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이 지난 1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금지 철회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라 | 뉴스서비스부 기자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아이가 생기면서 처음 해외직구를 시작했다. 지금은 사춘기 초입의 아이와 씨름하는 나 역시 맘카페에서 육아 디테일의 모든 것을 배운 세대다. 예나 지금이나 맘카페에선 직구 정보가 흔했다. 외국 빨대컵들의 환경호르몬 위험도를 비교하고, 유럽·미국·일본의 안전 인증 수준을 따져서 카시트를 평가했다. 몇날 며칠 정보 검색 끝에 독일 브랜드 카시트를 사기로 결정하고, 고가 카시트를 훨씬 싸게 독일에서 직구했을 때의 기쁨이 생각난다. 요즘은 직구 품목도 바뀌어서 지난 연말엔 영국 발매 축구카드를 구하느라 유럽 각국 아마존을 뒤졌다. 영국에선 이미 품절이라 독일·프랑스 아마존을 뒤지고 마침내 스페인 아마존에서 그 한정판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라니…. 구글 스페인어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넣고 20일 만에 축구카드가 든 틴 케이스들이 도착했다. 크리스마스는 훌쩍 지나가버렸지만, 아이는 즐거워했다. 내 손으로 쇼핑할 일 없는 바쁘신 높은 분들은 몰라도 직구가 생활이 된 지는 오래란 얘기다.

정부가 어린이제품·생활용품 등에 대해 케이시(KC·국가통합인증마크) 인증 없이는 6월부터 직구를 차단한다고 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했다. 맘카페, 취미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는 부르르 끓어올랐다. 직구한 카시트가 6월 전에 못 올 듯한데 취소를 알아봐야 하는 거냐? 케이시 인증이 미국·유럽·일본 글로벌 인증보다 대단한가? 직구는 뭐든 저렴하게 사려고 그러는 거다. 이게 다 물가가 너무 올라서 그런 건데, 어쩌란 거냐. 알리에서 직구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 취미용품을 국내에선 ‘택갈이’만 해서 몇배 비싸게 판다. 중간 유통업자들 배만 불려주고 소비자는 호구 되라는 거냐. 중국 알리·테무만 못 막으니 미국·유럽 직구까지 다 막겠다는 건데, 이런다고 내수 경제가 활성화되나.

충분히 온당한 문제 제기들이다. 14개 관계부처가 이름을 올린 이번 정책을 발표하기까지 공무원들의 머릿속에는 저런 질문들이 전혀 안 떠올랐을까. 정책 예측가능성 부재, 케이시 인증의 한계, 소비자 편익 불균형, 국내 중소 유통업체와 소상공인 보호 대책으로 직구 금지가 적절한 선택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장삼이사들의 아우성에 틀린 말이 별로 없다.

몇년 새 중국 직구 플랫폼의 진격이 워낙 빨라서 소비자 민원이 늘고 위해 제품 유입 같은 부작용을 막을 장치가 미처 준비돼 있지 않은 건 사실이다.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중간 유통업자나 소상공인의 불만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촘촘한 소비자 보호 행정과 산업정책, 구조조정 과정의 실업·고용 대책이 필요한 자리에 21세기 흥선대원군이 나선 셈이 됐다. 국민의 일상 소비생활을 틀어막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워낙 황당하니 일각에선 음모론도 고개를 든다. 케이시 인증기관 영리법인화가 지난해 발표됐는데, 이권을 둘러싸고 누가 크게 해먹으려고 한 거 아니냐? 천공 강의에 직구 관련 내용이 있다는데, 천공 말 듣고 한 거 아니냐?

이는 정부의 정책 신뢰도가 바닥을 찍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 직구 금지 철회 브리핑 때 ‘오해 소지가 있었다’는 당국자 변명에 ‘이게 국민들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건지, 기자들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건지, 정부가 설명을 잘못했다는 건지 얘기 좀 해달라’는 말이 나오는 판국이다. 대통령실은 부랴부랴 사과를 하면서 대통령한테 직접 보고된 사안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집권 3년차에 국정 운영이 얼마나 아마추어급인지 감추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9년 전 천공 강의 캡처본까지 돌아다니며 국정 비선이니 뭐니 뒷말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권력과의 밀월 의혹이 무성한 ‘천공스승’은 이번 정책과는 정반대 얘기를 했다. 천공의 ‘정법강의 4548강 증가하는 해외직구’ 편에선 “해외 쇼핑몰 직접구매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에게는 만족도가 높지만 국내 산업의 위축과 세수 감소라는 부정적인 영향도 주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는지…”란 질문이 나온다. 천공은 답한다. “기업을 키워주기 위해 국산품 애용하는 짓 하지 마라… 세계 어디든 좋은 거 있으면 그걸 갖다 써라.” 직구 금지를 승인한 고위공직자 머릿속은 몰라도, 천공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결이 다른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천공스승의 설법은 문득문득 헛웃음이 나지만, 못지않게 기상천외한 정부 탓에 ‘직구 지지자’ 천공이 받는 오해가 일순 안쓰러워진다. 이도 오지랖일까.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1407 불타는 공장, 누구도 그들에게 살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랭크뉴스 2024.06.26
21406 [속보] 합참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실패’ 추정” 랭크뉴스 2024.06.26
21405 [속보] 합참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실패 추정" 랭크뉴스 2024.06.26
21404 합참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실패 추정" 랭크뉴스 2024.06.26
21403 日 “북,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 랭크뉴스 2024.06.26
21402 SM과 하이브의 자존심 대결...역동적인 '라이즈'냐 청량한 '투어스'냐 랭크뉴스 2024.06.26
21401 ‘화성 참사’ 전날 “힘들어서 그만 두려고”…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랭크뉴스 2024.06.26
21400 합참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랭크뉴스 2024.06.26
21399 ‘꺼지지 않는 불꽃’… 서울시, 100m 태극기 설치 시끌 랭크뉴스 2024.06.26
21398 폴크스바겐, '테슬라 대항마' 美 전기차 리비안에 7조원 투자 랭크뉴스 2024.06.26
21397 [단독] 아리셀 2년간 피해간 '화재안전조사', 시행률 고작 '5%' 랭크뉴스 2024.06.26
21396 다연장로켓 누가 셀까…韓 ‘천무’ 화력·가성비 vs 美 ‘하이마스’ 기동·파괴력[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랭크뉴스 2024.06.26
21395 하루 만에 또 오물풍선‥군 "확성기 방송 검토" 랭크뉴스 2024.06.26
21394 "냉전 때 美도 핵으로 평화” 韓 핵무장론 불 붙는다 랭크뉴스 2024.06.26
21393 연 15% 분배금 줘 ‘프리미엄’ ETF라고?… 목표일뿐 확정 수익 아닙니다 랭크뉴스 2024.06.26
21392 북, 이틀 연속 ‘오물풍선’ 도발…인천공항 2시간 차질 랭크뉴스 2024.06.26
21391 NH벤처투자 김현진 대표, 첫 역점 사업부터 ‘삐그덕’… 이스라엘펀드 결성 난항 랭크뉴스 2024.06.26
21390 [속보] 합참 "북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오물 풍선 이어 잇단 도발 랭크뉴스 2024.06.26
21389 월급 400만원 퇴직연금 가입자 수익률 2%vs7%…30년후 결과 보니 랭크뉴스 2024.06.26
21388 북,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오물풍선에 이어 도발 랭크뉴스 202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