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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혼한 부부라도 재판을 통해 ‘혼인 무효’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혼한 뒤에는 혼인 무효를 청구할 수 없다는 판례가 40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3일 A씨가 전 남편을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앞서 각하 판결을 내렸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대법원은 “혼인 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돼 그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 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면서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이혼 신고로써 해소된 혼인 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 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984년 “단순히 여성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돼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후 40년간 이 판례를 유지해왔다.

이날 대법원이 40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결정은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12명 등 총 13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전원 일치 의견으로 내려진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작년 12월 취임한 이후 첫 전원합의체 판결이기도 하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뒤집거나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법원 “혼인 무효와 이혼은 법적 효과 달라”
이번 사건은 이미 이혼한 상태인 A씨가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고 청구한 것이다. A씨는 전 남편과 2001년 12월경 결혼한 뒤 2004년 10월경 이혼 조정이 성립해 이혼 신고를 마쳤다. 이후 A씨는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강박 상태에서 실질적인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혼인 관계가 이미 이혼신고에 의해 해소됐다면 혼인 관계의 무효 확인은 실익이 없다”라며 원고 청구를 각하했다. 2심 재판부도 같은 이유로 원고 항소를 기각했다. 이는 1984년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뒤집으면서 서울가정법원이 A씨가 혼인 무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면서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혼의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혼인이 무효라면 부부 간에 발생한 일상 가사 채무에 대한 연대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되는 등 이혼 후에도 혼인 관계가 무효라는 사실을 재판을 통해 확인할 실익이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또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한 객관적 증빙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혼인 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혼인 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돼 그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 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면서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 “혼인 무효 소송 늘어날 것”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의 판례 변경으로 앞으로 혼인 무효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제 결혼이 증가하면서 혼인 무효가 문제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여성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우리 국적을 취득한 뒤 이혼한 경우 남편이 혼인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 사건 전문인 이수진 변호사는 “그동안 혼인 무효가 인정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었는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매우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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