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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한국 문단의 거목이자 대표 민중 시인 신경림. 지난 22일 오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발인은 오늘(25일) 새벽 5시 반, 신 시인은 이제 충북 충주시 노은면 선산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 "신경림, 등불이자 나침판"

고인을 기리는 영결식은 어제(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행사장에서 엄수됐습니다.

장례위원장인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는 신 시인을 기리며 추모사를 낭독했습니다.

염 위원장은 1970년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으로 신 시인을 발굴하고, 창비 대표를 역임한 인물입니다.

염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고인은 70년 가까운 문필생활을 통해 수많은 시와 산문을 민족문학의 자산으로 남겼고,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고난의 세월을 이웃 동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정직하고 치열하게 살아냈다"고 그의 삶을 평가했습니다.

"일반 독자의 접근 가능성을 향해 누구보다 넓게 열려 있다"며 "그 안에서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문학적 자양분 또한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구성돼 있다"고 그의 예술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故 신경림 시인 (창비 제공)

그러면서 "고인은 이름난 시인이 되고 난 다음에도 유명인 행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1970, 80년대의 군사독재 시절 경찰의 감시와 연행에 수시로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민주인사인 체 내세우지 않았다"고 기억했습니다.

염 위원장은 "고인의 끊임없는 자기성찰은 고인의 발길을 바르게 이끈 등불이고 나침판이었다"며 "자신의 시대적 임무를 마치고 떠나는 선생님, 우리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선생님이 남긴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문학을 이어가겠다"고 전했습니다.

영결식에는 수많은 문학계 인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국립한국문학관장인 문정희 시인의 추도사 낭독, 전 대한민국예술원회장 이근배 시인의 조시 낭독이 있었고, 여서완·강정화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농무' 시 낭송도 이어졌습니다.

24일 열린 故 신경림 시인 영결식

■ 시로 마음을 울리다…'민중의 벗' 신경림

신경림은 민중의 삶과 애환을 묘사해온 민중 시인이었습니다.

고인의 첫 시집이자 대표작 '농무'. 서슬 퍼런 개발독재 시대, 그는 2·3차 산업 부흥에 밀려 소외된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포착했고 시편 하나하나에 담아냈습니다.

이는 서정시만 존재했던 1970년대 우리 시단에 큰 충격을 던져줬고, 신 시인은 '농민들의 울분과 허탈감을 시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中


이후 1988년 나온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신 시인은 도시 빈민층의 고달픈 삶에 집중했습니다. 이 시집으로 고인은 농민 시인에서 민중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신 시인은 민중 시의 장을 열며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평가받았고, 만해문학상과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등도 수상했습니다. 2001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도 수훈했습니다.

낮은 자, 소외된 자들의 고달픔에 주목하며 함께 아파했던 故 신경림 시인. 이제 평화로운 안식에 들기를 그를 사랑했던 벗들과 독자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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