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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계 개편 골든타임]
<상> 거세지는 공정보상 목소리
청년층 능력 따른 성과보상 원해
평생직장 사라지고 이직 잦아져
호봉제 대기업 60%대로 감소세
공직사회도 20대 중심 개선 요구
정부, 근로시간 개편 좌초 여파
임금개혁 노사정에 넘겼지만 답보
23일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사거리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2021년 일본 기업 도요타발 소식에 국내 경영계가 깜짝 놀랐다. 신차 발표가 아닌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전격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도입한 호봉제의 근간이 일본이라 국내 경영계가 느끼는 충격은 더 컸다. 당시 도요타의 결정을 분석한 한국경영자총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도요타는 연공서열에 따른 일률적인 정기 승급도 없앴다. 도요타 직원이라면 나이·학력·직종과 무관하게 책임자급까지 오를 수 있다. 국내 기업에 있어 이른바 ‘원조’ 격인 일본 대표 기업에서 먼저 호봉제 포기 선언이 나온 셈이다.

경총 보고서는 “도요타는 전기차·자율주행차와 같은 자동차 산업의 대변혁기에서 과감한 체질 개선을 결정했다”며 “노동조합도 기업 현실을 공감하고 일하는 방식 개선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도요타가 임금 체계 개편 이후 정년을 70세까지 확대하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나라에 큰 시사점을 준다. 도요타는 노사 합의를 통해 사용자는 성과 측정과 인재 관리를, 근로자는 적정 임금·승진과 정년 연장을 얻었다. 노사 공생을 위한 결정인 셈이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는 공정 보상 요구에 국내 대기업들이 임금 체계 변화를 고민하기 시작한 점도 앞선 도요타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 노사는 여전히 노동생산성과 이에 맞는 성과 보상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갈등만 벌이고 있다. 정부 주도의 임금 체계 개편도 요원하다. 노사 갈등에 제자리걸음인 정부 정책 변화까지 맞물리면서 노동 개혁은 아직 ‘먼 나라’ 얘기다. 그나마 대기업을 중심으로 호봉제 포기 등 변화를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는 게 위안거리다.

전문가들은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대한 부가 조사 결과 ‘근로자 1000인 이상 사업체의 호봉제 도입률 급감’ 등 변화의 배경에 청년 세대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들이 오래 일할수록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만으로는 청년 인재를 붙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보상 평가 기준이 능력이 아닌 근로 기간으로 1년 미만 일한 이와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 사이 임금 차가 약 2.9배에 이르는 상황을 젊은 층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만큼 기업들이 제도 개편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젊은 층 사이에서 ‘구시대’ 언어로 통하는 점도 영향을 줬다는 게 노동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의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은 1년 6.6개월로 10년 전 동일한 조사 1년 7개월보다 0.4개월 줄었다. 같은 기간 ‘첫 일자리를 그만뒀다’고 답한 비율도 63.6%에서 66.8%로 3.2%포인트 증가했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사유로는 ‘보수, 근로시간 등 근로 여건 불만족’이 해마다 1위 지키고 있다. 젊은 층이 한 곳에서 오래 일하기보다는 적정 보상 등 만족할 수 있는 직장을 찾는 게 우선순위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이는 “최근 기업들은 근로 의욕을 높이고 인재를 오래 붙들 수 있는 보상 체계(임금 체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다”는 고용부 관계자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정 보상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지는 것은 공직 사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적정 보상을 원하는 목소리가 정년 보장, 연금 등으로 이른바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공직 사회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공직 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 부문에서 ‘호봉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20대가 49%로 지난해(52.5%)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같은 대답을 한 30대는 46.3%, 40대 40.1% , 50대 이상은 32.8%로 연령이 높을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문제는 젊은 층이 요구하는 목소리와 달리 우리나라 노사가 노동생산성에 따른 적정 보상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치의 74.2%에 그치고 있다. 더 이상 호봉제로는 노동생산성 향샹은 물론 인재 유치에서도 뒤질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 3월 경영계에 성과가 나쁠 경우 노동조합의 높은 임금 인상과 성과급 요구에 응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할 정도이지만 임금 체계 개편은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어 현 정권에서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노동 개혁이 표류하는 사이 MZ세대 노조가 출범하는 등 정부가 고려해야 할 목소리만 늘었다. 2021년 현대자동차·LG전자 등과 같은 대기업 사무직에서 일하는 MZ세대가 잇따라 노조를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초 9개 공공기관 및 대기업 노조들의 연대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현 정부는 근로시간, 임금 체제 등을 두 축으로 노동 개혁을 설계했으나 우선 시도한 근로시간 개편은 좌초됐다. 이에 대한 여파로 임금 체계 개편조차 정부의 ‘손’을 떠난 상태다. 앞으로 노동계와 경영계·정부의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연구회에서 다룰 예정이었지만 경사노위는 산하위원회도 출범하지 못했다. 손 놓을 수 없는 정부는 임금 체계 개편을 원하는 기업 수요에만 대응하고 있는 형국이다. 고용부의 임금·평가 체계 컨설팅 실적은 지난해 1346건으로 2021년 696건에서 2년 만에 두 배가량 늘었다. 정부 주도의 업종별 지원, 법제 정비 등 임금 체계 개편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기약이 없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정부가 임금 체계 변화 과정에서 할 일은 노사의 의사 결정 시스템을 간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부분 근로자 대표제와 같이 노조의 권한을 분권화해 기업이 더 쉽게 임금 체계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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