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납북자 김영남 씨가 2006년 금강산 호텔에서 상봉한 남쪽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 "죽어도 원이 없다."…29년 만에 상봉한 납북 고교생과 어머니
남북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6년, 금강산호텔에서 이산가족 특별상봉 행사가 열렸습니다.
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린 그 날, 유난히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습니다.
1977년 전북 군산 선유도에서 납북된 김영남 씨가 어머니 최계월 씨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납북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 씨는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중년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막내 아들을 금방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인제 죽어도 원이 없다."
사흘뿐인 상봉 행사는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헤어지는 날 두 사람은 또 만나자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못했고, 노모는 짧은 만남 후 생이별의 아픔을 다시 겪다가 201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 '또 다른 김영남' 전후 납북자 516명…송환은 0명
정부는 김영남 씨를 '전후 납북자'로 분류합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측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을 뜻합니다.
통일부가 파악한 전후 납북자는 516명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김 씨를 포함해 고등학생도 5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1977년 8월부터 1년 동안 전북 군산과 전남 신안군 홍도에서 납북됐습니다.
고등학생 전후 납북자 (출처 : 통일부)
당시에는 실종 처리 됐지만, 1990년대에 들어 남파 간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납북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생사라도 알고 싶어요"…납북자 가족들의 호소
통일부는 어제(24일) 김영남 씨가 납북된 전북 군산 선유도에서 송환기원비 제막식을 열었습니다.
납북자의 송환과 그 가족들의 아픔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기원비입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는 문구를 새겼습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납북된 국민들의 송환을 촉구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확산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습니다.
고등학생 납북자 송환기원비
이 자리에는 김 씨의 형과 형수를 비롯한 다른 납북 고등학생 가족들도 함께했습니다.
김 씨의 형수인 김옥자 씨는 "시동생을 한 번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도, "우리는 2006년에 한 번이라도 만났으니 다른 네 가족의 만남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최성룡 전후납북자 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도 "송환이 어렵다면 비공식적인 만남이라도, 그것도 안 되면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제막식 행사 내내 선유도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습니다.
수십 년 생이별을 겪은 가족들 마음에도 '짙은 안개'가 끼어 있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제사회가 노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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