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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주재하는 해외 직구 대책 관련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이완 | 산업팀장

국민들이 화가 났다. 이번엔 대파가 아니다. 유아차다. 전자제품이다.

구독자가 254만명인 유튜버 잇섭이 올린 동영상 ‘사상 초유의 해외직구 금지’를 보면 200만회 조회(21일 오전 기준)에 댓글이 2만3천여개나 달렸다. 가장 인기 댓글은 “어떻게 이렇게 서민들 못살게 하기 위해 진심인지”였다. 유아차나 분유를 해외 직접구매(직구)하는 집이나, 전자제품 등을 직구하는 이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정부 발표 뒤 뒤집어진 상태였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발표 사흘 만에 이를 주워담았다. 용산 대통령실도 20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청해 사과했다. 사과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국무조정실이 주관하고 14개 부처가 참여해 만든 정책인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부처에서 이뤄지는 모든 정책을 대통령실에서 다 관할해 결정하지 않고 있다”고 발뺌했다. 이전 청와대 시절엔 정책실에서 각종 정책을 조율하고 점검했는데, 대통령실은 일을 안 하는 것인가, 무능하다고 고백한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향할 화살을 피하기에 급급할 따름이다.

지난해 한국의 직구 시장 규모는 6조75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10년 전인 2014년 1조6400억원 규모였는데 그동안 역성장 한번 없이 직구 구매액은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이 간편해지면서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 접속해 ‘클릭’ 한번 하면 국경 장벽이 허물어졌다. 특히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 같은 대폭 할인 쇼핑 시즌은 국내 소비자들을 전세계 가격 정보에 눈뜨게 만들었다. ‘에누리 없이 판다는 게 이런 거지!’

정부가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참에 직구를 하는 이들에게 물으니 모두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주로 캠핑용품을 알리에서 산다는 30대 여성 권씨는 “직구로 사는 건 싼 이유가 있겠거니 감안하고 사는 거고, 안전성이 염려되는 아이 관련 제품은 직구로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트북 배터리를 직구로 교체했던 30대 남성 채씨는 “전자기기나 관련 부품 쪽에서는 직구를 이용하는 게 훨씬 저렴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품을 팔아 자발적으로 지구촌 곳곳을 뒤졌는데 정부가 일률적인 규제로 발목을 잡은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소비자 안전 확보’를 내세웠지만 정책 배경으론 ‘기업 경쟁력 제고’를 꼽을 수 있다. 중소 유통·상공인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소액 수입물품 면세제도를 개편해 한번에 살 수 있는 직구 물품을 줄이고, 케이시(KC) 인증을 의무화하는 등의 정책 방향은 정부가 안전보다 유통업자들의 시장을 지켜주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오죽했으면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19일 브리핑에서 “유통업자 배 불리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 (하는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해명까지 했을까.

정부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과거엔 국민의 안전과 산업을 지킨다는 취지라면 이해해줬으니까. 최근 전세계가 안보를 이유로 산업정책 시대로 회귀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에 힘을 싣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비자는 회귀하지 않았다. 세계화의 단맛을 본 소비자에게 저가 공산품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이 높은 중국산 전기차와 스마트폰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하면 쉽게 동의를 받을 수 있을까. 과거처럼 한국 기업이 국외 시장에 진출할 체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더 비싼 값을 내고 제품을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는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들여오는 제품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만든 안전 인증에 대한 불신도 확인했다. 수출형 통상국가인 우리가 미국처럼 관세를 높여 기업을 보호할 수도 없다. 결국 다 아는 정답이지만 한국 기업이 기술력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기업 지배구조에 있어 차별화된 제품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정공법이 우선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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