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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걷다 보면│남프랑스①

말년의 마티스, 4년간의 ‘역사’
검소하지만 화려한 공간 창출
95살 신부님은 ‘눈높이 강론’
권위 덜어낸 성소 ‘따뜻한 위로’
마티스 채플 내부 모습. 마티스 채플 누리집 갈무리

미사는 여러 면에서 기이했다. 작은 예배당만 새것처럼 눈부시게 빛날 뿐,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도, 성가대석에 앉은 이들도, 서른명 남짓 되는 신자들도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었다. 미사를 시작할 때, 신부님은 “봉주르”를 일곱 번쯤 했다. 성가대원들과 신자들과 맨 앞줄에 앉은 어린이 둘과도 일일이 눈을 맞추면서. 처음 보는 신자들에게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는지 “리옹!” “안시!”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부님은 “안시”를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는 앞줄에 앉은 한 할아버지가 “안시”라고 있는 힘껏 외쳤다. 신부님이 농담을 하는지 간간이 웃음이 터졌다. 불어를 알아들어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편안하고 다정한 분위기였다.

화려한 프레스코화도, 금테를 두른 제단도 없이, 이 작은 예배당에 가득한 건 환하고 밝은 빛뿐이었다. 노랑과 파랑, 초록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스며든 빛. 하얀 타일 위로 어른거리는 색유리의 빛. 모두를 품어주는 깨끗하고 따스한 빛이 가득했다. “할렐루야”로만 이루어진 찬송가를 부를 때 신부님이 손을 들어 박수를 유도했다. 신부님도 늙었고, 신자들도 늙어서인가. 박수의 박자는 계속 어긋나고, 소리마저 기력이 달리는 듯 주춤거리는데 그게 또 더없이 자연스럽고 평화로웠다. 아직 죄짓지 않은 어린아이들. 이제는 죄 지을 힘조차 없을 것 같은 노인들. 질투나 욕망 같은 것도 다 사라졌을 법한 사람들의 희미한 목소리가 작은 예배당을 채우고 있었다. 신부님은 강론을 하다가 천국으로 올라가신다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반면교사

마티스 채플의 입구. 김남희 제공

신부님이 모두들 손을 잡으라고 했는지 다들 자리를 옮겨가며 손을 잡았다. 신부님의 양손도 제단까지 올라간 이들의 손과 맞닿았다. 내 손도 양옆 늙은 여인들의 주름진 손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문을 외웠다. 그러더니 모두가 흰 벽에 그려진 성모자를 향해 돌아섰다. 내가 알 수 없는 뜻의 노래가 이어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코·입도 없이 그저 둥근 선 하나로 표현된 성모자의 얼굴을 보며 나는 터지는 울음을 참아야 했다. 내 상상력이 그려내는 성모자의 얼굴은 그리운 내 어머니의 얼굴이었다가, 내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되었다가, 내 얼굴이기도 했다. 이 예배당을 지은 이가 어째서 마리아와 예수의 얼굴을 둥근 선만으로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모자의 얼굴을 비움으로써 이곳은 현실의 공간을 벗어나 비현실적인 상상력의 공간이 되었고, 그로 인해 누구나 자신 안의 신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했다.

아, 이 작은 예배당은 너무 커서 두 번은 와야 하는 곳이구나. 한 번은 입장권을 끊어 호기심 가득한 여행자가 되어 들어오고, 다른 한 번은 저마다 지닌 가장 선한 얼굴의 겸손한 인간으로 와야 하는 곳. 맨 뒷자리에 앉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의 강론을 듣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해봐야 하는 곳. 그러면 겨우 알게 된다. 이곳은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를 지닌 커다란 꽃. 그 꽃 한 송이 안에 모두 깃들어 앉은 것 같은, 그런 예배당임을.

그제야 이 예배당을 설계하고 지은 앙리 마티스가 한 말이 이해되었다. 1951년 여름, 마티스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고 이렇게 적었다. “엄청난 군중, 끝없이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 건축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때때로 머리 위로 지나가는 오르간 음악의 파도.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성당을 떠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좋아. 이 모든 걸 고려했을 때 내 예배당은 무엇일 수 있지?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꽃이지. 그것은 단지 꽃일 뿐. 그래, 꽃이다.”

앙리 마티스가 디자인한 신부 미사복. 김남희 제공

간결한 선과 절제된 색상. 공간에 가득한 여백. 이 공간의 지극한 단순함이 만들어 내는 어떤 신성함과 깊이 때문이었을까. 미사가 끝난 후 나는 용기를 내어 신부님에게 다가갔다. 늙은 신부님은 두 남성에게 의지해 걷고 있었다.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신부님을 부축하던 노인이 그 말을 통역했다. 그 순간, 신부님이 나를 보며 웃으셨다. 마치 꽃이 피어나는 듯, 환한 미소였다. 신부님이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느리게 말씀하셨다. “땡큐 베리 머치.”

특별한 예배당 보러 온 남프랑스

마티스와 자끄 마리 수녀. 김남희 제공

내 안의 작은 신전에 반짝 불이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으로 예배당을 나섰다. 방스에는 마티스 채플 혹은 로사리오 채플이라 불리는 이 예배당이 있고, 이곳에서 5㎞ 남쪽의 생폴드방스 마을에는 폴롱 채플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나는 두 번째 예배당을 보기 위해 정거장에서 생폴드방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스웨덴 여성들 아나, 마리와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나의 어머니가 방스로 이주해서 둘은 자주 이 마을을 방문한다. 오늘 아침 마티스 채플에서 미사를 드린 이야기를 했더니 아나가 “나도 거기 있었어!”라며 반가워했다. “나는 올 때마다 이번이 그 신부님의 마지막 미사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해. 신부님 올해 아흔다섯이거든. 작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도 했고. 너도 느꼈겠지만 신부님은 정말 남다른 분이셔. 늘 아이들을 특별히 대우하고, 제단에 올라오라 해서 손도 잡고, 질문도 하고 그러셔. 신도들 눈높이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으시지. ‘오늘은 이런 구절을 읽었는데, 이런 건 나조차도 믿기 힘든 이야기죠.’ 이런 식으로 이야기도 하시고. 무조건 믿고 따르라고 이야기 하지 않아서 좋아. 그런 면에서 좀 프로테스탄트(청교도)적이기도 해.” 이런 이야기를 하던 아나가 갑자기 핸드폰을 열더니 사진 두 장을 보여줬다. “예배당 안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걸 알지만 오늘 너무 사진을 찍고 싶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으로 찍었어. 신부님 얼굴을 꼭 남겨두고 싶었거든.” 나는 그 사진 두 장을 받았다. 내가 찍을 용기는 없었지만, 이 정도의 범죄 공모는 가능하기에.


바람에 오렌지꽃 향기가 실려 날아왔다. 4월 중순의 남프랑스는 어디에나 봄 내음이 가득했다. 여행 나흘째인데, 남프랑스에 온 목적을 다 이룬 기분이었다. 남프랑스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마티스 채플 때문이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마티스의 간결한 선과 화사한 색감을 점점 좋아하게 되었는데, 작년 봄 도쿄에서 마티스가 디자인한 로사리오 채플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영상에 나온 작은 예배당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공간이 거기 있었다. 저길 가봐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덕에 이번 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로사리오 채플이 자리한 마을 방스에 이틀간 머물 숙소를 구했다. 오전과 오후, 적어도 두 번은 찾아가 빛에 따라 달라질 예배당을 보고 싶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에서 예배당까지는 걸어서 50분. 첫날 오후에는 숙소의 주인 샤샤가 성당까지 태워다줘서 문 닫기 한 시간 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직원들이 나가라고 할 때까지 그 작은 예배당을 떠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다음날인 오늘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미사가 있었다. 이번에도 샤샤가 태워다 준 덕분에 편하게 예배당까지 와서 이런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이 아름다운 예배당은 마티스와 도미니크회 수녀의 우정 덕분에 만들어졌다. 1942년, 마티스가 일흔셋의 나이에 대수술을 받고 니스에서 요양할 때 간호학교 학생이었던 모니크 부르주아가 개인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은 후일 모니크가 자크 마리라는 수도명을 받고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한 후에도 계속되었고, 방스 예배당을 짓는 일까지 이어졌다. 마티스는 이 예배당을 4년에 걸쳐 지었고, 제단의 십자가와 예수상까지 직접 만들었다. 심지어 신부복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단순하고 간결한 공간이 지닌 품격에 더해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까지 갖춘 이런 예배당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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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롱 예배당의 ‘모자이크 벽화’

폴롱 채플 내부 모습. 김남희 제공

생폴드방스에 도착해서도 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폴롱 채플은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작은 마을의 골목을 기웃거렸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건물이 세월에 마모되면서 만드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골목마다 가득했다. 좁은 골목마다 무성한 식물이 드리우는 작은 그늘, 담장 너머로 피어있는 붉고 흰 꽃들. 분수대 앞에 모여 앉아 크레페를 먹는 사람들. 그림과 조각을 파는 작은 갤러리들. 예술적인 감성이 흐르는 마을이었다. 마침내 폴롱 예배당의 문이 열렸다. 이곳은 원래 ‘백인 참회자’라 불리며 자선 및 구호 활동을 했던 평신도 형제회의 본당이었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오래된 성당의 예술 작업 프로젝트는 이 마을과 30년 이상 유대 관계를 맺었던 벨기에 예술가 장 미셸 폴롱이 맡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이 예배당이다. 백인 참회자들의 구호와 자선 정신을 표현하는 예배당 내부 장식이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그림 등으로 구현되었는데, 1백만개 이상의 조각을 사용한 모자이크 벽화가 압도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오렌지색의 화사한 벽화가 배경음악 ‘지(G)선상의 아리아’와 어우러지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마티스 채플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공간이었다. 다만 이곳에는 의자가 없어 오래 있을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폴롱 채플이 있는 생폴드방스 마을. 김남희 제공

종교도 없는 내가 종교적 공간은 또 좋아해서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불교든 조로아스터교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성소가 주는 경건함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생각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분위기 말이다. 매사에 그렇듯 종교적 성소에 대해서도 나는 호불호가 강하다. 이 땅에 더불어 사는 가난한 이웃,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품지 못하는 그런 성소라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 마음은 그곳으로 향하지 못했다. 전쟁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곳도, 헌금을 강요하는 곳도, 규모를 자랑하는 곳도 나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절대 먹지도 않고, 앞으로 먹을 생각도 없는 음식에 대해 평하는 미식가 같아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다. 이 음식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살아내는 끼니일지도 모르는데. 다만 내가 방스와 생폴드방스에서 만난 이 작은 예배당들은 지금까지 보아온 권위적이고 엄숙한 예배당과는 완전히 달랐다. 따스하고, 다정하며 밝은 공간이었다. 마치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듯한. 성소로부터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위안이 그곳에 있었다.

김남희│여행가 여행가 김남희는 2003년 이후 유목민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지은 책으로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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