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구글본사 디렉터 정김경숙씨 해고 후 N잡러 경험담 출간
"한국 사회, 타이틀에 너무 연연…가슴 뛰는 일 하고 싶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정김경숙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비영어권 출신 최초로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가 됐다가 작년 초 정리해고 당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지낸 경험을 신간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위즈덤하우스)에서 소개한 정김경숙(56·로이스 김) 씨가 24일 연합뉴스 본사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2024.5.27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구글은 제 인생의 거의 99%였습니다. 제 별명이 '뼛속까지 구글러'였어요. 그만큼 나의 회사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심장을 떼면 죽는 것처럼 구글이라는 정체성을 잃으니 상실감이 컸어요"

비영어권 출신 최초로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가 됐다가 작년 초 정리해고 당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지낸 정김경숙(56·로이스 김) 씨는 한국법인을 포함해 16년간 몸담았던 구글이 자신을 내쳤을 때의 기분을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해고 통지 후 정김씨는 충격을 딛고 슈퍼마켓 체인점인 트레이더 조의 크루 멤버(시급제 매장 직원)와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또 승차공유 서비스업체 리프트의 운전사로도 활동하고 반려동물을 돌보는 펫시팅도 하는 등 이른바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로 살았다.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는 정김경숙
[정김경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김씨는 "N잡러를 하지 않았다면 해고 충격이나 슬픔을 원만하게 극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면서 "몸뚱이 하나로 (일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자신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몸을 쓰는 일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트레이더 조에서 지게차를 몰거나 손수레로 물건을 옮기는 일은 요령을 익히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스타벅스에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음료 주문에 진땀을 흘렸다.

하루 약 2만5천보를 걷고 수면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강행군했다고 한다. 새벽 3시에 기상해 트레이더 조에서 10시간을 일했다. 점심시간에는 리프트에 로그인해서 운전하며, 오후에는 스타벅스에서 6시간 정도 근무했다. 퇴근길에는 의뢰인의 고양이를 돌보고 밤에 집에 와서 각종 컨설팅 아르바이트를 하고서 잠자리에 드는 식의 생활을 한 것이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정김경숙
[정김경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김씨는 이런 경험을 지난달 출간한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위즈덤하우스)에 실었다. 링크트인에 올린 경험담을 45만명 넘게 열람할 정도로 이목이 쏠렸다.

정김씨는 N잡러 생활에 대해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은 정말 다르다"며 "배울 것이 매우 많았다"고 새로운 경험이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구글에서) 엔지니어들, 몇억 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을 접하다가 (퇴직 후) N잡러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구나'라고 느꼈고 많이 반성했죠."

다만 이들이 모두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N잡러가 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면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는 소매 현장을 체험하고 싶어서 부업을 하는 마케터나, 사람들이 어떤 식품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온 셰프도 있었다는 것이다.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는 정김경숙
[정김경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김씨는 한국 사람들이 전 직장의 지위를 의식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것에 대해 "껍데기, 타이틀에 너무 연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앞서 살아왔던 것 때문에 뒤에 올 기회를 아예 생각 안 하는 건 참 안타깝다"고 의견을 밝혔다.

트레이더 조 동료 중에는 73세 노인도 있다. 정김씨는 그를 만난 후 "내가 이렇게 몸으로 일해도 앞으로 한 20년은 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보다 더 나이 많은 동료를 보면서 인생 2막이라는 것은 정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축구의 승부는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후반전을 막 시작한 단계죠."

10대 때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여러 경험을 쌓으며 진로를 선택하는 미국 젊은이를 지켜본 정김씨는 한국이 너무 획일화된 것이 아닌가 안타까움도 느끼고 있다.

그는 의대 등 경제적 보상이 기대되는 분야로 인재가 치우치는 것을 젊은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면서 "아이를 키울 때 획일화된 방향으로 너무 푸시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기성세대에게 하고 싶다"고 했다.

저서 들고 있는 정김경숙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비영어권 출신 최초로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가 됐다가 작년 초 정리해고 당한 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지낸 경험을 신간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위즈덤하우스)에서 소개한 정김경숙(56·로이스 김) 씨가 24일 연합뉴스 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저서를 들고 있다. 2024.5.27
[email protected]


정김씨는 트레이더 조에서 6개월 만에 쿠키·캔디 코너 책임자인 섹션 리드로 승진했고, 그로부터 5개월 후에 매장 중간관리자인 메이트가 됐다. 기회가 되면 매장 책임자인 '캡틴'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1년간 계산대나 운전석 등에서 만난 사람은 어림잡아 1만명에 달한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자신을 내보내 준 구글에 대해 "날 끊어줘서 고마워"라고 책에 쓸 정도였다.

정김씨는 N잡러 생활을 지속할지, 전업으로 할 새로운 일을 선택할지 고민 중이다. 다만 구글에서 일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30년간 직장 생활을 했고 N잡러도 해보니 설레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여러분들이 풀타임 자리를 제안하셨지만 결정할 때는 회사의 규모나 산업군과 상관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책 표지 이미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6667 머스크 우주선 ‘스타십’, 4번째 시도 끝 귀환 성공 랭크뉴스 2024.06.07
26666 “손흥민·이강인 통했다” 韓, 싱가포르 7-0 격파… 3차 예선 진출 랭크뉴스 2024.06.07
26665 윤건영 “대한항공 측, 김정숙 기내식비 현 정부와 똑같다더라”···‘김건희 방탄’용 일축 랭크뉴스 2024.06.07
26664 [속보]인류 최대·최강 로켓 ‘스타십’, 4번째 발사 시도 끝 귀환 성공 랭크뉴스 2024.06.07
26663 "한 잔 마시고 푹 자야지"…비행기에서 '술' 마셨다간 '큰일' 납니다 랭크뉴스 2024.06.06
26662 뉴욕증시, 美 노동시장 과열 지속에 혼조세 출발… 엔비디아는 또 상승 랭크뉴스 2024.06.06
26661 [제보는 MBC] "치아 6개 없는데"‥강남 임플란트 치과 연달아 '먹튀 폐업' 랭크뉴스 2024.06.06
26660 스페이스X,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 바다 착륙… 4차 발사 ‘대성공’ 랭크뉴스 2024.06.06
26659 바이든 ‘고령 리스크’ 또 점화?... WSJ “비공개 석상서 인지력 저하 뚜렷” 랭크뉴스 2024.06.06
26658 존림 삼바 대표 "빅파마 20곳 중 16곳 고객사 확보…수주 문의도 2배 늘어" 랭크뉴스 2024.06.06
26657 네이버·카카오·토스 속 ‘모바일 신분증’ 랭크뉴스 2024.06.06
26656 [단독] 김건희 모친 수감 10개월간 변호인 60번 접견 랭크뉴스 2024.06.06
26655 "60세 정년? 70세까지 일해요"…'계속 근무제' 첫 도입한 병원 랭크뉴스 2024.06.06
26654 "신혼부부 모십니다" 행복주택 미달 또 미달 랭크뉴스 2024.06.06
26653 서울대병원 ‘무기한 집단 휴진’ 번지나…더 강경해진 의료계 랭크뉴스 2024.06.06
26652 유튜브 조회수가 뭐길래…한밤중 흉기 위협하고 뺨 때린 40대 랭크뉴스 2024.06.06
26651 ‘만 34세 54일’ 주민규 A매치 데뷔골…싱가포르 7-0 대파 최종예선 진출 확정 랭크뉴스 2024.06.06
26650 어제 털렸는데 오늘 또…편의점 ‘일일 알바 절도’, 대책없나? [제보K] 랭크뉴스 2024.06.06
26649 민주당 “4년 전과 다르다”…주말 원구성 불발땐 “10일 법대로” 랭크뉴스 2024.06.06
26648 영상 기록으로 영원히 기억될 호국용사 랭크뉴스 202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