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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3달, 의료체계 긴급 점검

20일 249명 파견으로 공백 곳곳
대부분 동네병원·약국마저 멀어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도 구멍
이탈 전공의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공중보건의들이 수도권으로 파견된 3월12일 오전 전남 화순군 이양보건지소가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금 어르신들은 괜찮으실지 걱정되네요. 제가 없으면 약도 잘 안 챙겨 드시는데….”

공보의 손홍구씨는 20일 한겨레에 “보건지소가 문을 열지 않으면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은 다른 병원까지 차로 20∼30분 이동하기 힘들어 아파도 참는 경우가 많다”며 “진료하던 환자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진주의 대평·수곡보건지소에서 근무하다 이달 8일부터 경남의 한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됐다. 그가 일하는 보건지소는 공보의 파견으로 주 3∼4일에서 주 2일로 운영일을 줄였다. 보건지소가 문을 닫으면 주변 의료기관이 없어 ‘의료 정전’이 된다.

보건지소가 있어 의료서비스 사각지대를 겨우 면했던 의료취약지는 의료 공백에 더욱 취약해졌다. 정부는 수련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자리를 메우려고 지난 3월11일부터 두달 넘게 보건소·보건지소 등에서 일하는 공보의를 빼냈다. 이날 기준 공보의 249명이 파견 근무 중이다. 여기에 공보의 지원마저 줄어 올해 복무기간이 끝난 공보의 자리는 70.3%만 채워졌다.

의료 공백 속 의료취약지 환자들은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손씨는 파견 전인 지난달 23일, 60대 남성 환자를 진료했다. 진드기에게 물려 두드러기가 났고, 심한 상처 위에 앉은 딱지가 다리에서 팔까지 번져 있었다. 손씨는 “상태가 심각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쓰쓰가무시병이 의심돼 바로 응급실로 보냈다”며 “보건지소가 운영일을 줄이니 상태가 심각해져 오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공보의 손홍구씨가 지난달 23일 진료한 남성. 손홍구씨 제공

경북의 한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ㄱ씨도 이런 환자들을 만난다. ㄱ씨는 “보건지소가 일주일에 한번만 열게 되면서 감기 증상을 15일 동안 참았다는 환자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 대구에 사는 자녀와 함께 보건지소에 오던 어르신도 보건지소가 운영일을 줄이면서 한동안 고혈압약을 먹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3일 비상진료대책의 일환으로 보건소·보건지소의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지만, 고령 환자에겐 그마저도 쉽지 않다.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 관리도 어려워졌다. 손홍구씨는 “일부 환자는 진료 계획에 따라 일정 기간 뒤 처방하는 약의 종류나 복용량을 바꾸는데, 파견으로 다른 공보의가 환자를 보게 되면 이런 내용까지 인계하기 어려워 먹던 약을 그대로 주는 것 이상의 진료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 파견됐다 이달 초 복귀한 ㄱ씨도 “파견 전 진료를 보던 당뇨 환자들의 생활 습관 교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파견으로 중단됐다. 공보의 파견이 지역 주민들의 만성질환 관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비수도권 지역 보건의료기관장은 “공보의를 활용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방문 진료와 고혈압·당뇨병 관리 업무를 늘리려고 했는데, 공보의 파견으로 진료가 급급해 이런 사업을 모두 시행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반면 공보의들이 상급종합병원에 파견을 가 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손씨와 ㄱ씨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을 받지 않고 바로 공보의가 됐다. 손씨는 “현재 파견 병원에서 주로 인턴이 하던 수술 동의서 받는 일을 하고 있다. 보건지소에서 일할 때가 환자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ㄱ씨는 “공보의들은 파견 병원에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하는 데 부담도 느낀다. 파견 당시 배운 적 없는데 동맥관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방법을 물어보니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보의 파견을 장기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공보의들이 지역에서 하는 역할이 상급종합병원에 파견을 가서 하는 역할보다 훨씬 중요하다”며 “공보의 근무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환 대한공보의협의회 회장은 “공보의들이 기존 근무처에서 일하는 것이 공보의 제도 취지에 맞고, 공보의들과 환자들 모두에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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