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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끝 별세...장례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신경림 시인.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중의 그늘진 삶에 천착하며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등의 시를 쓴 신경림 시인이 2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6년 문학예술에 ‘낮달’ ‘갈대’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지만, 전후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에 뜻을 두지 못해 낙향한 뒤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한국일보에 ‘겨울밤’(1965)을 실으며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 묵 내기 화투를 치고 /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중략)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겨울밤' 농촌의 쓸쓸한 풍경에서 “현실에 뿌리 박은 시를 쓰겠다”며 10년을 벼린 문학적 의지가 읽힌다.

1975년 '창비시선 1호' 장식한 시집 '농무'



“내 문학은 사람을 좋아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 고인은 살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시를 길어냈다. 민족과 민중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거목으로 자라난 그의 시는 한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73년 자비로 낸 첫 시집 ‘농무’는 그의 시집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또 오래 읽히며 사랑받았다. 당시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민요적 정서에 얹은 시로, 모더니즘과 서정시가 주류였던 당시 문단 분위기를 바꿔낸 시집이다. ‘농무’는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 1호로 1975년 증보 출간되면서 한국 시집의 상업 출판 시대를 열기도 했다. 창비시선은 올해 3월 500호를 펴내며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정기총회에서 시인 신경림(왼쪽)을 회장으로 재추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암투병 중에도 시 써...미발표 시 모은 유고시집 나온다



고인은 ‘새재’(1979)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뿔’(2002) ‘낙타’(2008) 등의 시집을 남겼다. 마지막 시집으로는 2014년 펴낸 ‘사진관집 이층’이 있다. 제1회 만해문학상과 대산문학상, 호암상예술상, 심훈문학대상 등을 수상했고, 2001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 등을 지내며 문학계의 어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에 대한 기준도 늘 꼿꼿했다. 최근까지도 젊은 시인들을 향해 “시인은 자신의 감성과 맨가슴으로 우리 시대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오늘의 내 삶, 우리들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시 쓰는 일이 조금씩 편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한국일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2002)라던 고인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미발표작을 모은 유고시집도 만들어질 계획이다. 마지막 시집 ‘사진관집 이층’에 실린 ‘이쯤에서’에는 자신의 평생을 정리하는 시인의 태도가 엿보인다. “이쯤에서 돌아갈까 보다 / 차를 타고 달려온 길을 / 터벅터벅 걸어서 / 보지 못한 꽃도 구경하고 / 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면서 / 찻집도 기웃대고 술집도 들러야지(하략)”

경기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둔 시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평론가협회 등 문인 단체는 고인의 장례를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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