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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협의회 이사장 인터뷰…"건물주 임대료 횡포가 원인"
임대료 상승→대관료 상승→제작비 부담에 좋은 작품은 '시들'
"지원시스템 통합 관리 필요…기획·홍보 인력 확보도 시급"


소극장
[연합뉴스TV 캡처]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대학로 소극장 아무 곳이나 가보세요. 객석이 죄다 다른 극단의 배우들로 채워져 있을 겁니다. 배우들끼리 품앗이처럼 다른 극단의 연극을 관람하는 거죠."

서울 대학로에는 140여개의 소극장이 있다. 한때 '소극장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대학로의 영광은 이제는 오간 데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대학로를 찾는 연극 애호가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관객이 없다 보니 극단들은 다른 극단의 배우들을 상대로 '품앗이' 매표행위에만 매달리고 있다. 텅 빈 객석을 대학로 배우들로만 메우고 있는 것이다. 공연계에서는 '소극장 연극 공연으로 뒤풀이 비용만이라도 건져내면 성공'이라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까지 나도는 현실이다.

임정혁 한국소극장협의회 이사장
[촬영=임순현]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연극인들은 터무니없이 오르는 대학로 소극장 임대료를 핵심 원인으로 꼽고 있다. 소극장이 활성화한 대학로에 자본이 유입되면서 땅값이 치솟았고,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소극장들이 대학로에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소극장들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대관료를 올릴 수밖에 없어 극단들도 공연 수입의 대부분을 대관료로 쓸 수밖에 없다"며 "극장과 극단만 적자에 허덕이고 건물주만 배 불리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임대료 상승이 대관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높은 대관료로 인해 제작비 부담이 늘며 좋은 작품이 탄생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임 이사장에 따르면 대학로 소극장들의 평균 임대료는 월 450만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대학로 12길'에 위치한 소극장 중에서는 월 임대료가 1천만원이 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임대료가 오르니 자연스럽게 대관료도 올라 하루 8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소극장 학전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극장 학전블루의 간판이 내려지고 있다. 2024.3.31 [email protected]


임 이사장은 이 같은 왜곡된 임대료 환경이 이대로 이어지면 몇 년 안에 대학로 소극장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미 고착화한 시스템 탓에 건물주들의 선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극장들은 층고가 높은 대학로 건물 지하층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건물주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면서 "어차피 대학로가 아니면 연극 공연을 하기에 마땅치 않으니 막무가내로 임대료를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영세 극장과 극단을 상대로 임대료와 대관료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임 이사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시스템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별 극장과 극단에 대한 지원이 이미 한계를 드러낸 만큼 분산된 지원 루트를 통합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합한 '수정 모델'로는 가칭 '민간공연장 상주단체 지원제'를 제시했다. 이는 극장 100곳에 연간 7천만원씩을 지원하고, 이들 극장이 각각 3곳의 극단에 6개월간 극장을 무상으로 대관하는 제도다. 7천만원에는 대관료 지원금 3천만원과 공연제작비 지원금 2천만원, 안전 인력 지원금 2천만원이 포함된다. 또 각 극단에도 연간 1천만원을 지원한다.

임 이사장은 "체계적이지 않은 현행 공연 지원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대관료 지원과 인력 지원, 창작공연 활성화 지원 등을 하나의 통합지원시스템으로 묶어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울림 소극장 내부
[산울림소극장 제공]


임 이사장은 또 기획·홍보 인력 유출도 소극장 위기에 주요 원인이라고 꼽았다. 연극을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홍보할 인력들이 관객이 많은 뮤지컬 등 다른 공연으로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홍보 인력이 희귀하니 배우들과 연출·제작진이 기획과 홍보를 떠맡아 하고 있다고 한다.

임 이사장은 "연극 제작진은 돈 문제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주력해야 한다"며 "그게 가능하려면 기획과 홍보를 전문적으로 맡아줄 인력이 필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때문에 대학로 인근에 기획·홍보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기획·홍보 인력이 센터에 상주하면서 매달 3∼4편의 작품을 선정해 업무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임 이사장은 "센터 정직원으로 채용해 연극계가 공정하게 선정한 작품의 기획과 홍보를 전담하게 하는 방안"이라며 "다만 문제는 어떻게든 인건비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공연계의 뮤지컬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임 이사장은 "일반 관객은 연극과 뮤지컬을 비슷한 공연으로 인식하지만, 뮤지컬은 절대로 연극을 대체할 수 없다"면서 "연극은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인 반면 뮤지컬은 일종의 '쇼'"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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