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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생명 지켜야 국민도 구해”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세형 소방위(가명)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희기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구조대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박세형 소방위(가명)는 2021년 어느 날 경기도 한 지역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불길이 잡혀가던 현장에 그가 도착했을 때 까맣게 탄 물류창고는 끊임없이 연기를 토해냈다.

건물 내부에 먼저 진입한 뒤 밖으로 나온 동료 소방관들의 방화복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내부의 뜨거운 열기는 방화복을 뚫고 들어갈 정도였다. 한 동료는 열기 때문에 화상을 입었다.

인화 물질로 가득한 물류창고 내부는 달아오를 대로 올랐다. 언제라도 화재가 다시 번질 가능성이 컸다. 창고 내부를 수색하다 한 명이 결국 숨졌다. 구조대원이 동료들에 의해 들려 나왔다.

숨진 소방관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경찰 순찰차를 뒤따를 때 마지막 경례를 했다. 구급차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한편에서는 ‘안도감’도 들었다고 한다.

“구급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다 문득 ‘나는 살았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불은 꺼졌고 동료의 죽음으로 다시 위험한 내부로 진입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당시 경험은 2014년 소방관이 된 박 소방위에게 ‘평생의 상처’로 남았다. 소방관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박 소방위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이제는 자신이 없다.

가족 모습이 먼저 어른거린다. 박 소방위는 “순직한 소방관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텐데 동료가 그런 사고를 당한 게 너무 슬펐다”고 했다. 초급 간부가 된 그에게는 아내와 자녀가 있다. 그는 “저도 가족이 있는데 같은 사고가 나에게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매번 든다”면서 “최근에도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런 일을 한 번 겪고 나면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했다.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소방관들에게 정부는 의례적으로 1계급 특별승진과 훈장을 추서한다. 장례식은 각 지역 소방본부가 소속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진행된다. 순직 소방관들은 ‘소방 영웅’으로 기억된다.

박 소방위는 순직 소방관을 영웅으로 예우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소방관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방관들의 남다른 사명감이 ‘사람 없는 빈 건물’을 지키는 데까지 이용되면 안 된다고 했다.

박 소방위는 “건물 내부에 사람이 없는데도 왜 그렇게 무리하게 대원들을 진입시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사람은 구해야 한다. 그러나 공장이나 물류센터까지 소방관이 목숨을 걸고 구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부터 내근을 하는 박 소방위는 곧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같은 ‘지휘 환경’에서 대원들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 4~5명의 소방관을 지휘해야 하는데 ‘냉철히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다”는 박 소방위는 “소방관의 생명을 먼저 지켜야 국민의 생명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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