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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우 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의 이미지는 ‘노빠꾸’로 요약된다. 무조건 직진이다. 축구로 치면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대선 홍보 영상에서 했던 “좋아, 빠르게 가(좋빠가)”는 그의 국정운영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그 출발점이 ‘검사 윤석열’임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2013년 10월 국회의 검찰 국정감사에서 했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발언은 그가 ‘별의 순간’을 잡은 동력이 됐다. 부당한 외압에 물러서지 않는 검사 이미지는 정치적 자산이 별반 없던 그가 빼들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카드였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팔뚝을 휘둘러 어퍼컷을 날리거나 ‘공정과 상식’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은 다 이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전략이었을 게다.

그러나 ‘대통령 윤석열’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다. 그의 집권 2년은 ‘검사 윤석열’ 이미지에 가려진 밑천들이 하나둘씩 드러난 시간이었다. 결단력이나 뚝심으로 포장됐던 리더십은 무데뽀와 독선과 불통으로 나타났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이권 카르텔’ 등으로 낙인찍고 검찰이 피의자 대하듯 한 반면, 정부 요직을 검찰 출신들로 채워 ‘검찰공화국’ 비판을 자초했다. 만 5세 취학, 주 69시간 노동,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해외 직구의 국내 안전 인증(KC) 등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다가 주워담는 일이 반복됐다. 국정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뭘 하려는지 청사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도 함께 허물어졌다.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 자신에 의해서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책임자인 박정훈 대령이 제기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수사 외압 의혹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책임자로서 수사 외압을 폭로했던 10년 전 ‘검사 윤석열’을 소환했다. 채 상병 사건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및 도피 논란은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이 선택적임을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채 상병 사건 수사에 대한 ‘VIP 격노설’ 질문에 동문서답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것은 회피하고 뭉개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김건희 여사 의혹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특검 요구에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해놓고선 4일 뒤 검찰 수뇌부를 갈아치웠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에게 인사를 미뤄달라고 했으나 사실상 묵살당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 장관이 자신을 ‘패싱’하고 검찰 인사를 했다며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들이받았다. 이 부조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김 여사 특검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태세다. 결국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키고 검찰 수뇌부를 갈아치운 건 검찰을 틀어쥐고 김 여사 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김 여사가 공개 외부 행보를 재개한 게 이런 흐름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여당 당선자, 낙천·낙선자들과 잇따라 식사하는 것도 ‘방탄 단속용’일 것이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만으로 가득한 것 같다. 임기가 3년 남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을 막아 ‘대통령 윤석열’의 시간을 연장하려는 것이다. 침대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런데 시간을 끌어 될 일이 따로 있다. 윤 대통령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매 국면에서 도돌이표처럼 돌아올 것이다. 당장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김 여사 의혹은 특검법을 필두로 제2, 제3의 모습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때마다 회피하고 뭉갤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기 여자 보호하는 건 상남자의 도리”(홍준표 대구시장)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VIP 격노설’ 추가 증언을 확보했다는 소식에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느냐”(신동욱 국민의힘 당선인) 같은 대응은 역효과만 낼 뿐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표 말대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T익스프레스’(에버랜드에 있는 롤러코스터)를 탈 게 아니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자신과 가족에 대해선 공정과 상식을 저버리는 상황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봐줄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침대축구에 몰두하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나. 윤 대통령은 잘못 드러누웠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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