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경기장으로 향하는 제주유나이티드 선수의 유니폼에 선수의 이름이 없습니다. '제주 삼다수'라는 글씨 아래 등 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습니다.

지난 2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제주유나이티드와 수원FC와의 경기 후반전에서, 제주유나이티드 선수 11명은 모두 이름 없이 출전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이날 이름 없는 선수단의 등장에 관중석은 술렁거렸습니다. 장내 방송을 통해 '이름 없는 유니폼'의 취지가 알려지자 곳곳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름 없는 유니폼'은 소중한 기억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마저 잊어버리는 치매 증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치매 징후와 증상에 대해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고,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K리그 최초로 시도한 겁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눈부신 선방을 펼친 김동준 선수는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어서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상대의 슈팅을 막아냈다"며 "관중석에서는 주로 내 뒷모습이 보이는데, 내가 선방할수록 유니폼이 중계화면에 잡혀 치매 인식 개선에 힘을 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의 유일한 프로스포츠 구단인 제주유나이티드가 캠페인에 동참한 배경에는 제주를 치매 친화 도시로 만들기 위한 제주광역치매센터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박준혁 제주광역치매센터장은 "전 세대가 함께 만드는 '치매가 있어도 살기 좋은 제주'를 실현하기 위해 기획한 캠페인"이라며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축구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협조 요청을 받은 원일권 제주유나이티드 홍보담당은 "제주가 연고지인 축구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판단해 흔쾌히 동참하게 됐다"며 "선수들 역시 의미 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에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3월 벨기에에서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른 적 있습니다.

치매 환자를 위한 영국의 자선단체 '알츠하이머협회'와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A)가 주관해 진행된 것으로, 이들 역시 치매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며 큰 울림을 줬습니다.

당시 알츠하이머협회 측은 "사랑하는 가족이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생각될 때 진단을 결심하는 건 곧 중요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과 같다"며 단순히 인식을 제고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제주에서 재현된 치매 인식 증진 캠페인 날, 치매 환자와 가족 50여 명과 관련 종사자들도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이름 없이 경기장을 뛰는 선수들을 지켜본 한 치매 환자 가족은 "가족이 치매에 걸린 이후 바깥에 드러내는 걸 원치 않았는데, 모두가 같이 치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자리에 초청받아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며 "지쳐 있었는데 용기가 난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제주광역치매센터 프로그램 일환으로 오는 9월 작품전을 준비하고 있던 한 70대 치매 노인은 "내 이름으로 작품을 내보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이걸 해도 되나?' 싶었는데, 잘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며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김지영 제주광역치매센터 홍보팀장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치매 환자나 가족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고 싶었다"며 "조금이나마 진심이 닿은 것 같아서 제주유나이티드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역 사회 전체가 합심해 극복해야 할 과제"라며 "앞으로도 전 세대가 동참하는 치매 친화 도시 제주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기획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네이버,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3827 '망했다'던 아베크롬비, 어떻게 '월스트리트 애정템' 됐나[케이스스터디] 랭크뉴스 2024.07.12
23826 [증시한담] 요즘 개미, 얕은수에 안 넘어갑니다 랭크뉴스 2024.07.12
23825 이재명, 금투세 유예로 방향 틀었지만... 증권가 “다시 준비하기도 쉽지 않아, 빨리 확답을” 랭크뉴스 2024.07.12
23824 증시는 꿈과 신뢰를 먹고산다는데…[하영춘의 경제이슈 솎아보기] 랭크뉴스 2024.07.12
23823 "난 한국·중국·북한 어디 사람이야?" 엄마 울린 9살 딸의 질문 랭크뉴스 2024.07.12
23822 “사랑받고 싶었다” 울먹인 전청조… 검찰, 징역 15년 구형 랭크뉴스 2024.07.12
23821 유치원 교사가 킥보드로 4살 원아 머리 폭행…경찰 조사 랭크뉴스 2024.07.12
23820 [단독] “한미 경영권 분쟁 더 못참아”…소액주주 1200명 삼남매에 한 말이? 랭크뉴스 2024.07.12
23819 나경원 "元, 지지율 멘붕에 난폭운전…韓, 위험한 무면허 운전" 랭크뉴스 2024.07.12
23818 [특징주] 네이버, 장 초반 18만원대 회복…실적 눈높이는 낮아져 랭크뉴스 2024.07.12
23817 실종 이틀 만에… 익산으로 MT 온 의대생 우산·신발 발견 랭크뉴스 2024.07.12
23816 尹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 NATO 회의 등 마치고 귀국길... “외교·안보 분야 성과” 랭크뉴스 2024.07.12
23815 CNN “러, 독일 방산기업 CEO 암살 계획 불발” 랭크뉴스 2024.07.12
23814 [특징주] ‘지배구조 개편’ 두산로보틱스, 10%대 강세… 에너빌리티·밥캣 약세 랭크뉴스 2024.07.12
23813 폭우 속에 사라진 대학생 실종 사흘째…만경강까지 수색 확대 랭크뉴스 2024.07.12
23812 "안마의자 수리를 8번이나 받았다고?" 의료용구 중 소비자 불만 최고 기록 랭크뉴스 2024.07.12
23811 “빅5 출신이 맹장 수술 못하기도…전공의 수련 개선해야” 랭크뉴스 2024.07.12
23810 [단독] 금융위원장 후보자 신고목록에서 빠진 땅…종중이 주인? 랭크뉴스 2024.07.12
23809 모르던, 모르고 싶던 역사…오키나와 조선인 학살[책과 삶] 랭크뉴스 2024.07.12
23808 호우 농작물 침수 면적 1만㏊ 넘어…닭 77만마리 폐사 랭크뉴스 202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