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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입장’ 견지해 온 윤 대통령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발표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포함된 의미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26일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한중 외교·안보 대화 신설 등에 합의하고 경제 문제에서 구체적 협력 방안들을 내놓았지만, 중국쪽 발표문에 나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란 표현이 미묘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26일 밤 공개한 발표문 성격의 보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이런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과거처럼 흔들림 없이 한중 관계 발전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에 대해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입장'을 기본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중국 ‘입장’과 ‘원칙’은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중국식 표현인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국가이고 중화인민공화국만이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이며, 나아가 중국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대만 통일을 실현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과 수교하는 각국에 이를 ‘원칙'으로 지키며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말라고 요구해왔고,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과 가까운 국가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한다’는 공식적 언급을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의 ‘하나의 중국 입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한정된다.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문구로 정리되어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도 비슷한 입장이다.

중국 측 발표문 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기존의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을 바꿔, 중국의 요구대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27일 “우리 정부는 92년 한중 수교 이래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을 유지해왔으며, 이번 회담에서도 그러한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면서, “이와 함께 우리측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중국쪽 발표와는 차이가 있지만, 한중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 쪽에 이에 대해 항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국 외교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중국 외교부가 한국 정상의 표현을 중국식으로 바꿔 ‘의도적 외교 결례’에 해당하는 발표문을 낸 셈이 된다. 더구나 대만 문제의 민감성을 고려하면, 매우 의미심장한 ‘외교 결례’일 수 있다.

중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최근 대만에서 독립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취임한 이후 중국은 대만 문제에 대해 매우 예민해졌다. 다른 나라에 대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대만을 포위하는 봉쇄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대만 관련해 ‘선을 넘는 발언’으로 중국과 충돌한 당사자다. 당시 윤 대통령은 “결국 힘을 통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 때문에 대만 해협의 긴장이 일어났다”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그러한 변화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이슈”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에 대해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는 한중관계 악화의 큰 원인이 되어 왔다. 중국은 이후 한중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26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제의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면, 중국 정부가 국내 여론을 향해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의도에 한국이 끌려가는 것은 국제적으로 한국의 외교 입장을 난처하게 할 수 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중국학)는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선을 넘는 발언으로 중국을 자극했다가, 중국과 조금 관계가 개선되는 조짐이 있으면 중국의 요구대로 너무 끌려가 대만을 완전히 무시하는 식으로, 명확한 좌표가 없이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 교수는 “리창 총리의 이번 방문의 주요 목적중 하나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한국으로부터 명확한 입장을 받아내려는 것”이라면서, “대만 문제가 이번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국제정세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한국은 명확한 원칙과 좌표를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6일 주한 중국 대사관이 배포한 회담 결과 발표문의 비공식 국문 번역본에는 ‘윤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고 했다’는 부분은 빠져 있다. 중국 외교부가 국내 여론과 해외 독자를 따로 고려한 것일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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