연가스운반선 등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선종에서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경쟁력 쇠퇴와 관련해 강조했던 ‘인력’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조선업은 인건비 비중이 20%에서 최대 25%까지 됩니다. 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내 하청을 계속 늘리고, 노동자들의 숙련도는 점차 떨어지고, 설계 부문과 작업 현장은 거리가 멀어지고, 그것이 결국 대규모로 수주했던 해양 플랜트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내국인을 뽑을 여력이 없다며, 외국인노동자들을 대거 뽑아 쓰는 실험에 들어간 단계입니다.”

―정부가 많은 산업에서 외국인 고용 확대를 적극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업에서 외국인 고용 확대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것같습니다. 작년 초에 정부가 ‘숙련기능인력’의 연간 쿼터를 2천명에서 5천명으로 늘리고 조선업에는 400명에 이르는 별도의 쿼터를 신설했습니다. 기업별 내국인 상시근로인력(3개월 이상 근로)도 20%까지 허용하는 것을 30%로 확대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졸업자도 있지만 공과대학 나온 이들도 많습니다. 타이나 베트남에서 오는 이들은 설계도 가능한 인력입니다. 이걸 보면 조선업체들이 인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나요? 단기 중기적으로는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존에 한국 노동자들이 하던 것만큼 생산에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냐가 관심사겠고, 중기 장기적인 질문은 이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준비해야 되느냐일 것입니다. 한때는 좀 보살펴야 할 대상처럼 생각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문인력의 자리까지 대체해간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죠? 그동안 조선업체 기본설계 부문은 서울로 가장 먼저 올라갔고, 현장 가까이에 있던 상세 설계와 현장 설계 가운데 상세 설계도 올라갔고, 생산 설계는 외주화가 많이 됐습니다. 생산 설계 부문을 외국인들이 많이 대체할 텐데요. 상시고용인력의 30%까지 써보는 실험을 해보고 있는 거죠. 이들 급여는 1인당 국민순소득의 70%까지는 줘야 합니다. 정규직 생산직 초봉이랑 비슷한데, 그런 조건이라면 우리나라 청년들을 불러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노동조합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무기력합니다. 우리 원청의 직영 노동자를 뽑아라 말을 하긴 하지만요. 단협 의제에서는 순위가 한참 뒤에 있지요.”

―외주 하청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길 대신,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높이고 경쟁력을 더 키우는 길로 갈 수는 없었을까요?

“회사 쪽이 한때 숙련 압력을 요구했던 적이 있는데 잘 호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노사 교섭에서는 당면 임단협에서 승리하는 것에 중점을 뒀고요. 또 조선소 노동자들은 40대를 넘어가면 근골격 계통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저항감이 있습니다. 회사는 그걸 하청을 늘리는 구실로 활용했고.”

현대차, 고숙력·고임금 대신 모듈화·자동화의 길로

―‘울산 디스토피아’를 보니, 자동차 조립 공정은 거의 자동화가 돼서 훈련이 거의 필요없는 단계라고 쓰여 있더군요.

“머잖아 작업장에 맨발로 다녀도 될 겁니다. 로봇과 자동화 설비가 작업을 거의 다 이끌어가고 사람은 최소한의 조립 정도만 하는 수준까지 온 거죠. 현대차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고숙련 고임금 모델을 고민했던 것같은데, 노조가 교육받는 걸 거부했고 작업이 단순화되는 걸 바랐습니다. 회사가 노사관계에서 가장 신경썼던 건 생산 차질이었던 것같습니다. 조선업이 하청, 외국인 노동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는 길을 걸었다면, 현대자동차는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모듈화를 진행해 부품회사들에게 원가와 품질 관리의 많은 부분을 맡겼죠. 조립·완성을 하는 현대차에는 별로 작업할 게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고용 인력이 한때 4만5천 명에서 지금 3만5천 명까지 줄었는데, 새로 뽑을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비정규직 이슈도 거의 해결됐고요.”

―현대차가 미래 신사업 추진을 위해 4만4000명을 신규 채용하는 등 2026년까지 3년간 8만명을 신규채용한다고 밝혔습니다.

“1만3천명은 고령자 재고용이지요. 나머지 인력은 연구개발 중심인데, 대부분 울산이 아니라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 주변에서 일하겠지요. 현대차는 남양연구소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조립 현장에는 최소 임금으로 최소한의 작업만 맡기고 싶어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완성차 업체에서 이제 고용을 늘리기 어렵다는 것은 노동자들도 잘 압니다. 문제는 산업 전체로 볼 때 부품사들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가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고용은 거기서 대거 이뤄지니까요. 현대차의 2차 이하 벤더(납품업체)들은 연구개발(R&D)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원청이 그걸 할만한 여력도 주지 않았지요. 그런데 현대차가 지금은 연구개발을 하라고 채근하고, 글로벌 메이커에 왜 납품 못하냐고 압박합니다. 하지만 납품업체들은 원가를 맞추는 데만 최적화돼 있고 작업 환경은 청년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이른바 3D(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현장입니다. 현대차가 해외 부품 조달을 늘리려 하면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품 소재 장비 쪽을 강화하지 못하면, 단순 부품은 중국에서 조달하고 고부가가치 부품은 그동안 한국에서 조달하던 것도 유럽 등지에서 조달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현대차는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정치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바뀌겠죠. 외국에선 폴크스바겐이나 벤츠에 납품하던 괜찮은 부품 업체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그러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챔피언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거제도에는 조선업 뿐이지만, 울산에는 조선소 말고도 자동차, 석유화학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 제조업의 메카입니다. 제가 1인당 지역내 총생산 흐름을 살펴봤더니, 울산은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압도적인 1위로 2011년까지는 전국 평균과 격차를 벌려왔는데 그 뒤 2020년까지 거의 정체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위기는 오래 된 것인데,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한국 제조업이 여전히 괜찮은 것같은 착시를 부른 것같습니다.

“반도체 착시도 있지만, 완성품을 만드는 대기업들은 실적이 좋으니까, 위기가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도 있습니다. 문제가 후방으로 유예돼 있는 거죠.”

고용, 대기업 아닌 부품·소재·장비 산업 몫으로

―제조업 경쟁력과 관련해 2015년에 나온 ‘축적의 시간’이란 책이 큰 화제가 됐었죠. 다른 의견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축적의 시간’은 우리가 여전히 기본 설계 역량이 떨어진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원청 대기업들은 이미 다 그 역량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라면 기본 설계부터 최종 생산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다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조선업도 그렇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중견기업 중에 대기업이 될 수 있게 축적의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기업들이 안 나타나고 있다는 것, 중소기업들이 강소기업이 되기 위해 직접 연구개발을 하고 기본 설계를 해야 되는데 그런 역량 수준까지 못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용은 소재, 부품, 장비에서 일으킨다, 그런 관점에서 제조업 메카 울산이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부품이나 장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들, 뭔가 혁신해야 하고 규모를 키우면서 챔피언이 돼야 되는 기업들은 대부분 다 지역에 있습니다. 부산, 울산, 경남에 특히 많죠. 그곳을 뭔가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만들면, 지방을 살리는 의미도 있습니다. 제조업 스타트업으로 한번 성공해 보고 싶다면 부울경(부산·울산·경남)으로 오라, 거기엔 생산을 실제로 지휘했던 엔지니어와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하우가 모여 있고, 도면을 들고 오면 양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거점으로 만드는 거죠. 독일에서 썼던 모델이고,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도 어려운데 왜 잘 사는 부울경이냐,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곳은 우리나라 산업화가 만든 공유자원입니다. 하나의 축이 견고해야, 다른 곳과 단단하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 그동안 많이 얘기됐던 것 중 하나가 ‘부울경 메가 시티’론이지요? 지자체 간 의견이 엇갈려 답보상태인데요.

“부울경 메가시티 하면 사람들은 가덕도 신공항부터 떠올리는데, 지역 내 이슈는 철도망, 전철망입니다. 그게 되면 부산은 대학이 많은 반면 일자리가 없고, 경남과 울산은 일자리는 많은데 대학이 없고 연구소가 필요한데 인력은 없는 딜레마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연결망의 강화가 고부가가치 창출을 모색하는 하나의 방향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건데, 지자체 간 내부 이익 조정이 사실 좀 어려운 일이긴 했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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