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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물 물가 상승 원인으로 지목된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생산자와 유통업자들 간 신뢰, 고용 문제 등 근본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얼마 전 서울 직장인 평균 점심값이 1만798원이고,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6개월 만에 또 가격을 올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둘 다 가슴을 조여들게 하는 소식이다. 물가상승은 지난 정부 때 급격히 늘어난 통화 총량이 새 정부 들어서고도 줄지 않았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원화가치 하락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물가는 국민의 생활 질에 직접 압박을 가하는 것이니 정부의 대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정부의 물가대책을 믿고 기다리면 물가가 내려갈까.

글로벌 햄버거 업체는 가격을 올리며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이 올랐다는 요인을 설명했으니 그 항목을 찾아보자. 매년 오른 최저임금에 소규모 자영업자의 매장에서는 몇 년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적용하지 않던 주휴수당 등이 추가됐고, 요즘 몇 년 전 신고분까지 소급해 걷고 있는 사회보장보험료까지 합하면 실제로 현장에서는 시급이 1만2800원을 넘는다.
경제주체 심리도 물가에 영향
위험회피 위해 유통구조 복잡
계약이행 보증제도 확대 필요
인플레이션 공포에 가격 인상 주요 원가 항목인 식자재는 어떤가. 왜 우리나라는 계란 파동이 일었다가 이어서 상추가 금상추가 되고, 사과·감귤·대파·양파·양배추가 차례로 몇 배가 오르나. 안정된 물가 속에서 장사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매번 이상기후 탓을 하지만 이웃 나라는 이처럼 등락이 심하지는 않다. 시장의 가격은 원가가 주요 변수이지만 경제 주체들의 심리 또한 크게 작용한다. 다들 올리고 있으니 나만 올리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품목이든 돌아가며 폭등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게 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과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aT센터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에서 열린 농수산물 수급안정 및 유통구조 개선방안 현장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유통 구조가 여러 단계라 단계마다 업자들이 마진을 붙여 산지 가격보다 몇 배가 된다. 유통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묘책이 있는 것처럼 점검한다고 발표한다. 정말 그럴까. 밭에서 우리 식탁까지 오르는데 얼마나 많은 상·하차가 이뤄져야 하며 소분과 포장이 이뤄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유통업자 입장에서 내 앞에 유통 단계를 하나 줄이면 그 마진을 내가 취할 수 있고, 내 뒤에 업자를 하나 줄여 직납하면 그 마진도 내 것인데 왜 안 할까. 그것은 중간 마진을 취하는 업자의 욕심 탓만이 아닌 신뢰 문제 때문이다.

안정된 농산물 확보를 위해 선도거래를 하려 해도 납품을 제대로 해줄지 불안하다. 그래서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보증이 가능한 업자 하나를 끼워 넣어야 내가 손해를 보지 않으니 단계가 하나 늘어난다. 내가 납품하고도 제 돈 못 받을 것 같으니 내가 직납하지 않고 내 뒤의 발주자와 신뢰의 끈이 닿아 있는 업자를 하나 추가하는 것이니 그 돈 떼 주는 것 또한 신뢰 비용이 된다.

정부가 선도거래의 양지화를 물가 대책 중에 하나로 제시했는데 산지에서 선도거래가 확대되지 못하는 원인은 생산자와 유통업자와의 신뢰 부족에 기인한다. 신뢰가 비용을 낮춘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제도적으로 농산물에도 계약이행보증을 할 수 있는 제도를 확대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안이 척척 나와야 할 것이다.

고용난에 하도급, 유통단계 증가 농수산물 유통이 길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고용 문제다. “사람 쓰기 어려워서 사업하기 어렵다”는 말의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인적자원인 사람이 탐나는 기계와 같아서 한 대 들여놓기만 하면 돈 찍듯 척척 돈 벌어다 주는 기분이면 왜 직고용을 안 할까. ‘난 계약서 종이만 잡을게, 넌 사람 잡아 써라’ 하니 하도급이 늘고 유통 단계가 길어진 것이다. 관료와 정치인이 법은 바꾸지 않고 "유통단계 줄여라" "하도급 주지 마라" 해봐야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세금을 써서 물가를 잡는다 해도 근본적인 개혁과 혁신이 없이는 물가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라 하니 지난 2년여의 정책들이 떠오른다. 건설 현장을 멈추게 하는 건설노조가 문제라며 돈 잘 버는 타워크레인 지부를 때려잡으면 산업 현장의 고용 문제는 다 해결된 것인가. 왜 노동 개혁의 청사진을 보고 그렇게 바뀔 밝은 산업 현장의 미래는 기대해 보지 못하는 것일까. 킬러 문항이 문제라며 돈 잘 버는 대치동 학원 몇몇을 때려잡은 것으로 입시 문제는 잘 해결된 것인가. 왜 교육 개혁의 청사진을 보게 되고 그렇게 바뀔 밝은 교육의 미래는 기대해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의대 2000명 증원으로 몇 개월째 의료 현장이 마비되어 있는데 증원해서 돈 잘 버는 강남의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의원들 어렵게 만들면 응급실 필수의료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일까. 왜 건강보험을 포함한 의료 개혁의 청사진을 보게 되고 그렇게 바뀔 밝은 의료 현장의 미래는 기대해 보지 못하는 것일까.

가격 올리는 것도 카르텔 탓이라 하며 짜장면값 라면값 점검해 엄포 놓는 처방으로 물가 문제는 잘 해결될 것인가. 근본의 대책이 되지 못하니 땜질 처방은 매번 더 새로운 규제나 늘리거나 나랏돈 쓰느라 재정만 나빠져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근본을 바꿀 수 있는 개혁의 청사진과 추진 의지가 중요하다. 부러진 다리는 치료하지 않고 흔들리는 목발 탓하고 급한 대책으로 더 무겁게 만든 목발 하나 더 던져줘 봐야 남은 발 하나에 두 팔마저 못 써먹지 않겠나.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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