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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기획] 우리 안의 세계화, 이주민
“회사 모든 공정 다 아는 사람은 나 하나”
지난 13일 경기 양주시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만달 마힘.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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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시의 한 비닐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만달 마힘(40)은 지난달부터 ‘마 대리’가 됐다. 한국살이 12년, 현 직장 재직 6년 만에 첫 승진이다. “회사에 모든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사람은 나 하나예요”라고 말하는 마힘의 얼굴에 숙련공의 자긍심이 묻어났다.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 비자로 2012년 한국에 온 마힘은 지난해 8월 외국인 숙련기능인력에게 주는 특정활동(E-7-4) 비자로 체류자격을 변경했다.

비전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특정활동 비자’는 코리안드림을 의미하는 ‘꿈의 비자’다. 비전문취업 비자와 달리 지속적인 체류 연장이 가능하고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도 있어 ‘노동 이민’의 첫발로 여겨진다. 마힘도 방글라데시에 있는 아내와 딸을 데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낮은 임금 등의 차별을 감내하는 인내 또한 필요했다.

로이 아지트(38)도 방글라데시에서 2011년 마힘과 같은 꿈을 가지고 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열악한 사업장 환경 탓에 고용주에게 돈까지 줘가며 사업장을 옮겨 다녔고, 다섯번째 회사에서 치명적인 폐 질환을 얻었다. 산재보험 혜택도 못 받았다.

두 노동자의 모습은 성공과 실패, 행운과 불운의 극단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부당한 처우를 바로잡을 권리가 없었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순응했는가’ 또한 ‘순응할 정도로 참을 만한 환경이었는가’만 달랐다.

‘코리안드림’을 미끼로, 비자를 족쇄로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아시아 16개 나라 이주노동자에게 비전문취업 비자를 주고 국내 기피 업종 단순노무직에 일할 자격을 주는 제도다.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임금노동자는 공식 통계로만 87만3천명,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정치 25만7천명까지 합하면 이미 100만명을 훌쩍 넘는다. 이들 중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비전문취업 이주노동자가 26만9천명으로 가장 많다.

고용허가제는 지난 20년간 노동권보다는 고용주의 실리 관점에서만 주로 논의돼왔다. 사업장 변경을 제한했고, 고용 연장 권한은 고용주에게 줬다. 애초 이주노동자의 정착을 막기 위해 취업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는데,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고용주 요구로 점차 연장했다. 현재는 고용주가 동의하면 최대 9년8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인건비 절감’ 논의만 강조되면서,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처우 개선을 고용주에게 요구하고 협상하는 상식적인 노사 관계는 자리잡기 어려웠다.

이런 흐름은 여전하다. 법무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단계적 체류자격 승급 시스템’은 능력이 검증된 비전문취업 이주노동자에게 특정활동 비자를 더 쉽게 내어주는 내용이다. 발급 조건을 완화하고 쿼터 또한 연 2천명에서 3만5천명으로 늘렸다. 다만 1년 이상 근무 중인 기업체 추천이 필수고, 2년 의무근무 조건도 있다. 추천을 받으려면 고용주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기대야 한다. ‘코리안드림’을 미끼로 ‘사장님’에게 더 강한 통제 수단을 쥐여준 셈이다. 그래도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특정활동 비자를 향한 열기는 뜨겁다.

마힘도 특정활동 비자 취득은 “다 사장님 덕분”이라고 했다. “사장님이 날 아들처럼 생각해요. 사장님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운 좋은 경우’에 속하는 마힘도 차별을 겪는다. 6년차 대리 마힘은 자신이 일을 가르친 2년차 한국인 직원보다 임금을 적게 받고 있다. 마힘은 “외국인 월급은 원래 그렇다”며 “문제 제기할 생각은 못 해봤다”고 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달성 목사는 “특정활동 비자를 받는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사업장 질서에 굉장히 순응적인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통제 수단이 더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경기 안성시 안성협동화산업단지 인근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 이지혜 기자

까딱하면 미등록…험난한 권리 찾기

로이 아지트가 9년 동안 한국에서 겪은 비극은 ‘노동자의 권리’를 잊은 이주노동 제도의 단면이다. 2011년 한국에 온 그는 한국인 상사의 구타, 화장실 문도 없는 열악한 숙소를 겪으며 사업장 4곳을 전전했다. 사업장 변경을 위해선 고용주 동의가 필요했고, 그 대가로 밀린 임금 수백만원을 포기하거나, 고용주에게 돈을 건넨 적도 있다고 했다.

최악의 상황은 다섯번째 직장에서 만났다. 그는 제품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다 간질성 폐 질환을 얻었다. “쇳가루가 너무 날려서 일 끝나면 코에서 까만 먼지가 잔뜩 나왔어요. 방진마스크 달라니까 ‘네 돈으로 사’라고 했어요.” 위험한 줄 알면서도 1년만 채울 생각으로 참았다. 8개월 만에 심한 기침과 함께 검은 가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지트도 ‘회사 말 잘 듣는’ 노동자였다. 앞서 일하다가 발가락뼈가 부서졌을 때도 산재 신청은커녕 자비로 치료를 받았다. 폐 질환도 참을 생각이었는데, 폐 수술을 해도 지속적 치료 없이는 4년 이상 살 수 없다는 의사 말을 듣고 산재 신청을 하기로 했다. “제가 혼자 두세명 몫 한다고 공장 사람들 다 저 좋아했어요. 폐 아프고 나서 다 없어졌어요.” 회사는 산재 신청을 취소하라고 윽박지르다가 해고를 통보했다.

위험의 외주화가 ‘위험의 이주화’로 이어진 지는 오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 결과, 2020년 기준 이주노동자 사망만인율(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은 1.39퍼미리어드로 전체 취업자(0.77퍼미리어드)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사망사고와 달리 은폐가 쉬운 ‘질병’은 이주노동자 재해율이 전체 취업자보다 낮다. 연구원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업무상 질병이 덜 발생해서라기보다 산재보험 적용 과정의 불합리함이나 배제로 인해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노동자 보호 제도도 아지트에겐 벽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이 현장조사를 갔을 때 이미 문제의 그라인딩 작업은 자동화됐고 쇳가루는 흔적을 감춘 뒤였다. 발병 전 아지트는 하루 8시간씩 쇳가루를 마셨는데 회사는 ‘그라인딩 작업은 전체 업무의 5%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달 초 공단은 회사 쪽 주장을 받아들여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아지트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권리 없이 인력 채우기만 급급한 정부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이주노동자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도입 쿼터를 올해 16만5천명으로 늘렸다. 2년 전에 견줘 11만명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들의 취업 가능 범위도 음식점업, 임업, 광업까지로 확대했다. 최근 인력난이 심했던 조선업은 지난해 1∼3분기 신규 인력의 86%(1만2천여명)가 외국인이었다. 농번기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한 ‘계절근로자’도 체류기간은 기존 5개월에서 8개월로, 초청 대상은 기존 결혼이민자의 친인척뿐 아니라 유학생 부모로까지 확대했다.

다만 산업과 고용주의 이해 관점에서만 이주노동 제도를 구성하는 틀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 정부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일정 권역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미 어려운 직장 이동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 아울러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이력 정보를 고용주에게 제공하기로 해서 이주노동자 ‘블랙리스트’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역 소멸, 인구 절벽 등 한국 사회에 대한 근원적 고민 없이 이주노동자를 ‘먹이사슬 밑바닥’에 채워 넣는 식의 정책은 멈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정부는 열악한 노동 조건과 임금 등의 개선이나 이민 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 없이 도구적인 인력 활용론에 근거해 이주노동자를 손쉽게 채워 넣고만 있다”며 “이 과정에서 기본권이나 정착 노동 이민에 대한 고민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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