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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27일 부산 KT 선수들이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의 경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농구의 국민의례 규정

KBO 의무는 아니지만 관례화돼

프로농구선 안 지키면 징벌까지


“전근대적 국가주의 산물” 지적도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관객을 가장 먼저 일으켜 세우는 것은 홈런도 삼중살도 아닌 애국가다.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선수들은 경기장에 도열해 태극기를 바라본다. 외국인 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장내 모두가 국기와 국가에 대한 예를 표한 뒤에야 비로소 경기가 시작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프로농구연맹(KBL)은 경기 전 국민의례를 리그 규정으로 명시한다. KBO 리그 규정의 ‘경기 운영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에 따르면 경기 개시 직전에 애국가가 방송될 때 벤치에 있는 선수는 앞으로 나와 정렬하며, 기타 경기장 내 심판위원과 선수는 모자를 벗고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어야 한다.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 돌출행동은 금지된다. KBL 대회운영요강은 ‘선수의 책무’ 조항에 “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 시 선수 및 코칭 스태프는 해당 팀 벤치 앞쪽 코트에 일렬로 도열해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민의례 규정에 따르면 국민의례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고 애국가를 애호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예를 갖추는 일련의 격식’이다. 프로스포츠는 전문 운동선수들과 구단이 경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상업적인 목적의 스포츠다. 국가대표 스포츠와는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프로스포츠 경기에서의 국민의례 의무에는 모순점이 있다. 외국인 선수와 관객은 어째서 태극기를 향해 예를 갖춰야 할까? 숭고한 애국심을 표하지 않은 선수에게는 경기에 임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걸까?

KBO 관계자는 “구단에서 애국가를 틀었을 때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해놓은 것이지 국민의례가 의무사항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BO 소속 10개 구단은 모두 경기 전 국민의례를 시행하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의무사항이 아니란 걸 모르고 있었다. 굳이 안 할 필요는 없어서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농구에서 경기 전 국민의례는 지키지 않을 경우 징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의무사항이다. 창원LG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데이본 제퍼슨은 2015년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시작 전 국민의례 도중 스트레칭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졌다. LG는 제퍼슨을 사과 기자회견장에 세웠지만, 사과의 진정성이 없었다며 KBL의 징계 발표가 나기 전 제퍼슨을 팀에서 퇴출했다. KBL 관계자는 “선수들이 경기 전 의지를 다잡을 수 있도록 리그 출범 때부터 유지해온 의식”이라며 “지속 필요성에 대해서는 논의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연맹(K리그)과 한국배구연맹(KOVO)은 경기 전 국민의례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성남 일화가 2013년까지 홈경기 시작 전 국민의례를 했으나 2014년 성남FC로 재창단하면서 관습을 없앴다. 프로배구 역시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

경기 전 국민의례가 진행되는 야구와 농구는 미국에서 들어온 스포츠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MLB, NBA뿐 아니라 주요 프로스포츠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한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국가주의를 고취하는 국가 제창은 미국 프로스포츠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장 내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다. 올스타에 2차례 뽑혔던 강타자 카를로스 델가도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이었던 2004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저항하는 의미로 경기 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 도열을 거부하고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은 2016년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이 사망하자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뜻으로 경기 전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했다.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는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 관객과 선수의 애국심, 국가 상징물에 대한 마음가짐을 확인할 필요가 뭐가 있나”라며 “군사정권 당시 영화관이든 어디든 사람이 모이면 무조건 애국가를 불러야 했는데, 그런 전근대적 관습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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