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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난니 모레티 감독 ‘찬란한 내일로’에 출연 한국인 배우 유선희
신인 배우 유선희는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찬란한 내일로>에서 한국인 통역사를 연기했다. 에무필름즈 제공


이탈리아 거장 난니 모레티(71) 감독의 <찬란한 내일로>(29일 개봉)에는 한국 술 소주가 등장한다. 한 동양인 배우는 연출 겸 주연 ‘조반니’ 역의 모레티 감독에게 소주잔을 건네며 능숙한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두 손으로 잔을 들고 단번에 넘기세요. 먼저 잔을 부딪히고 ‘건배’라고 외쳐주세요.”

화면 속 모두가 한국어 “건배!”를 외치는 유쾌한 장면 중심에는 한국인 배우 유선희(42)가 있다. “한국인은 ‘원샷’이잖아요. ‘건배’를 외치며 한 번에 마시자는 아이디어를 냈죠.”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만난 그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로마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그는 영화 홍보차 고국인 한국을 방문했다.

<찬란한 내일로>는 <아들의 방>(2001)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난니 모레티 감독의 신작이다. 유명 영화감독 조반니가 1950년대 배경의 정치 영화를 찍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촬영이 한창인 때 제작사가 파산하면서 영화는 좌초 위기에 빠진다. 설상가상 40년을 함께한 아내마저 이혼 선언을 한다. 조반니는 자신이 사랑해 온 많은 것들이 세상의 변화와 함께 위태로워졌다고 느낀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영화 산업이 맞은 변화, 정치 상황에 관한 감독의 비판적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선희는 한국인 영화 제작자들과 조반니 사이를 이어주는 통역사로 분했다. 촬영이 중단된 조반니의 영화는 한국인 제작자들의 투자로 구사일생한다. 촬영이 재개되는 날 소주로 축배를 드는 장면은 유선희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한층 유쾌해졌다. “감독님께서 ‘네가 한국인이니까 알아서 해보라’고 하셨어요. 한국인은 (소주를 마실 때) 꼭 소주잔이어야 하잖아요. 구할 데가 없어서 집에 있던 소주잔을 직접 들고나왔죠.”

<찬란한 내일로> 촬영 현장에서 배우 유선희와 난니 모레티 감독. 유선희 제공


<찬란한 내일로>의 한 장면. 에무필름즈 제공


유선희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배우이자 20년 경력의 피아니스트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14살 때인 1996년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으로 유학했다. 이후 20여 년간 현지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해왔다. 연기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다. 친구 소개로 현지의 한 에이전시에 들어갔다. 에이전시는 아시아계 배우를 찾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오디션을 본 작품이 <찬란한 내일로>였다. 위기에 빠진 영화를 한국 제작자들이 구해낸다는 영화 속 설정 때문에 한국인 배우가 필요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모르던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보낸 십수년의 유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었다. K콘텐츠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아시아계 배우가 유럽 영화에 출연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나오더라도 중국인 마피아 같은 역할 정도였죠. 지금은 OTT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잖아요. (이탈리아 대중문화계에도) ‘뉴페이스’가 필요해졌다고 봐요.”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다. 작품이 경쟁부문에 초청됐기 때문이다. 르미에르 대극장에서 관객과 영화를 보고 13분의 기립 박수도 받았다. “칸에서의 이틀은 마치 인생에서 뚝 잘라져나온 것 같은, 다른 별에 갔다온 시간 같은 느낌이에요.”

유선희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지난해 촬영을 마친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가 곧 공개를 앞두고 있다. 단편 영화의 주연도 했다. 피아니스트로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새 음반을 녹음했고, 공연도 소화하고 있다. 그는 ‘표현의 예술’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피아노와 연기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느낀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유선희의 얼굴을 볼 날도 올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단편 영화를 찍으면서 한국어로 대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탈리아어로 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이 되어 장면과 완벽하게 조화되는 느낌이랄까요. ‘이래서 모국어구나’ 싶었어요. 게다가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세계 어디 내놔도 최고잖아요. 뛰어난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이죠.”

배우 유선희는 데뷔작인 <찬란한 내일로>로 지난해 5월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칸에서의 이틀이 “다른 별에 다녀온 것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유선희 제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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