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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KBS 뉴스7 제주〉에 방송된 리포트

이달 초, 제주에서는 나무로 만든 해안 산책로 난간이 부서지면서 관광객 2명이 추락해 다쳤습니다. (2024년 5월 7일 KBS 보도 해안 산책로 난간 부서져…관광객 부부 추락)

그런데 이 사고 피해자들이 시설 관리 담당 기관인 제주시로부터 치료비 보상을 받지 못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제주시가 피해자들에게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라고 직접 안내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해 보상 방안을 논의해 보겠다더니 결국 '소송'을 내라는 게 보상 방안이었던 걸까요?

■ 바다 보려다가…난간과 함께 '우지끈' 부서진 추억

사고의 자세한 개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3일, 단체 제주 여행 중이던 50대 부부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해안 조망대 위에 일행과 함께 서 있다가, 등 뒤로 나무 난간이 부서지며 1.5m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지난 7일 〈KBS 뉴스 7 제주〉

남편은 머리와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고, 아내는 척추 돌기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추락한 지점에 현무암 바위가 많아, 높이가 비교적 낮았는데도 부상 정도가 심했습니다.

제주시가 파악한 자료를 보면, 부서진 나무 산책로는 2008~2009년 사이 어촌종합개발 사업의 하나로 국비와 지방비 예산 수억 원을 들여 만든 시설입니다.

그러나 설치 이후, 시나 읍, 마을의 관리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이 때문에 시설 유지·보수는커녕 점검조차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보상을 위한 영조물 배상책임보험 가입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 7일 〈KBS 뉴스7 제주〉

■ 세금 수억 들여 만들고도…10여 년간 있는 줄도 몰라

사고를 당한 부부는 한동안 제주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척추 주변을 다친 아내는 뼈가 붙을 때까지 몇 주간 꼼짝하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지냈습니다.

제주시청 담당 부서는 공사 목록을 뒤지고서야 이 시설이 시 담당인 것을 파악했고, 그간 관리 목록에서 누락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설치 이후 어떤 경위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10여 년 사이 시설 담당자가 계속해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해도 제주시 담당 시설이고, 시가 잘못을 인정하는데도 치료비 등을 보상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관리 목록에 없어 보상 근거가 없다는 게 이유인 걸로 보입니다.

제주시가 10년 넘게 파악조차 하지 못한 탓에 이 시설은 영조물 배상책임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험금을 받을 수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 보상 방안 논의한다더니…"소송하라"

사고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별도 보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던 제주시.

그런데 제주시장이 최근 직접 피해자를 만나 설명한 건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란 거였습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제주시 차원에서 (이런 상황에) 보상할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해놓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영조물이 아니라 국가 배상이 가장 빠를 것 같아 안내해 드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소송 결과에 따라 보상금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소송 절차 쉽지 않은데"…속상한 피해자들

제주시 설명만 들으면 국가 배상 청구 소송이 아주 쉽고 간단한 것 같지만, 피해자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공무원의 집무 집행 중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를 입었거나, 시설물 관리 하자 등으로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원고 측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과실이나 하자, 사고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고, 설령 인과관계가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그 손해액이 얼마인지도 산정해야 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결코 쉽지 않은 절차입니다.

또 국가배상 소송은 소장과 답변서를 제출하고 첫 기일이 잡히기까지 통상 3~4개월이 걸립니다.

소송 결과까지 나오는 데는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잡아야합니다.

소송에 비용과 시간, 수고는 고스란히 피해자가 떠안아야 할 몫입니다.

제주 지역 법무법인 현에서 활동하는 김수진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사고가 난 시설물이 영조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가 신기한 일"이라며 "첫째는 영조물로 분류가 안 되어 시에서 관리를 못 했던 것부터가 잘못이고, 둘째는 영조물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은 시설에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제주시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즉각적인 보상 없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라'고 안내를 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마치 책임을 떠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또 "과연 이번에 사고가 난 시설만 이런 문제가 있을지도 봐야 한다"며 "노후화하는 모든 시설에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때마다 지자체에서는 '소송하세요'라고 안내할 건가"라고 말했습니다.

■ "사고 어디서든 날 수 있어…일일이 국가에 배상 청구해야 하나"

추락 사고 피해자 부부는 당초 3주 입원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빠른 지난 16일 일시 퇴원해, 집이 있는 전북 전주로 돌아갔습니다.

간호해줄 가족도 없는 객지에서 마냥 입원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 탓입니다. 전주로 돌아가서도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2024년 5월 7일 KBS 뉴스 7 제주

남편은 KBS와의 통화에서 "제주시장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만 말하더라. 수천만 원 배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병원 치료비 정도만 받으려고 했던 건데…"라며 씁쓸함을 내비쳤습니다.

이어 "관광지인 제주에서 이전에도 이런 일이 숱하게 발생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벌어질 텐데, 그때마다 힘없는 시민이 국가에 배상 소송을 청구해야 하는 건가" 반문하며 아쉬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한편, 제주시는 우선 이번 추락 사고가 난 나무 덱 산책로를 포함해 해양수산과 관할로 조성된 해안 산책로를 전수 조사해 점검한다는 방침입니다.

경찰은 제주시 관계자들을 상대로 시설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촬영기자 고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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