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삼청교육대.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아현씨(가명)는 흉악범 기사에서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면 속이 답답해진다. “심지어 친구들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버지 정모씨(가명·62)는 1980년 말 군·경에 붙잡혀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피해자다. 아현씨는 그 말들 하는 친구 앞에 굳이 아버지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남 일인 것처럼 “나도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도 많더라”고만 말한다.

아현씨 언니 정인아씨(가명·39)도 아버지 피해 사실을 주변에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지난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정씨의 사건을 진실규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우편물이 집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무슨 우편물이냐”는 시부모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인아씨는 “아무래도 시선이 (나쁜 쪽으로) 달라질 것이란 걱정이 들더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삼청교육대’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 편견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 실종된 오수미 삼청교육 피해자유족회 대표는 “사회적 낙인으로 자녀 앞길에 해가 될까 봐 같이 살지 못하는 피해자도 많다”며 “인식 개선과 더불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한 화해·치유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7년 발간한 보고서는 “상당수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도모하고 심리적·신체적 피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실태조사와 치료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2022년 진실화해위는 트라우마 실태 조사를 위한 전문가 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실질적 피해 회복은 여전히 어려운 실정이다. 오 대표는 “치료·회복을 지원받을 수 있는 수단이 현재로선 없다”고 했다.

아현씨와 인아씨는 아버지가 삼청교육대 피해 트라우마를 평생 겪어왔다고 했다. 인아씨는 “아빠는 악몽을 꿔서 매일 밤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한다”며 “지금까지도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경찰만 보면 분에 겨워한다고 했다.

삼청교육대의 기억은 아버지에게 폭력성을 심기도 했다. 자매는 평소에 다정하던 아버지가 훈육할 때 돌변하며 체벌을 가했다고 한다. 아현씨는 “강압적으로 얼차려를 주곤 했는데, 삼청교육대에서 겪은 걸 그대로 우리한테 했던 거란 걸 나중에 깨달았다”고 했다.

“이전엔 아버지가 그저 미웠지만, 이제는 안쓰럽다”고 인아씨는 말했다. 아현씨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니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고 생각했다”며 “이젠 반대로 ‘끌려갔던 기억’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구나 싶다”고 했다. 자매는 “죄없이 끌려가서 두들겨 맞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이 들어서도 아픈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던 아버지의 넋두리가 기억난다고 했다.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아물 수 있다고 보나’ ‘삼청교육대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자매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아버지를 모시고 삼청교육 피해자유족회 모임을 찾았다는 두 사람은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더라”며 “그 일이 없었더라면 다들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인아씨는 “나쁘게 보는 시선이 사라지기까진 오래 걸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국가 차원의 더 적극적인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4095 실종 대학생 숨진 채 발견‥복구는 시작됐지만 랭크뉴스 2024.07.12
24094 '피카소 그림'으로 관객 모은 미술관 "사실은 아내가 그렸다" 랭크뉴스 2024.07.12
24093 가로수 들이받고 도망간 전직 축구선수... "술 마시고 운전대 잡았다" 인정 랭크뉴스 2024.07.12
24092 배수장 멈춰 침수?…주민들 “명백한 인재” 랭크뉴스 2024.07.12
24091 “우크라전 같은 사태 동아시아에서도”…“미·일 미사일 방위 강화” 랭크뉴스 2024.07.12
24090 야당 법사위원들, 대통령실 찾아 ‘탄핵 청원 청문회’ 출석 요구서 수령 촉구 랭크뉴스 2024.07.12
24089 ‘핵작전 지침’ 승인…“어떤 공격에도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 랭크뉴스 2024.07.12
24088 검찰, '이재명 지지' 신학림 문자 확보…申 "허위 프레임"(종합) 랭크뉴스 2024.07.12
24087 ‘김재규의 변호인’ 안동일 변호사 “10·26 김재규 재판은 절차적 정의 철저히 무시” 랭크뉴스 2024.07.12
24086 정몽구 집무실 혼자 쫓아갔다…가문의 금기 깬 정의선 고집 랭크뉴스 2024.07.12
24085 공수처 검사, ‘VIP 구명’ 이종호 변호 이력…채상병 수사팀 새로 짠다 랭크뉴스 2024.07.12
24084 “재범 위험”… 지하철 2호선 흉기난동 50대, 2심서도 징역 2년 랭크뉴스 2024.07.12
24083 "대선 때 썼던 애들 안 쓰나?"‥여권 내 '댓글팀' 파장 계속 랭크뉴스 2024.07.12
24082 국민의힘, 김성태 1심 실형에 “대북송금 의혹 모든 증거와 정황, 이재명 향해” 랭크뉴스 2024.07.12
24081 ‘비방전 국힘 제재’ 원희룡-한동훈, ‘보수의 심장’서 또 격돌 랭크뉴스 2024.07.12
24080 박지성도 입 열었다 "슬프고 참담…정몽규·홍명보 결단해야" 랭크뉴스 2024.07.12
24079 해운대 로데오거리서 80대 운전자 몰던 차량 산책로 진입 랭크뉴스 2024.07.12
24078 "한동훈 되면 당정 위험"... 텃밭 TK서도 '韓 견제'만 눈에 보인 與 랭크뉴스 2024.07.12
24077 9년전 北여름캠프 참가한 러 청년 "아침마다 김일성 동상 닦아" 랭크뉴스 2024.07.12
24076 토요일 전국 내륙 무더위… 체감온도 33도 이상 랭크뉴스 202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