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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주행 데이터 국과수와 차이
“할머니, 페달 오조작 하지 않은 것 입증”
상훈씨의 법률 대리인인 하종선 변호사가 27일 재연시험의 감정 결과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기다렸던 결과인데도 답답하네요.”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아들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을 잃은 상훈씨는 27일 차량 결함을 뒷받침할 감정 결과가 나왔는데도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상훈씨 측은 이날 강원도 강릉시 강릉교회 티지홀에서 국내 최초로 이뤄진 사고 ‘재연 시험’ 감정 결과를 브리핑했다. 브리핑에 따르면 정밀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운전자였던 도현이 할머니가 가속페달(액셀)을 밟지 않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결과가 나왔다.

상훈씨는 이런 결과가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다고 했다. 상훈씨가 차량 제조사와 법정 다툼에 나선 것은 단지 아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억울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9일 21대 국회가 종료되기 전까지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는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22대 국회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변속 패턴, 주행 데이터…국과수와 달랐다

재연 시험은 지난달 19일 오후 1시쯤 도현이가 숨진 강원도 강릉시 회산동 아파트 인근 도로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도현이가 2022년 12월 6일 급발진 의심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501일째 되는 날이었다. 당시 시험은 차량 제조사(KG모빌리티)와 7억6000만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상훈씨 측이 법원에 감정을 신청하며 이뤄졌다. 법원에서 선정한 감정인 참관하에 재연 시험이 진행됐고, 약 한 달 만에 그 결과가 나왔다.

상훈씨 변호를 맡은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27일 브리핑에서 “(감정 결과) 할머니는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음이 입증됐다”며 “폐달 오조작이 아니므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재연 시험은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에 제조사에서 제공한 ‘변속장치 진단기’를 부착한 상태로 진행됐다. 하 변호사에 따르면 그 결과 ▲사고 당시 사고기록장치(EDR) 기록대로 ‘풀 액셀’을 밟았을 때 ‘속도 변화’가 국과수 분석과 달랐고 ▲‘주행데이터’ 역시 현저히 달랐으며 ▲제조사 측 주장과 달리 ‘변속패턴’ 또한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당시 도현이 할머니가 운전하던 차량은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한 뒤, 약 780m를 질주했다. EDR에 따르면 해당 차량은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재연 시험에서 이 기록을 토대로 가속 페달을 100% 밟은 채 5초간 주행했더니 속도가 시속 130㎞까지 증가했다. 국과수 분석치인 116㎞보다 속도 증가 폭이 큰 것이다.

사고 당시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았을 때 속도 변화를 이번 재연 시험 결과와 국과수 분석치를 기준으로 비교 및 분석한 자료. 상훈씨 제공

상훈씨 측은 “EDR이 사고 마지막 5초간 풀 액셀 상태였다고 기록하면서도 속도가 시속 110㎞에서 116㎞로 6㎞밖에 증가하지 않은 것은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EDR은 그 당시 차량의 상태를 기록하는 것이지 운전자의 조작 행위를 기록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EDR 기록을 토대로 운전자 과실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속도, RPM, 변속단수 등 ‘주행데이터’도 국과수 분석 결과와 현저히 달랐다. 모닝 추돌 직전 시점으로 돌아가 시속 40㎞에서 변속 레버를 ‘주행(D)’으로만 두고 2~3초간 풀 액셀을 밟자 실제 속도는 시속 40→73㎞, RPM은 3000→6000, 기어는 4단→2단→3단으로 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어가 ‘중립(N)’인 상태에서 속도 및 RPM이 각각 시속 40㎞와 6200∼6400으로 일정했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전혀 다르다.

이번 재연 시험의 주행 데이터와 국과수 분석치를 비교한 것. 상훈씨 제공

모닝 추돌 이후를 기준으로 풀 액셀을 밟았을 때도 국과수 분석치와 차이를 보였다. 재연 시험에서는 시속 44㎞에서 120㎞까지 18초가 걸렸지만, 국과수는 40㎞에서 116㎞까지 24초가 걸렸다고 분석했다. 재연 시험에서는 국과수 분석 때보다 상대적으로 높고 빠르게 가속이 이뤄진 것이다. 상훈씨 측은 이 역시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았던 증거라고 설명했다.

또 그동안 제조사가 변속패턴 설계자료를 토대로 주장한 속도 변화와 이번 재연 시험에서 나온 수치들도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비교·분석 결과 일치하는 사례는 1~2건에 불과했고, 8~9건은 최소 4~7㎞에서 최대 54~81㎞까지 차이가 났다. 하 변호사는 “재연시험에서 변속패턴 설계자료대로 속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번 사고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재연 시험 결과와 변속패턴 설계자료를 비교한 것. 대부분의 수치가 다르게 나왔다. 상훈씨 제공

“법 바뀌어야 비극 막는다”
재연 시험이 진행된 지난달 19일 도현군의 아버지 이상훈씨가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상훈씨는 재연 시험을 위해 사고 차량과 동일한 모델의 차량을 수소문하고, 운전 전문가를 섭외하고, 강릉시와 경찰에 도로 통제를 요청했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상 급발진 사고 원인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훈씨 측은 이날 결과 브리핑과 함께 사고 당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S) 작동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추가 재연 시험을 진행했다.

상훈씨는 이런 현실이 바뀌기 위해서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훈씨는 “현행법상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하고 있는 건데, 반면 제조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이 참 답답하다”며 “사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와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상훈씨는 22대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상훈씨는 “여야 국회의원분들을 만나 대표 발의를 요청하고, 조만간 국민동의청원도 게시할 예정”이라며 “법이 바뀌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더불어민주당 박용진·허영 의원 등이 해당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계류를 거듭했다.

한편 상훈씨는 다음 달 18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제조사와 법정 다툼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재연 시험 결과를 두고도 공방이 계속될 전망이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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